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O 교우님 실례지만 취직하셨나요”
지난 2월 서울 한 사립대를 졸업하고 아직 취업하지 못한 김모(30)씨는 지난 한 달 동안 취업률을 조사하는 학교 아르바이트 학생들로부터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전화를 받았다. 첫 전화에서 취업이 안 됐다고 말해 줬지만, 일주일 간격으로 ‘그 사이 취업되지 않았느냐’는 확인전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전화 확인이 진행되는 동안 같은 내용을 묻는 전자우편도 날아왔다.
김씨는 “학교에서 취업률에 신경쓰는 것은 이해하지만 가뜩이나 취업이 안 돼 스트레스 받는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느냐”며 “학교와 비슷한 국번이나 모르는 번호가 휴대전화에 뜨면 아예 안 받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올해부터 대학구조개혁 방안의 일환으로 모든 대학의 정보를 상세하게 공개하기로 한 가운데,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대학들에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복조사로 인한 졸업생들의 불평과 함께 ‘통계만을 위한 조사’에 온 행정력을 투입해야 하는 대학 측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해 정부는 ‘대학정보공시제’를 도입, 각 대학이 교원확보율과 졸업생 취업률, 학교재정 현황, 신입생 충원율, 연구시설 현황 등을 홈페이지를 통해 의무적으로 공개토록 했다. 이는 학생과 학부모, 기업체 등의 대학 선택이나 평가 등에 도움을 주고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공시의무를 위반하면 행·재정상의 제재도 가해진다.
특히 졸업생 취업률의 경우 각 대학은 지난해 8월과 올 2월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 4월1일 취업현황을 다음달 2일까지 한국교육개발원에 제출해야 하며, 이후 검증작업을 거친 최종 결과는 오는 9월 공개된다.
이에 각 대학은 가뜩이나 청년층 실업난이 가중되는 현실에서 대학의 명운을 좌우할 취업률 제고에 더더욱 신경쓸 수밖에 없다. 서울의 한 대학은 지난 한달 동안 모두 3차례에 걸쳐 취업자 현황을 조사했다. 졸업식 당일 개인별 취업 상황을 제출받은 뒤, 여기에 누락된 졸업생의 경우 각 학부 행정실에서 조교 등이 2차 유선 확인에 나섰다. 2차 확인에 실패한 졸업생은 학교 취업정보센터에서 지난 2주간 7∼8명의 아르바이트 학생을 고용해 최종 조사에 나섰다.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여러 사람이 여러 번 조사하다 보니 중복조사된 경우도 많고, 재차 전화를 받은 졸업생들의 항의도 이어졌다. 취업에 실패한 졸업생의 경우 학교 측에서도 더 신경을 써야만 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취업에 실패한 졸업생의 경우 아침부터 전화하면 스트레스를 줄 수밖에 없어 아예 모든 조사 전화를 오후 2시 이후에만 진행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의 불만도 고조되고 있다. 무엇보다 취업의 질을 감안하지 않은 외형적인 조사에 대한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또다른 대학 관계자는 “취업의 질적 측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데 이번 조사는 외적인 데이터만 갖고 평가가 이뤄진다”며 “자칫 대학들의 외형적인 취업률 부풀리기 경쟁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대학정보공시제에 따른 공시 항목>
1. 학교 조직 및 전공 설치 현황에 관한 정보
2. 교사, 교지, 교원, 수익용 기본재산에 관한 정보
3. 학생 모집, 등록, 재학 및 졸업에 관한 정보
4. 취업 및 학생 진로에 관한 정보
5. 학사 운영에 관한 정보
6. 학교 재정에 관한 정보
7. 대학발전 계획 또는 특성화 전략에 관한 정보
8. 교원의 연구, 교육 및 산학협력에 관한 정보
9. 도서관 등 연구지원시설이나 제도에 관한 정보
10. 그 밖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사항
※ 각 대학은 해당 정보를 학교 인터넷 홈페이지에 등재하거나
기타 적절한 방법으로 공시
자료=교육인적자원부〉
출처 : 세계일보 나기천·김정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