잠이 든 당신을 들여다봅니다
어느 먼길을 걸어와 지금 당신이
- 중략-
나 같은 남자 뭘 믿고
더없이 소중한 마음과 몸을 맡기고
그저 고맙고 감사해서
촛불 같은 당신 잠과 꿈을 꺼뜨릴까
조심조심하며 밤새 저는 당신 마음을 들여다볼 뿐입니다
김하인 시인 <잠이든 당신>
코스콤의 이종규 사장은 국세심판원장에서 물러나면서 32년 간의 공직생활을 한 편의 시로 읊었다. 이 한편의 시에는 공직을 마감하는 아쉬움과 후배들의 사랑이 깃들어 있다. ‘화법의 기술’에는 정답이 없다. 꼭 달변일 필요도 없다. 장황한 미사여구보다 간결한 한마디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중요한 건 신뢰가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박재규 경남대 총장(전 통일원 장관)의 화법은 상대를 배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박 총장은 등록금 인상과 관련한 학생대표들과의 면담에서 “얼마나 인상하면 좋겠는가?”하고 상대의 의중부터 물었다. 그리고 그들이 제안한 인상폭에서 1%를 더 낮춰 제시하며 학교살림을 절약할 테니 인상폭을 줄이자고 했다. 학생들 입장에서야 등록금 인상폭이 적은 게 좋을 수밖에 없으니 단시간에 등록금 협상은 마무리됐다.
명 연설을 하거나 상담을 통해 상대를 설득하는 기술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니다. 진솔함을 담고 대화 상대와 눈높이를 맞추고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을 분명히 전하는 말하고 듣는 기본자세에 그 해답이 있다. 조직을 감동시키는‘화법의 기술’을 소개한다.
유현희 기자(yhh1209@ermedia.net)
|이것이 경영자 화술이다|
노사협상에서 사내방송까지
말 한마디가 리더십 세운다
언어의 힘이 세상을 움직이는 시대다. 협상으로 유혈사태 없이 국가적 이익을 취할 수도 있고, 기업의 이미지를 바꿀 수도 있다. 그만큼 CEO의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중시되고 있다. 그러나 말 잘하는 CEO가 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말을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고려시대 전쟁 없이 강동6주를 얻었던 서희의 협상전략은 시대를 뛰어넘는 교훈이다.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는 옛말은 이제 ‘말 한마디가 천억을 움직인다’로 바뀌고 있다. 그만큼 CEO의 말은 그 파급효과가 크다. CEO의 사소한 말실수 하나가 기업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바꿔놓을 수도 있다. 경제성장기에 필요한 CEO가 워커홀릭형이었다면 이제는 커뮤니케이션이 능한 CEO가 각광을 받는다. 화법의 중요성이 그만큼 대두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코노믹 리뷰>는 기업이 처한 상황과 커뮤니케이션 도구에 따라 달라지는 적절한 화법을 한국리더십센터 김경섭 대표, 세계경영연구원 전성철 이사장, CMOE코리아 최치영 박사, 이미지21 하민회 대표, 국제스피치언어학원 송미옥 원장 등 5인의 전문가에게 들어봤다.
#로버트 케네디가 일본 와세다대학을 방문해 강연을 했을 때의 일이다. 반미감정이 높았던 당시 오쿠마 강당에서 케네디가 강연을 마치고 강단을 나서자 학생들은 욕설을 퍼부으며 “양키 고 홈”을 외쳤다. 그러자 케네디는 다시 강단으로 돌아와 마이크를 잡고 와세다대학의 교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학생들은 언제 야유를 퍼부었냐는 듯 케네디를 따라 교가를 불렀고 어느새 숙연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로버트 케네디는 자신에게 맞서는 이들을 설득하려 들기보다 학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면서 위기를 넘겼다.
#2007년 7월 5일 과테말라 시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장 강단에 선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정부 차원에서 동계올림픽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며 소치의 지지를 요구했다. 마지막에는 서툰 프랑스어로 “준비된 것은 없지만 IOC 위원들의 현명한 결정을 바란다”고 매듭을 지었다.
