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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난 6개월만에 천만원 모았어!2006-07-12
작성자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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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여대생이 6개월간 천만원 모으며 겪은 좌충우돌 경험담

고3 시절이던 지난 2003년, 2차 수시로 지원했던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그 동안 금기시 됐던 ‘돈’의 매력 속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다. 가지고 싶은 것을 다가질 수 있게 해주는 그 돈의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이라니!

당시 나의 비자금은 이렇게 조성됐다. 부모님께 10군데의 대학에 수시전형으로 지원한다고 말씀드린 뒤, 실제로는 2군데만을 지원하고 부모님으로부터 빼돌린 8곳의 수시전형 요금이 바로 그것. 이를 통해 나의 화려한 생활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돈을 펑펑 써가며 부르주아의 생활에 전념해 있던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청천벽력같은 말씀이 떨어졌다.

“자, 입학금은 내가 줄 테니 등록금은 네가 벌도록 하여라.”

오 마이 갓!! 어릴 때부터 효녀랍시고 늘상 입에 달고 살았던 나의 말이 있었으니, 바로 “난 대학가면 등록금은 내가 벌어서 다닐 거예요”. 바로 그 말에 아버지가 벼르고 계셨던 것.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라면 다 알 것이다. 입학금과 등록금이 별개라는 것을. 2004년도 당시 입학금은 70만원, 등록금은 330만원 가량이었다.

정말 하늘이 노래졌다. 이미 통장의 잔고는 80%쯤 사라진 뒤였기 때문이다. 나의 파란만장했던 아르바이트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여자는 절대 써주지 않는 편의점 야간알바 나는 예외?

2003년 12월, 나의 아르바이트 생활은 개봉역에 있었던 편의점에서 출발했다. 나이가 어리면 써주지 않는다는, 여자는 써주지 않는다는 그 편의점 야간아르바이트. 난 만 18세의 여자였지만, 아르바이트가 처음이었지만,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몰랐다. 여자는 안 써주는 줄은. 도대체 왜, 나를 고용했던 것일까? 당시 편의점 점장님의 말을 빌리자면 이랬다.

“뭐가 그렇게 자신감이 넘쳐나는지. 처음이면서도 계속 잘 할 수 있다는 말만 연발하고, 당시 아르바이트생도 모자라서 ‘요놈 봐라’ 하고 고용했지.”

운 좋게 들어간 편의점. 밤낮이 뒤바뀌다 보니, 수능이 끝났다고 놀러 다니는 친구들과는 작별을 고해야 했다.

그러나 (등록금을 벌어서 내라는) 아버지의 완고함에 눈물을 머금고 꿋꿋이 버텼다.

주중 하루에 10시간씩, 시급은 2,800원으로 약 60만원 가량의 월 수입이 고정적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등록금 입금은 2월 중순. 이렇게 모으다가는 석 달 동안 돈을 하나도 쓰지 않는다 해도 180만원밖에 안됐다. 이것으로는 330만원인 등록금에 많이 모자랐다. 눈 밑 다크 서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나는 다른 아르바이트를 찾기 시작했다.

그룹 과외 짭짤한데~

그 때, 운 좋게 옛날에 나를 가르치시던 과외선생님이 이사를 가시면서 내게 그룹과외를 소개시켜 주셨다. 중학교 3학년 여학생 4명이었다. 가장 중요한 수입은 팀당 60만원이었다. 과외가 처음이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숨긴 채 나의 선생님 노릇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서로에게 라이벌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한 아이를 칭찬해주면 다른 아이가 부쩍 숙제도 잘해오고 이것저것 질문했다. 난 눈치를 봐가며 한 아이씩 돌아가며 칭찬했다. 능력에 따라 진도도 다르게 나갔다. 틈틈이 쪽지시험을 보며 아이들을 자극했다. 아이들과 나와의 관계가 원만하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의 성적은 눈에 띄게 오르기 시작했다.

덕분에 새 학기가 시작하는 3월에는 1팀이 더 늘어 총 2팀의 과외를 맡게 되었다. 내가 맡은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소문에 소개를 받은 것이다. 편의점 알바를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3월부터는 고정수입으로 한 달에 180만원씩을 벌게 되었다. 50만원 정도 모자랐던 등록금은 일단 아버지에게 빌려서 낸 뒤, 3월에 받은 월급으로 갚았다.

꿈에 그리던 입학, 견딜 수 없는 고통의 나날들

편의점 아르바이트만 할 때는 견딜만 했는데, 아니 편의점과 과외를 할 때만 해도 이정도의 고생은 할 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에 입학을 한 뒤로 생활이 엉키기 시작했다. 공대라서 21학점을 꽉꽉 채워 들어야 했고, 선배들과도 만나고, 동기들과도 놀고 싶었다.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에는 어떻게 시간을 빼내 참여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친해진 선배에게 밥을 얻어먹을 시간조차 없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잠이었다. 학교에서도 졸고, 밥 먹다가도 졸고, 과외하다가도 졸고, 가끔은 편의점에서 구석에 앉아서 몰래 잠을 자기도 했다.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통장에 쌓여 가는 돈, 가끔 휴가같이 주어지는 시간들이 너무 달콤했었다.

