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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스웨덴에선 '가장 존경받는 기업' 2위 한국선 공장폐쇄2007-04-26
작성자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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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선 '가장 존경받는 기업' 2위

한국선 공장폐쇄에 산재 직원도 해고


21일 오후 경기 여주군 테트라팩 공장. 짙게 드리운 먹구름 탓에 어스름이 일찍 깔리면서 공장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한달 전까지 하루 24시간 쉴 새 없이 돌아가던 공장의 기계는 모두 멈췄다. 대신 그 기계를 움직이던 노동자들만 공장 한 쪽에 덩그러니 남았다.

스웨덴에 본사를 둔 테트라팩은 우유곽 같은 종이 용기와 포장기계를 생산하는 업체로 전세계 57개 지사와 48개의 생산기지를 가지고 있는 세계적 기업이다. 지난 2005년 기준 매출액이 10조1400억원에 이른다.

국내에는 지난 1988년 처음 진출해 판매·마케팅 법인 테트라펙 코리아와 생산 법인 테트라펙 여주 공장을 세웠다. 한국에 진출한 이후 테트라팩은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노사상생의 꽃을 피웠다"며 스웨덴식 선진 노사문화를 자랑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노사상생의 꽃'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는 기계가 멈춘 공장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이들에겐 꿈같은 말이었다. 회사 측의 갑작스런 공장폐쇄와 일방적 해고에 여주 공장에서 일하던 110명의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됐다.

21년 흑자기업의 갑작스러운 공장폐쇄

한국 진출 이후 21년간 흑자행진을 이어 온 테트라팩이 갑작스럽게 공장폐쇄 조치를 내린 것은 지난달 8일. 이에 불복한 22명이 최근 2주일 째 공장폐쇄에 항의하는 농성을 벌이며 회사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

지난 92년 테트라팩에 입사해 최근까지 17년간 생산부서에서 근무해 온 윤철중씨는 "20년 넘게 흑자를 내던 기업이 갑자기 품질을 내세워 공장을 폐쇄하겠다고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 테트라팩은 한국에 진출한 이후 연 평균 12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매년 흑자를 이어왔다.

그렇다면 이처럼 '잘 나가는' 회사가 갑작스럽게 공장폐쇄라는 극한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선 회사 측과 노조의 주장이 엇갈렸다. 우선 회사 측은 그 이유를 여주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품질 때문이라고 밝혔다.

데스몬드 조셉 테트라펙 동북아지역 본부장은 공장폐쇄 이유에 대해 "최근 품질 문제로 일본 거래업체로부터 거래중단 통보를 받아 더 이상 공장운영이 불가능해졌다"며 "글로벌 생산기지를 재편하는 차원에서 공장폐쇄가 이뤄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여주 공장은 그동안 연간 25억개의 팩을 생산해 왔으며 이 가운데 45%는 일본으로 수출해왔다. 회사 측은 지난해 한국에서 생산한 제품의 품질에 대해 일본 소비자들의 불만이 이어지면서 공장폐쇄를 선택하게 됐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테트라팩 노조는 회사의 공장폐쇄 이유가 다른 데 있다고 주장했다. 정장훈 노조위원장은 "20년 동안 흑자기업이 품질과 신뢰성으로 일본에 수출하던 물량을 잃었기 때문에 철수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장기근속자가 늘어 회사 측의 비용부담이 커지면서 일찌감치 공장을 철수하기로 하고 일부러 품질 문제를 꼬투리 삼아 공장폐쇄에 나섰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또 "지난 2000년까지 일본 지역에는 테트라팩 공장이 2곳(세신·고템바공장) 있었으나 그 중 세신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부족한 생산량을 여주 공장에서 공급받아 왔다"며 "그러나 고템바공장이 생산설비 증설을 통해 부족분을 보충하게 되면서 여주공장의 존재이유가 최소화 된 것도 공장폐쇄의 한 이유다"고 밝혔다.

20년간 단 한번 파업이 강성노조?

