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백주연씨(26)는 지난 3월 경북대 간호대에 개설된 미국간호사 자격시험 강좌에 등록했다.
서울의 미국간호사 전문학원과 연계된 이곳 강좌에는 대구시내 각급 병원의 간호사 30여명이 함께 수업을 한다. 모두가 미국간호사 자격 취득이 목표다. 백씨도 마찬가지다.
"기회가 닿으면 미국으로 진출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학위도 따고 싶고요."
백씨는 "미국 병원은 학비까지 대주며 간호사들의 석·박사 학위 취득을 장려하는 것으로 듣고 있다"며 미국 진출 의사를 피력했다.
한 주부 간호사는 다른 이유를 댔다. 미국 대학으로 유학갈 계획인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싶다는 것. 당당히 현지 간호사로 취업한다면 경제적인 면에서 보다 안정적일 것으로 기대했다.
1960년대 서독으로 대거 파견되면서 국가경제의 한축을 담당했던 아련한 추억을 가진 이땅의 간호사들이 다시 떠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번에는 미국이다. 30만명의 간호사 인력이 부족하다는 미국이 간호사 수입정책을 펴면서 양질의 한국 간호사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미국행을 겨냥하고 있다. 이미 서울에는 영국, 홍콩에 이어 토플시험 등 현지 자격시험장까지 생겼다. 게다가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은 최근 미국 뉴욕주 100개 병원체인인 세인트 존스 리버사이드 병원과 협약을 맺고, 앞으로 1만명의 한국간호사를 진출시키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간호사들은 다시 떠나는가.
당장 봇물처럼 빠져나가지는 않는다 해도 여러 여건을 감안하면 해외진출은 한 줄기를 이룰 태세다. 대구·경북지역 간호학과 개설 대학들은 이미 교과과정에 미국간호사 자격을 겨냥한 다양한 과목을 편성하고 있다.
특히 계명대 간호대는 미국 현지 간호대 및 병원과 직접 연계해 별도의 미국간호사 자격시험 강좌를 개설하고, 적지 않은 인력을 양성해 오고 있다. 6개월 코스로 2001년 시작된 이 강좌에는 매번 50∼70명의간호사들이 수강하고 있다. 지금까지 80여명이 미국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미국 현지병원에 취업해 떠난 이들은 25명에 이른다.
전국적으로는 10만여명의 간호사 가운데 지금까지 6천여명이 미국간호사 자격증을 획득했고, 이 가운데 300여명이 미국으로 진출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정식비자를 받지 않고 임시 취업을 한 경우를 합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정숙 계명대 교수(간호대)는 "미국은 대학내 간호학과 교수들이 부족해 간호사 인력양성이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향후 상당기간 외국의 간호사를 수입할 수밖에 없다"며 "한국의 간호사들은 억척스럽고 실력이 있어 호평을 받고 있지만 말하고 듣는 영어구사 능력이 장벽"이라고 말했다.
간호사들의 해외 진출은 과거 8천여명 규모의 서독 진출과는 확연히 다른 배경을 갖고 있다. 서독 진출 당시에는 한국내 가족부양을 위한 가난 탈출이 큰 이유였다. 특히 당시 파견 간호사들의 월급을 담보로, 서독으로부터 차관을 받는 애절한 사연이 있다.
지금은 보다 나은 근무여건이 매력으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의 간호사 초봉이 대략 3만5천달러(3천400만원)이상인 데다 근무여건도 3교대로 이뤄지는 국내와는 질이 다른 것으로 평가된다. 또 해외진출로 인한 다양한 경험과 함께 꼭 해외에 진출하지 않더라도 국내의 외국의료기관 개방이 이뤄질 경우 해외자격증과 근무경험이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전망도 미국간호사 자격증에 대한 선호도를 높이고 있다. 이와 함께 자녀의 해외유학 동반, 본인의 미국 유학과 학업연장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이은주 경북대 교수(간호학과)는 "미국의 경우 간호사 한명이 상대하는 환자의 수가 훨씬 적고, 또 의료기관에서 차지하는 간호사의 위상도 상대적으로 높다"며 "간호사를 의사에 대한 단순 보조자로 생각하는 등 간호사에 대한 인식부족이 해외진출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출처 : 국민일보 박재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