지킬 수 없는 약속들이 늘어갔고, 잔머리 굴리는 능력도 함께 늘어갔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정확히 4번 들어갔던 수업이 있었다. 개강, 중간고사, 기말고사, 종강 정확히 딱 이렇게 4번이었다. 교수님은 나를 매우 안타까워하시며, 개인적으로 상담을 하자고 연락을 하셨다. 하지만, 상담조차 가지 않았다. 그때 상담 시간에 교수님 앞에 나타난 사람은 내 친구. 친구는 내가 시킨 대로 교수님께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나는 C+이라는 학점을 받을 수 있었다. 친구가 교수님께 드린 말은 이렇다.

“이 친구가 요즘 안 좋은 일이 겹치나 봅니다. 갑자기 집이 파산하여 학교에 나올 수 없는 처지에 다리까지 다쳐 매우 힘들다고 합니다. 안타까운 심정에 학점이라도 잘 주십사 제가 이렇게 친구 대신 오게 되었습니다.”

과연 교수님이 믿으셨을 지는 의문이지만, 그때는 정말 밀려드는 잠 때문에 아침 일찍 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그때는 어쩜 그렇게 등록금 아까운 줄 몰랐는지.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적응이 되어갔고 공강시간, 전철 안, 걸어 다니면서도 잠을 잘 수 있는 기술을 익히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조금의 여유가 생기자 신나는 새내기 생활을 만끽할 수 있었다.

돈독 제대로 올라, 선배들에게 빌붙기!

신나는 새내기 생활에도 돈이라는 개체가 작용한다. 내 피같이 번 돈을 절대로 쓸 수는 없었다. 파란만장한 대학생활, 학기 초에는 선배님들이 밥을 사준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내 생활비는 소정의 차비를 비롯해 10만원을 넘지 않았고, 이러한 생활은 3월뿐 아니라 1학년 1년 내내 지속되게 되었다.

여기서 선배들에게 밥을 얻어먹는 가장 중요한 팁이 몇 가지 있다.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선배만을 공략해야 된다는 것이다. 자꾸 연락을 하다보면 세뇌되어 나중에는 당연한 것처럼 밥 사준다고 전화가 온다. 그 선배의 성격은 자존심이 세고 돈을 잘 쓰는 사람일수록 좋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혼자 가야한다는 것. 또 선배의 주머니사정을 빠르게 눈치 채서 가끔은 싼 것을 먹자고 졸라주는 것이 예의이다.

꾸준히 돈 모으는 덴 적금통장이 최고!

꾸준히 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적금이 중요하다. 내 생각에 적금의 최대 미덕은 이자가 아니라 돈을 뺄 수 없다는 점이다. 오기가 생겨서 계속적으로 입금을 하게 된다. 당시 비교적 이율이 괜찮았던 신한은행의 잘생긴 은행원한테 적금통장을 개설하게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계속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한 달에 100만원씩을 1년 간 입금하기로 했다.



돈을 알게 해준, 첫 월급으로 구입한 책. 많은 도움이 되었다!
ⓒ 류하나 대학생기자
돈이 쌓여갈 때마다 벅차오르는 기분은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물론 나는 무식하게 돈을 벌었다. 당시에는 머리를 쓰지 못하고 여러 가지 피곤함과 하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 꾸역꾸역 돈을 모았다. 6개월을 버티기가 너무 힘들었다. 결국 몸이 아파 편의점 야간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게 되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놀라웠다. 3월부터 8월까지 번 돈의 합계는 사용한 것을 제외하고 약 970만원에 이르렀던 것이다!

정말 피와 땀과 눈물이 섞여 내 스스로 만들어낸 돈이었다. 절대 건드려서도 쓸 수도 없는 내 돈. 다시 돌아가서 똑같이 하라면 절대로 해낼 수 없는 20살의 열정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난 돈에 대한 개념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부모님 돈 빼돌려 부르주아처럼 살아가던 나의 모습. 지금은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는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많이 울고 많이 느끼면서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또한 사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는 현실도 몸소 깨닫게 되었다. 힘들게 번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지 않은가.

물론 학교에 친구가 없어진다는 거, 선배도 잃을 수 있다는 거, 눈밑의 다크 서클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거, 언뜻 보면 시체로 보일 수도 있다는 거 등등 대충 이러한 단점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 중에 가장 활기찼고,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기회의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아, 그리고 그 때 벌었던 1,000만원말인데, 은행의 이자를 먹으며 한 푼도 도망가지 않고 주인이 요긴하게 사용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잘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출처 ; 미디어캠퍼스 류하나 대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