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한국어 강사가 된다고 하기에 기대하고 교육을 받았는데 남은 건 좌절과 분노뿐입니다.”
경기 안산에서 운전자들을 상대로 길거리 장사를 하는 김정명(30·가명)씨는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억울한 생각뿐이다.
그는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서울 유명 중국어학원에서 ‘해외취업을 위한 한국어 강사 연수 과정’에 등록해 공부했다. 하루 5시간씩 6개월 과정을 마치면 해외에서 한국어 강사로 활동한다는 말에 김씨를 포함해 60명이 함께 교육을 받았다. 교육비 330만원 중 30만원만 개인 부담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정부지원금으로 충당됐다.
한국어 강사 꿈은 연수를 마치면서 산산이 깨졌다. 알선업체가 제의한 일자리는 월급 400달러를 받는 공장 근무였다. 연수업체는 단기 체류자까지 감안하면 30명이 넘는 수료생들이 해외 취업에 성공했다고 주장하지만, 수료생들은 지금까지 한국어 강사로 일하는 동료는 10명도 채 안 된다고 반박한다.
정부가 지원하는 ‘해외취업 연수 프로그램’이 연수업체와 알선업체 배만 불리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수업체는 정부지원금을 받기 위해 연수생들의 교육 내용을 감안하지 않고 무조건 해외로 내보내는 데만 급급해 해외취업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4일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공단은 국내 미취업자의 해외 취업을 돕기 위해 2004년부터 병아리 감별사와 태권도 사범 등 각 분야를 대상으로 해마다 60억원을 해외취업 연수에 지원하고 있다. 연수업체로는 2004년 19개, 지난해 28개, 올해 26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그 동안 이들 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수료생 중 해외취업을 나간 인원은 2004년 571명에서 지난해 1621명으로 늘었다고 공단 측은 밝히고 있다.
문제는 공단 측이 이들 기관에 지원금을 지급할 때 해외취업 여부만을 확인할 뿐 연수생들이 연수 내용에 맞는 직종으로 취업했는지를 검증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연수업체는 교육 시작 당시 지원금의 50%를 받고 교육생 절반 이상이 취업하면 나머지 50%를 성공보수금으로 받게 되므로, 연수 취지와 무관하게 수료생들의 출국만 독려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알선업체는 정부지원금을 노리고 유명 학원 이름을 빌려 연수생을 모아 교육한 뒤 해외 단기 취업 등에 마구잡이로 내몰고 있는 실정이다.
김씨가 교육받은 중국어학원도 장소만 제공했을 뿐 실제로는 전직 공무원 A씨 등이 연수생 교육과 관리를 맡은 것으로 확인됐다. A씨와 함께 일한 B씨는 지난달 또 다른 업체를 내세워 다시 연수생을 모집하고 있다.
수료생들은 교육 내용과 상관없는 분야의 취업을 권유받고서도 국내에서 취업할 경우 정부보조금 300만원을 물어 내야 한다는 말에 울며겨자먹기로 제안을 받아들이고 있다. 김씨도 300만원을 물지 않으려고 잠시 해외로 나갔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업체가 공단에 해외 취업자로 보고한 현주은(가명)씨는 “남편을 따라 인도네시아에 갔다오긴 했으나 취업을 한 건 아니었다”면서 “업체를 고발하려다 구상금을 청구하겠다는 협박에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이에 공단의 이정우 해외취업 본부장은 “연수업체에 수료생의 출입국 증명원 등 제출 서류를 보강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면서 “인도네시아의 경우는 근로자 송출이 일시중지돼 한국어 강사 수요가 줄어든 측면이 있다”고 했다.
출처 : 세계일보 박종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