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력자가 넘쳐나도 기업 쪽에서는 쓸 만한 인력을 찾지 못해 아우성이다.
우리나라 고교졸업자 10명 중 8명이 진학을 선택하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너도나도 고시에 매달린다. 이로 인해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취업준비자’ 수는 지난달 50만명을 훌쩍 넘어섰고, 향후 10년 동안 55만명에 육박하는 대졸 인력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길거리를 방황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 쪽에서는 여전히 인력난에 애를 태우고 있고, 의사와 변호사 등 일부 전문직에서도 인력부족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학력 인플레’에 따른 이 같은 노동시장 불균형이 향후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너무 많이 배워도 탈=23일 통계청에 따르면 1990년 33.2%에 불과하던 고교졸업자의 대학 진학률은 지난해 82.1%까지 증가했다. 이에 따라 대학 졸업자(전문대 포함) 수도 한 해 53만명에 이르고 있다. 스스로 ‘배울 만큼 배웠다’고 생각하는 예비 취업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학력자를 흡수할 수 있는 일자리의 증가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과잉교육’이 점차 사회문제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자 관련 기관에서도 연구결과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박천수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은 최근 ‘노동시장의 구조적 요인에 관한 연구’라는 보고서를 통해 “공석으로 남아 있는 많은 일자리와 과도한 구직자가 공존하는 것은 노동시장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다양한 사회·경제적 부작용을 수반한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자신이 ‘과잉 학력자’라고 생각하는 이들 중 현재 직무가 ‘평생직업’이라는 사실에 긍정적인 사람은 17.9%에 불과했다. 현 직장이 ‘평생직장’이라는 데 대한 긍정적 답변은 고작 10.2%였다. 결국 ‘학력 인플레’는 취업 이전뿐 아니라 취업 이후에도 잦은 이직 등을 초래, 노동시장 악화를 초래한다고 박 연구위원은 분석했다.
김기헌 한국청소년개발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올 초 내놓은 연구논문에서는 ‘과잉 학력’에 따른 임금손실이 12%에 이르고, 직무 만족도에도 큰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부연구위원은 “교육 확대가 가장 빠른 속도로 이뤄진 우리나라에서 과잉교육의 문제는 향후 더 심각하게 전개될 개연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양’보다 ‘질’이 우선돼야=지난달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표한 ‘중장기 인력수급 방안’에서는 향후 10년간 전문대 졸업자 35만4000명과 4년제 대학 및 대학원 졸업자 19만4000명이 노동시장에 초과 공급될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 10년 뒤 변호사와 의사는 각각 8만3000∼8만8000명, 2만∼3만4000명 모자랄 것으로 예상되는 등 일부 직종에서는 오히려 전문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지적됐다.
전문교육을 받은 인력들이 매년 5만명 이상 남아돌지만, ‘적재적소’에 배치되지 못해 노동시장에서 방황하게 되는 셈이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경제침체를 걱정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 박 연구위원은 “노동시장에 (학력 등의) 구조적인 장벽이 존재할 때 수요와 공급 측면만 고려한 일방적 투자는 적절한 성과를 얻기 어렵다”며 “기업에서도 학력과 영어능력에만 의존하지 말고, 해당 직무에서 생산성이 높은 인력을 선발하는 채용기법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 세계일보 김창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