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 잃은 자격증 넘친다◆
대기업 계열사에서 3년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류 모씨(29)는 잠자는 소위 ´장롱 자격증´이 거의 10개 가까이 된다. 공인중개사, 전자상거래사, 판매관리사, 응급처치관리사, 무역영어 2급, 사무자동화기사, 워드프로세스 2급, 컴퓨터활용능력시험 2급 등등 그 이름도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다. 그는 집안에 모셔둔 이 자격증들만 보면 아직도 아쉬움이 남는다고 한다.
지방 국립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취업을 준비할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 화려한 스펙으로 유명했다. 스펙은 설계서 등을 뜻하는 영어단어의 줄임말로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는 학력과 학점, 토익 점수, 자격증 수 따위를 합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거기에 학점도 4.2였고, 토익점수도 870점이었다.
류씨는 "그때는 자격증이 얼마간 취업에 도움이 되겠지하는 심정으로 자격증 취득에 열을 올렸다"며 "1학기를 휴학하면서 자격증 취득에 전념한 적도 있을 정도로 시간은 물론 돈도 300만원 이상 쏟아부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자격증 사본을 준비해 입사원서를 낸 기업에 제출하려 했더니 이런 건 안내도 된다고 거절 당했을 때"라고 했다.
류씨는 20여 차례 지원서를 내고 다섯 번의 면접 끝에 지금 직장에 취직할 수 있었다. 그는 "자격증이 취업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고 지금도 회사생활에 별 도움은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별 효용도 없는 그 많은 자격증을 준비하는 시간과 열정을 한 분야에 쏟아 전문성을 확보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도 했다.
대부분의 취업준비생들이 류씨의 경우처럼 자격증 취득에 금전은 물론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고 있지만 특정 자격증을 제외하고는 자격증 취득이 곧 취업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 취업준비생 "자격증 없으면 불안해요"
=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04년 생활시간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학생의 하루 일과 중 학습시간은 3시간14분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가운데 대학생이 ´학교 수업과 무관하게 자기계발을 위해 학습하는 비율´은 11.3%였다.
자기계발을 위한 학습 내용을 살펴보면 36.6%가 외국어 학습이었고 취업 자격증과 관련한 학습은 33.3%로 대학생 가운데 그나마 자기계발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학생은 대부분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대학생들이나 취업준비생이 자격증 취득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불안하기 때문. 취업준비생들은 자격증 취득과 관련해 하나같이 "없으면 불안하다"는 반응이다.
특히 어떤 자격증이 취업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정확하게 알기 어려운 ´정보 비대칭´도 취업준비생들의 자격증 취득 열풍을 부채질하고 있다.
2002년 초 지방의 한 국립대를 졸업한 박 모씨(28)는 학군장교로 2년여 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취업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여전히 취업준비생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학점 3.75, 사무자동화산업기사와 워드프로세스 1급 자격증, 토익 880점 등의 스펙을 보유한 박씨는 "현재 정보처리기사와 컴퓨터활용능력시험, 컴퓨터 그래픽스 등의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며 "사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자격증이 취업에 도움이 될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기기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고려대 4학년인 이 모씨(24)는 "왠지 자격증이 취업에 필요할 것 같아 준비하고 있다"며 "정확히는 모르지만 자격증이 없으면 서류에서 붙기 힘들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취업준비생의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중앙대 인력개발센터 관계자는 "학생들을 상담하다보면 대뜸 취업을 하고 싶은데 무슨 자격증을 따야 하느냐고 물어오는 경우가 있다"며 "학생들이 주위에 비해 자격증을 여러 개 갖고 있지 않으면 왠지 스펙이 모자랄 것 같아 불안해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취업준비생들은 어떤 자격증이 쓸모있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기업들은 대부분 인사관련 자료는 ´대외비´로 취급하고 있어 자격증의 가산점 유무 등은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렵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 대부분 자격증 깊이 없어
=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대부분 취업준비생의 자격증 취득에 회의적인 반응이다. 서류전형에서 조금 반영되는 것이 보통이고 당락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직무와 크게 상관없는 자격증은 서류전형에서조차도 가산점을 받을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한 대기업의 인사담당자는 "업종과 상관이 없는 자격증은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볼 수 있다"며 "혹시 면접 전형 때 다양한 자격증이 고려돼 성실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당락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게다가 취업준비생들의 자격증은 비전공자도 서너 달 공부하면 딸 수 있을 정도인 것이 많다는 점도 ´자격증 무용론´을 뒷받침한다.
한 대기업의 관계자는 "많은 취업준비생이 딴 자격증은 가산점을 주기에는 변별력이 떨어진다"며 "가산점을 줄 만큼 깊이 있는 자격증을 따는 경우가 별로 없으니 자격증을 공부할 때는 남들이 다하는 것보다는 더 깊이 있고 전문적인 자격증을 따는 편이 유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출처 : 매일경제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