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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公約으로 돌아가라2008-08-01
작성자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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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망하다. 정권을 잡은 쪽의 공약(公約)이란 것이 원래 속이 비어 있는 것(空約)이어서 그걸 다 믿는 게 어리석은 일이라고는 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티끌만큼도 지켜지지 않을 수가. 국가비전도, 행동규범도, 국정지표도 모두 허언(虛言)으로 바뀌어가는 꼴을 보며 이제 겨우 6개월째일 뿐이라며 너그러운 이해심을 보일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될까. 남은 4년6개월에 대해 걱정하고 우려하는 음습한 기류가 나라를 온통 덮고 있다. 기대라도 안했으면 실망도 크지 않았을 텐데….

이명박 정부는 출범 당시 대통령직인수위 백서인 2권짜리 두툼한 ‘성공 그리고 나눔’을 통해 국가 비전으로 ‘선진 일류국가’를 내걸었으며, 그 3가지 실천 요소로 ‘잘사는 국민’, ‘따뜻한 사회’, ‘강한 나라’를 설정했다. 말은 더없이 좋았다. 5개월이 지난 지금, 잘사는 국민이라고. 웬 턱도 없는 소리, 갈수록 삶은 팍팍해지기만 하는데. 법질서의 붕괴 등으로 인해 따뜻한 사회는커녕 모두에게 ‘짜증나는 사회’가 돼가고 있으며, 미국·일본·북한 등에 이리저리 차이는 ‘동네북 국가’가 돼버렸으니 이를 어쩐다. ‘창조적 실용주의’라는 현란한 행동규범, 섬기는 정부와 활기찬 시장경제 등 국정과제의 큰 틀을 정한 5대 국정지표는 또 어디서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는지.

잘사는 국민을 위해 경제만은 꼭 살리겠다는 철석같은 약속으로 출발한 이 정부는 바로 그 경제 성적표부터 낙제점이다 보니 다른 부문에 대한 기대는 더더욱 난망이다. 올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4.8%로, 1분기의 5.8%보다 1%포인트나 하락했다. 고유가로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어 서민들은 ‘못살겠다’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소비자물가지수는 6월에 5.5% 상승했다. 일자리 또한 최악이다. 6월 신규 취업자는 14만7000명으로 2005년 2월 이후 3년 4개월 만에 최저치다. 우리가 과연 잘사는 국민이 될 수 있을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명분으로 내건 촛불시위로 국론이 분열되고 법질서가 실종되면서 사회 어느 곳도 따뜻하지 않다. 도심의 불법·폭력 시위에 짜증나고,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장관도 경찰청장도 모두가 입만 열면 엄정한 법집행을 강조하지만 대한변협의 말 그대로 ‘길 잃은 법치를 우려한다’는 현실에 또 짜증나고, 개점휴업 상태로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 국회에 다시 짜증나고, 인터넷을 들어가면 서로를 헐뜯고 비방하는 익명의 난타전에 또 짜증나고, 국민세금을 제 주머니돈 쓰듯하는 방만한 공기업에 또 짜증나고, 또또또… 이렇게 무자비하게 짜증을 권하는 사회가 어디 또 있을까.

금강산 관광객 총격 피살사건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성명 파동, 일본의 독도 영유권 표기 작태와 미국 지명위원회의 독도 귀속국가 변경 사태 등에서 보여준 ‘맹탕 외교’‘허우적 외교’는 강한 나라의 꿈을 아주 접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국난에 가까운 위기상황을 보다 못한 많은 사람들이 ‘새출발 한다는 각오로 정신 바짝 차려라’, ‘대통령부터 참모와 장관까지 맡은 바 리더십을 십분 발휘하라’, ‘일관성있게 정책을 추진하라’, ‘대통령이 아니라 시스템이 일하게 하라’, ‘정부가 정부다운 자세를 취하라’는 등 백가쟁명식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하나가 공자님 말씀 가운데 토막처럼 옳은 말이긴 하지만 이 중 한두가지 방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아니다.

이 정권의 공약집은 바로 이같은 방향제시의 종합판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부터 참모, 장관, 차관, 그리고 말단 공무원까지 어렵게 만든 공약집을 다시 꺼내 읽을 필요가 있다. 무엇을, 어떻게, 어떤 정신으로 해야하는지가 그곳에 모두 들어 있다.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초심으로 돌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듯 정권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통상적으로 새 정부 출범 후 6개월간이라는 국민과의 암묵적 밀월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국민이 무작정 봐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은 낭만일 뿐이다.

출처 : 문화일보 최범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