여러 정치적인 요인이 개입됐겠지만 소치의 승리를 보는 시각 중 푸틴의 깜짝 프랑스어 구사가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이도 적지 않다. 아프리카와 유럽의 부동표를 잡기 위한 전략적인 포석이라는 것. 결국 잘츠부르크에 쏠렸던 표의 대부분을 소치가 가져가면서 평창은 다시 한번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기업이미지와 조직관리에 있어 CEO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기업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때 조직원들의 공감을 이끌어야 하고 사내 여론과 CEO의 의견이 배치될 때 이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노사 관계는 또 어떤가. 노사 간 분쟁이 생겼을 때 노조 측의 의견을 무조건 수용할 수도 없고 반대로 사측 입장만 전할 수도 없다. 또 언론과의 인터뷰 시에도 CEO는 개인이 아닌 회사의 이미지를 대표하기 때문에 회사의 목표와 계획에 대해 명확히 PR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상황들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상황들은 때와 장소, 누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질까에 따라 다른 도구를 사용한다. 회사를 홍보하기 위해서는 인터뷰라는 도구를 사용해야 하고 조직원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서는 사내방송이나 사내 연설이 효과적인 장치가 된다. 또 의견을 조율하려면 협상으로 상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상황이든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준비다.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을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문가들은 대화의 시작은 듣는 것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한국리더십센터 김경섭 대표는 “말하고, 읽고, 쓰는 것은 6년이면 거의 다 배우지만 듣는 것은 60년이 걸린다고 해서 나이 60을 이순(耳順:귀를 열어 놓는다)이라고 했다”며 상대방의 말에 귀를 열어 놓는 것부터 대화준비가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물론 연설, 방송, 인터뷰 등 일방적인 화자가 될 경우에는 듣기가 생략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는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사전에 진단하고 파악해 대화를 이끌어가야 한다. 그러나 회의, 임직원과의 대화를 통해 CEO가 조직문화를 이해하려면 자신의 말을 줄이고 듣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화술 전문가인 국제스피치언어학원의 송미옥 원장도 인내를 갖고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면 자신이 해야 할 이야기를 정리하기 쉽다고 말한다.
너무 장황한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도 금물이다. 세계경영연구원 전성철 이사장은 최대한 단순한 메시지를 통해 사족을 버려야 전달력을 높일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을 미리 정리하라
CEO 코칭전문가 최치영 박사는 논리적이려고 노력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지나치게 논리적인 것보다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진솔함이 청중의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 그는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을 글로 쓰며 메시지를 만들고 최대한 간략하게 다듬어 전달력을 높이고 강조할 부분은 반복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며 “CEO가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상품을 새기는 마케팅의 과정과 흡사하다”고 설명한다.
커뮤니케이션 대상의 의중을 미리 파악하는 것도 효율적인 대화를 이끌 수 있다. 이미지컨설턴트인 이미지21의 하민회 대표는 새로운 계획이나 비전을 제시하기 전 반드시 임원진의 의견을 수렴하고 공감대를 이끌 수 있는 방향으로 대화하라고 조언한다. 송미옥 원장은 ‘어떤 말을 할까’보다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CEO가 통(通)할 수 있는 기본기를 갖췄다고 말한다. 자문자답을 통해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미리 예측하는 것도 대화 주도의 키를 쥘 수 있는 방법이다.
노사문제는 ‘yes, but’으로 풀어라
일반적으로 서번트 리더가 각광받고 인재경영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요즘은 직원과의 일대일 면담 시 부드러운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이 좋다. 말투만 부드러워서는 곤란하다. 직원과 시선을 맞추되 너무 뚫어지게 응시하면 직원이 위축될 수 있기 때문에 시선을 상대의 눈과 눈 사이 코, 입 순으로 옮기면서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을 줘야 한다. 시선처리를 할 때 표정 또한 미소를 띠어야 대화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다.
송미옥 원장은 “너무 산만하게 시선을 분산하지 말고 자연스레 시선을 옮기되 직원의 동의를 구해야 할 시점에는 눈을 맞추는 것이 직원과 대화에서의 스킬”이라고 설명한다.
직원들과의 대화는 부드러운 어조로 진행해야 하지만 노사협상 시에는 배려하는 이미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노사간의 임금이나 사내 복지로 반목할 때는 먼저 노조 측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하는 인내가 필요하다.
하민회 대표는 공감대 형성을 위해 먼저 듣고 ‘입장을 바꿔보니…’등의 문구로 이야기를 시작하되 ‘그러나 회사 발전을 위해서는…’으로 마무리하는 ‘yes, but’화법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 최치영 박사도 ‘그렇게 생각하는 군요’라는 식의 공감 화법을 쓰고 노조 측이 원하는 바를 질문을 통해 해법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김경섭 대표도 경청 후 비전제시가 사측 입장을 먼저 전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라는 데 동의한다.
사내방송이나 연설 시에는 적절한 비유와 경험 위주의 사례를 들어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가야 한다. 간간이 유머를 섞어도 효과적이다.
