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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전은 싫다…안정적 공무원이 좋다2006-03-03
작성자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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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2명 모집에 응시자수만 7만8천여명. 대기업 입사지원 현황이 아니다. 지난해 7급 공무원 시험은 무려 115대 1이라는 경쟁률을 보였다. 공무원 시험관련 학원업계는 7·9급 공무원 시험 준비생의 숫자가 30만~5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에 교사와 경찰 시험을 준비 중인 사람까지 합치면 추정치는 70만~80만명에 달한다.

또 고등고시와 공기업까지 ‘범(凡) 공무원직’에 포함시키면 그 숫자는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신드롬이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 만큼 우리 사회는 ‘공무원 선호사회’로 급선회하고 있다. 각종 공무원직의 모집 경쟁률이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공무원을 선호하는 의식도 일상생활에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대입보다 치열…학원마다 만원 서울 신림동의 한 공무원시험 준비 학원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모습. 500여명의 수강생으로 꽉 찬 대형 강의실이지만 맨 뒷자리에 앉은 사람까지 수업에 집중하는 모습이 시험 열기를 반영하는 듯 하다. /남호진 기자

-환란 겪으며 위험기피 사회로-

◇신랑감으로는 공무원이 최고=남성이 여교사나 공무원을 결혼 상대자로 선호한 것은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여성이 남교사나 공무원을 선택하려는 것은 확실히 달라진 풍토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성 응답자가 선호하는 배우자 직업에서 2001년만해도 교사가 순위 자체에 없었다. 교사는 2002년에서 2004년까지 5~7위를 맴돌았지만 지난해에는 2위로 올라섰다.

공무원 역시 2003년까지는 3위 이하에 머물렀다가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1위를 차지했다.

듀오 형남규 이사는 “월급은 낮을지 몰라도 직업 안정성, 복지제도와 퇴직 이후의 연금 등을 따지면 다른 직업보다 오히려 낫다는 판단을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예전엔 여교사들이 남교사를 배우자감으로 기피했지만 요즘엔 교사부부가 가장 이상적인 커플로 꼽힌다”고 전했다.

대학생들의 직업 선호도에서도 공무원과 교사의 비중이 커졌다. 구인·구직업체 잡링크가 대학생들을 상대로 2003년과 2005년에 직업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공무원과 교사는 두 해 모두 각각 1위와 3위를 차지했다.

교대의 인기가 최근 높아진 것도 이같은 현상을 반영한다. 2000년 이전만 해도 교대는 서울의 중상위권 대학 정도의 점수대였다. 대입 중앙학원 이치후 실장은 “2002년부터 교대의 경쟁률과 점수가 급등했으며 이제 교대 입학수준은 서울 상위권대 중하위권 학과를 상회한다”고 말했다.

◇‘위험기피형 사회’의 부작용=공무원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게 된 것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안정적인 직장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공통적인 견해다. 고용이 불안정한 현실에서 안정된 직장을 찾으려는 개인의 선택은 한편 당연하지만 도전보다 안정을 택하는 ‘위험기피형 사회’가 가져올 사회 침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한 공무원시험 학원 강사는 “저 정도 학력과 나이면 다른 직업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하는 수강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또 “한 고등학생은 대학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급수를 올리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서 “자기 꿈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안정적인 것만 쫓아가는 세태가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적성에 맞아 선택” 13% 불과-

본인의 판단뿐 아니라 학부모, 교사 등 외환위기 여파를 직접 경험한 어른들이 자녀나 학생을 공무원직으로 ‘떼미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학원 강사는 “내가 만나본 수험생들은 대부분 차선책으로 공무원의 길을 택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공무원이 되겠다고 한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공무원 시험 학원 관계자조차도 ‘공무원 선호 열풍’에 대해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한다. 남부행정고시학원 박옥수 부장은 “9급 공무원은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 등본이나 인감을 떼준다”면서 “이 일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몸으로 뛰면서 사회에 봉사하려는 사람들로도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명문대학을 나온 창의력 있는 고급 두뇌들이 9급 공무원이 되겠다고 치열한 경쟁을 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급 인력은 머리 쓰고 성취감 느낄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데 말단 공무원직에서 단순한 일을 하니까 오히려 스트레스 받는다. 그래서 불친절한 거다”라는 해석도 내놓았다.

한국고시신문 이성진 취재부 팀장은 “‘직업 안정성 때문’에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이 많은 것은 아쉬운 일”이라고 말한다. 이 신문이 지난해 7·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 3,30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공무원이 되려는 이유’에 75%가 ‘직업의 안정성 때문’이라고 답했다. ‘적성에 맞아서’라고 답한 비율은 13%에 그쳤다.

-명문대 나와 9급 준비 ‘사회적 낭비’-

서울시교육청 교원정책과 신영숙 주사는 답답한 민원 전화가 많다고 하소연이다. “‘교원 임용 나이 제한도 폐지되고 해서 시험 한번 보려고 한다. 교사되면 신분이 보장되고 보수도 적지 않고 좋지 않으냐’고 묻는다. 나도 학부형이지만 내 자식이 그런 교사 밑에서 공부하면 좋겠냐”고 전했다.

◇활력 높일 수 있는 사회 시스템 필요=이같은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무원 채용 제도를 개선해야 함은 물론, 도전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원 임용시험 제도를 없애고 개별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채용하는 선진국형으로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금은 교원자격증을 많은 사람에게 쉽게 주고, 단순 주입식 시험으로 교원을 선발하는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제도를 갖고 있다는 것. “대학 교육을 강화해서 교원이 될 준비를 충분히 하고, 적절한 인성과 교직관을 가진 사람이 길러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원은 “특히 지식을 필요로 하는 고급 직종에서 고용 유연성을 높이는 등 실패하더라도 재기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면 굳이 공무원이 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9급 2천명 모집에 17만8천명 몰려-

공무원 선호 추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직종은 9급과 7급 공무원. 9급 공무원 시험은 2000년도에 응시자수가 9만명대였지만 작년에는 거의 18만명에 이르렀다. 5년동안 2배가 늘어난 수치다. 모집인원은 2,000명대 초반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지난해 7급과 9급 시험은 응시자수만 25만7천명이었다. 7·9급 공무원 시험 준비생 숫자를 30만명에서 50만명으로 추정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준공무원격인 공기업 역시 인기가 치솟았다. 채용 경쟁률은 못해도 100대 1을 넘는 것이 기본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2001년 입사 경쟁률은 38대 1이었다. 27명 모집에 1,019명이 지원했다. 지난해 경쟁률은 무려 309대 1을 기록했다. 29명 모집에 8,947명이 원서를 낸 것이다. 4년 만에 지원자가 9배 가까이 늘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HR팀 손광식씨는 “대기업에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둔 뒤 오는 사람의 비율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최고의 웰빙 직업’이라고 꼽히는 교사의 인기도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임용 경로가 초등교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양한 중등교원이 더욱 그렇다. 중등 교사직 시험에 응시한 사람(전국)은 지난해 5만5천8백49명에서 올해 5만9천90명으로 늘었다. 서울시 중등 과목 교사 응시자수는 2000~2003년 1,000~2,000명대였던 것이 2004년에 4,122명으로 급증했고 지난해에는 6,000명에 육박했다.

고등고시 중에서 ‘공무원’ 성격이 가장 강한 행정고시(5급)의 경쟁률도 2000년 이후 높아졌다. 2001년도에 45대 1이었던 경쟁률은 2004년에 70대 1을 기록했다.

출처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