노조 측은 그러나 고임금과 강성노조 때문에 공장철수가 이뤄졌다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서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일부 보수신문들은 테트라팩이 지난달 공장철수를 결정하자 "강성노조가 매년 무리한 요구로 스스로 제 무덤을 판 측면이 크다"고 지적하며 "한국의 높은 임금수준과 강성노조 등 기업 환경이 경쟁국에 비해 좋지 않다고 판단한 다국적 기업들이 한국에 매력을 잃고 철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정 위원장은 "우리 노조는 89년 결성된 이후 지난 2003년 단 한번 파업했을 뿐이고, 또 11년간 근속해 온 노동자의 월 급여가 지난 2006년 기준 120만원에 불과하다"며 "강성노조, 고임금 운운하는 것은 공장폐쇄로 직장을 잃은 우리 노동자들을 두 번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이들이 2주 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단순히 공장폐쇄 때문만은 아니다. 공장폐쇄와 함께 회사 측이 일방적으로 해고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공장폐쇄 이후 즉각적으로 직원 해고에 나섰다. 4월 9일까지 자진해서 회사를 그만두지 않은 노동자에겐 특별퇴직위로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방침도 통보했다.

회사 측의 이 같은 압박에 80여명의 노동자는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사표를 냈지만 22명은 이에 불복했다. 결국 공장폐쇄 조치 한 달 뒤인 4월 10일 회사 측은 자진해서 회사를 떠나지 않은 직원 22명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그리고 5월 10일까지 회사를 떠나지 않을 경우 강제 퇴거조치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농성장에서 만난 해고 대상자 대부분은 10년 이상 장기 근속자로서 직장을 잃게 되면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40대 가장들이다. 회사 측은 지난 10월 작업 중 손가락이 잘려 나가는 사고를 입고 현재 입원 치료중인 산재 환자에게 까지 해고 통보서를 보냈다.

'노동쟁의 중 공장철수' OECD 국제기준 위반

그렇다면 이 같은 공장폐쇄와 일방적 해고조치에 대해 노동자들이 법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은 없는 걸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1976년 다국적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 '다국적기업 지침'을 제정했다. 이 지침에 따르면 다국적기업은 노동쟁의기간 중에 공장을 철수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테트라팩의 경우 지난해 12월 18일 노사임금협상 기간 중에 경기지방노동위원회가 조정중지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현재도 노동쟁의 기간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노동쟁의 기간에 회사 측이 공장폐쇄를 언급한 만큼 이는 OECD 지침을 위반한 셈이다.

정장훈 위원장은 "이른 시일 안에 민주노총 지도부와 함께 이 문제를 OECD에 제소할 방침"이라며 "테트라펙 본사는 OECD의 판정이 나오기 전에 스스로 공장철수 조치를 철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분야 전문가들은 위 OECD 지침의 실질적인 효력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강연배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원은 "노사협상 기간에 공장을 철수할 경우 OECD 지침을 위반하는 것이지만 다국적기업이 수익률에 상관없이 자회사를 폐쇄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결국 테트라팩 본사가 공장폐쇄 조치를 철회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 이 문제는 노조의 제소와 OECD 판정에 따라 판가름 나게 됐다.

스웨덴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이라더니...

테트라팩 본사가 있는 스웨덴의 유력 경제 매거진 <베칸 아페레>는 지난 2006년 스웨덴에서 가장 존경받는 10대 기업 가운데 2위로 테트라팩을 선정했다.

최근 10년 간 개발도상국 거주 아동에게 급식과 음료를 제공해 온 테트라팩의 사회활동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7년 이 회사를 위해 20년 가까이 일해 온 노동자들은 일방적 공장폐쇄 조치로 졸지에 일터를 잃었다.

"테트라팩이 유럽에서는 존경받는 10대 기업 중 2위라고 합니다. 여기저기 기사난 걸 읽어보니 불우한 이웃을 많이 돕는 회사로 정평이 나 있더군요. 그러나 정작 테트라팩이란 회사에 들어와 모든 걸 걸고 열심히 일한 직원들은 이 같은 찬사의 등 뒤에서 싸늘히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요."

취재과정에 만난 한 해고 대상 노동자는 테트라팩이 이제라도 결정을 달리 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회사는 이 문제를 놓고 지난달 말 노조와 마지막 협의를 가진 후 더 이상 노조와의 대화는 갖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출처 : 오마이뉴스 김연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