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기말고사 기간까지만 해도 도서관이 불야성을 이루더니 시험이 끝남과동시에 학생들이 썰물처럼 학교를 빠져나가 텅텅 비었다. 그 많은 대학생들이 모두 어디로 갔을까? 신년 초를 각자 집에서 가족과 함께 편안히 보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요즘 대학생을 잘못 본 것이다.
새해를 맞은 대학생들의 화두는 여전히 취업이다. 새해 4개 부처 개각과 함께 노동부 장관이 새로 취임해 일자리를 늘리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으나 대학생들에게는 공허한 메아리로 느껴질 뿐이다.
한국사회의 고용현실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전국 120개 기업의 인사ㆍ노무담당 임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역시 고용시장이 불안할 것으로 내다봤고 주요 원인은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의 고용 경직성 때문이라며 이것이 완화되지 않으면 신규 채용이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82년생 개띠는 복학한 4학년으로 더욱 취업이 간절할 것이고 당장 2월에 졸업을 앞둔 예비 사회인들은 취업전쟁으로 명절도 없다. 겨울방학을 제대로 보내지 못하면 취업과는 멀어진다는 풍조가 대학생들 사이에 만연해 있다.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만이 도태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버린 것이다. 유명 어학원의 겨울방학 특강은 방학 한 달 전에 이미 마감되기 일쑤고 편입학원 등에는 독기를 품고 다시금 대학문을 밟으려는 학생들이 살벌하게 공부하고 있다. 보다 안정적인 직업을 얻기 위해 대학을 두 번 다니는 모습에서 이 시대 대학생의 애처로운 자화상을 본다.
관공서나 대기업에서 하는 인턴과 아르바이트는 취업과 직결된다고 보기 때문에 합격하기 위해 토익점수와 학점을 관리하는 건 더 이상 새로운 풍속이 아니다.
실제로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국내 주요기업 528개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전체의 42.7%가 인턴제도를 도입했고, 이 가운데 96.1%가 인턴으로 근무하던 사원을 정식으로 채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원봉사활동도 게을리할 수 없다. 자원봉사활동을 많이 했다고 하면 취업시 면접에서 조금이나마 나은 점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모전 지수(CQ)를 높여라´라는 말도 등장했다. 공모전 수상 경력은 취업에서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게 해주는 보증수표와도 같다. 학점에 나타나지 않는 실무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각 학과마다 소규모 팀을 만들어 공모전을 준비하느라 방학중에도 밤샘작업을 하는 대학생들이 많다.
이렇게 대학생들의 겨울방학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강행군으로 쉼표가 없다. 대학생들이 공부만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많은 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그 모든 노력이 정말 좋아서 하는 것이라기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 인턴경력이 그렇고, 자격증이 그렇고, 공모전 수상경력이 또 그렇다.
대학에서 학과공부에 충실한 것만으로 취업을 자신할 수 없는 현실은 뭔가 잘못됐다. 방학이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자신의 상품가치를 키우는 기간이 아니라 묻어둔 호기심을 시험해보는 기간이 됐으면 한다.
읽고 싶던 고전을 독파하거나 배낭을 둘러메고 아프리카 오지여행을 떠나도 취업 걱정이 없는 그런 ´호시절´을 바라노라고 새해 소망을 풀어 놓는다.
[강혜원 아주대학보 편집장]
출처 : 매일경제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