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경제활동의 증가, 주 5일 근무로 인한 외식의 증가, 해외여행 증가 등으로 이국적인 음식에 대한 경험이 늘어감에 따라 외식 소비자들의 취향은 갈수록 세분화 되고 맛에 대한 눈높이도 높아지고 있다. 또한 맛집을 찾아 다니는 커뮤니티 활동이 많아지고 정보 공유가 활발해지면서 전문가 수준의 식견을 가진 소비자들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외식업에 종사하는 필자를 항상 공부하게 만드는 자극제가 된다. 어떻게 하면 타깃 소비자가 원하는 부분을 정확하게 충족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데, 결과적으로 그 답은 언제나 현장에서 나온다. 필자가 ‘현장에 답이 있다’고 확신하게 된 건 뼈아픈 실패를 극복한 이후부터였다.
필자는 호텔, 외국계 할인마트, 패밀리레스토랑 등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목적으로 한 대형 호프형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였다. 실패의 원인은 창업현장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경기하강으로 인한 주류소비 행태가 맥주 중심이 아닌 소주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었던 데다, 당시 내가 투입한 창업자금은 예비 창업자들이 투자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그 때의 뼈 아픈 실패는 내게 중요한 교훈을 주었다. 외식도 맛있는 메뉴만 만들어 놓고 파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점, 무엇보다 창업현장을 철저히 살펴보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와 자책으로 한동안 견디기 힘들었다.
모든 것을 잃은 내가 재기의 발판으로 삼은 곳은 바로 뼈저린 실패의 쓴맛을 안겨 준 현장이었다. 그 후 나는 예비 창업자들을 만나면서 창업에 대한 그들의 니즈와 재무 상황을 분석했고 그에 맞는 브랜드를 런칭할 수 있었다. 수억원의 수업료를 물은 대가였지만 그 덕분에 지금은 전국에 470여 개의 가맹점을 운영하게 됐다.
현장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절실하게 느낀 후 지금까지 나는 모든 직원들에게 현장에 나가서 아이디어를 찾으라고 독려하고 있다. 책상에 앉아서 기획했던 대로 현장에서 실행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가령, 메뉴판만 하더라도 사무실의 밝은 형광등 불빛 아래서 보는 것과 레스토랑의 조명불빛 아래서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를 감안하지 않고 책상에서 보는 기준으로 메뉴판을 만든다면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는 것을 만드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얼마 전 한 직원은 현장에서 찾은 답으로 소위 대박 메뉴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매장을 방문할 때 고객들이 이용하는 의류, 가방 브랜드 등은 무엇인지, 어떤 메뉴를 주로 남기는지 등 소비자들의 프로파일 및 반응을 체크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여성고객이 소주에 주스를 섞어서 먹는 것을 발견한 그 직원은 과일을 이용한 칵테일 소주 개발을 제안했다. 그 결과 과일 칵테일소주는 대표메뉴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현장을 방문할 때도 목표가 있어야 한다. 무엇을 관찰해서 어떻게 업무에 적용하겠다는 목적의식을 갖고 집중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현장을 방문한 것 자체가 결과일 수 없기 때문이다.
제품에 대한 차이는 갈수록 줄어들고 새로운 브랜드 시장에 진입하는 경쟁상황일수록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정신이 빛난다고 생각한다. 고객 접점인 현장에 몰입해 답을 찾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고객은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고 나는 확신한다.
여영주 리치푸드(주) 대표이사
1961년생
서울대 보건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전) 마르쉐 영업본부장
(전) 힐튼호텔
(현) 퓨전 음식점 브랜드 ‘피쉬 앤 그릴’, ‘짚동가리 쌩주’ 운영 중
출처 : 한경비즈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