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기 못맞춰 계약취소…새 인력 구하기 힘들고
숙련공은 하나둘 떠나…고용허가제 보류 촉구
컴퓨터 모뎀 케이스 등을 국내 기업들에 납품하는 피닉스전자 김재기(53) 사장은 지난 8일 장가들러 고향 간다며 필리핀으로 떠난 코스미를 생각하면 “아쉽고 한이 맺힌다”고 말한다. 2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김 사장은 인력부족 탓에 지난달 납품기한을 못해 한 군데가 계약취소를 통보했고, 2곳으로부터 앞으로 발주물량을 줄이겠다는 통고를 받은 상태다. 인력 구하기 힘든데 숙련공까지 떠났으니 그저 막막할 따름이다.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 입주한 정광티에스아이(TSI)는 플라스틱 공구함을 비롯한 플라스틱 산업용품을 생산하는 업체다. 종업원 30명을 거느린 이 회사는 지난해 26억원의 매출을 달성했고, 이달 말 동종업체 인수합병을 통해 올해 매출 규모를 33억원대로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나형순(51) 사장은 국내인력 구하기도 쉽지 않고,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기도 힘든 터라 자칫 설비를 놀리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인력 부족으로 물건을 주문받고도 납기조차 맞추기 힘들다고 호소하는 중소기업들이 늘고 있다. 환율하락과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 압력으로 고전하는 가운데 ‘눈앞에 뻔히 잡을 수 있는’ 매출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규모가 작고 기술력이 취약해 외국 인력에 의존해야 하는 중소기업일수록 인력난 우려가 큰 상황이다. 산업연수생을 받고 있는 중소기업인들의 모임은 지난 22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고용허가제 전면 실시가 중기 인력난을 부채질해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며 전면시행 보류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외국인 근로자 보호와 내국인 취업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고용허가제를 시행해야 할 형편이다.
이처럼 산업연수생 제도와 고용허가제를 둘러싼 의견충돌이 계속되는 가운데 중소기업의 인력난은 가중되고 있다. 실제 중소기업인들은 고용허가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인력난이 인건비 문제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중소기업연구원이 최근 산업연수제와 고용허가제를 병행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하고 있는 업체 117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를 보면, 숙련된 인원의 고용이 어렵다고 불만을 털어놓은 비율은 72.6%(복수응답)나 되었다. 반면 각종 비용과 인건비 지출 탓에 애로가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39.3%에 그쳤다.
중소기업연구원 김세종 박사는 “산업연수생제 폐지에 반발하는 중기인들의 목소리는 우리 중소기업들의 열악한 산업구조와 깊은 관련이 있다”며 “중소기업들이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고부가가치의 기술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출처 : 한겨레신문 임주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