송미옥 원장은 “사내방송이나 연설 시에는 긴 문장을 피해야 전달력이 배가 된다”며 “오프라윈프리쇼와 같은 토크쇼와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광고 카피를 보고 연습하는 습관을 기르면 명연설가 또는 인기 있는 사장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내 직원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할 때는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를 활용해 마치 일대일로 얘기하듯 하는 것이 쉽게 공감대를 이끌 수 있다. 또 사내 직원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좋다. 직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연설도 효과적이다.
광고 카피 보며 사내방송 익혀야
커뮤니케이션 대상이 직원일 때 부드러운 어조가 강조됐다면 인터뷰나 협상 시에는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인터뷰 시에는 사전에 예상 질문을 꼽아보고 미리 답변을 준비하고 논점을 흐릴 수 있는 사족은 과감히 생략하는 것이 좋다. 지나친 겸손보다 적당한 자기 PR을 통해 자신감을 드러낼 필요도 있다.
협상 시에는 협상 당사자 또는 협상하는 상대 회사에 대한 철저한 사전조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처음부터 당신과 당신의 회사를 잘 알고 있다는 식의 접근은 피해야 한다. 대신 협상대상자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해 나가야 추후에도 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 경청 후 자기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직원과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좀더 단호한 어조를 사용해야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
김경섭 대표는 모 건설사 사장의 예를 들어 협상의 전략을 설명한다. 그 회장은 건설용역사업 수주를 위해 외국의 총리와 식사약속을 잡았지만 뾰족이 대화를 이끌 수단이 없어 고민했다. 그러다 총리의 관심사를 사전에 조사, 총리가 미국 명문대 출신으로 그림을 좋아하며 아들과 딸이 미국의 서부 대학에 유학 중이고 재임 중 해외 공장 유치에 관심이 많음을 파악했다. 브리핑 시간을 10분으로 줄이고 이야기의 80~90%를 미술과 자녀들이 진학해 있는 대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데 할애했다. 브리핑 시간은 줄었지만 총리가 호감을 얻는 이야기로 대화를 풀어나감으로써 그는 입찰자격을 얻는 행운을 얻었다.
누구와 대화하느냐는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의 기술은 경청과 상대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흥분하거나 화가 나더라도 자신을 감추고 대화를 끝까지 이끌어나갈 수 있는 CEO가 회사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CEO다.
CEO가 피해야 할 화법 10
1. 상대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는 것
2. 자신의 관심사 위주로 대화
3. 자신의 이야기가 옳다고 우기는 것
4. 상대를 비난하는 듯한 말투
5. 부정적인 시각 위주의 대화
6. 임기응변식 거짓말 늘어놓기
7. 상대 의중 모른 채 자신 입장만 강조하는 것
8. 다른 사람의 이야기 도중 끼어 들기
9. 승-패, 흑-백 논리로 접근하는 화법
10. 내가 젊었을 때는 식의 영웅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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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맨이 꺼리는 CEO 인터뷰 스타일
“기자생활 얼마나 하셨어요?”역취재형 No!
기업의 홍보를 담당하는 홍보맨들은 CEO의 인터뷰 때문에 당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질문과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답변을 늘어놓거나 아직 공개하지 말아야 할 부분을 공개하거나 오히려 기자를 인터뷰하려 드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홍보담당자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CEO는 어떤 유형일까. 54명의 홍보담당자들에게 물어본 결과 16명이 답변은 뒤로 한 채 오히려 되묻는‘역취재형 CEO’를 가장 많이 꼽았다. 기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홍보담당자로서는 식은땀이 날 수밖에 없다.
공개해선 안 될 내용을 발설하는 ‘극비사항 유출형’(12명)과 ‘예’‘아니오’로 대답하는 ‘단답형 CEO’(10명)도 홍보담당자를 곤경에 빠뜨리는 CEO로 분류됐다.
이외에도 질문에 맞지 않는 답변을 하는 동문서답형(6명), 인터뷰가 못 마땅하다는 듯한 인상을 주는‘시비조형’(4명), ‘곤란하다’를 남발하는 ‘노코멘트형’(3명), 기사 보여달라고 조르는 ‘막무가내형’(3명)도 홍보맨들이 꺼리는 CEO 스타일이다. 기타 의견으로는 기자와 토론하며 기자를 설득시키려는 형과 과거의 무용담만을 늘어놓는 형, 매체의 약점을 꼬집는 형, 처음부터 반말로 일관하는 형 등이 꼽혔다.
출처 : 이코노믹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