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
최근 대학 4학년생들의 취업 준비용 스터디 모임을 보면서 떠오른 문구입니다.
1999년 2월에 대학을 졸업한 저도 언론사 입사를 목표로 1년 이상 스터디를 했습니다. 당시는 같은 목표를 가진 학생들이 모여 6개월 이상 우직하게 공부했죠. 합격해야 모임 탈퇴가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스터디는 특정 기업의 입사와 전형에 맞춘 ‘초단기 목적형’으로 바뀌었더군요. 서류 합격자들끼리 필기시험용 모임을 꾸리고, 필기시험이 끝나면 바로 해산합니다. 이어 필기에 붙은 사람들끼리 다시 만나 면접 준비 그룹을 만듭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지난해 2월 고려대 졸업반이던 김모(28) 씨는 한국토지공사의 최종 면접을 앞두고 인터넷을 통해 ‘토공 면접자 모임’에 가입했습니다. 토공 면접을 앞둔 7명의 대학생이 모여 2주일 동안 강도 높게 면접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120명의 최종 합격자 중에 김 씨를 포함해 팀원 6명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지난해 7월 로레알코리아에 입사한 이모(25·여) 씨도 “로레알 입사 전 3일간 로레알 면접을 앞둔 응시생들만 모여 영어 토론을 준비했다”며 “같은 처지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라 ‘맞춤형 공부’가 가능했다”고 말했습니다.
구직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취업뽀개기’란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봤습니다. 올해 1월 한 달 동안 게재된 스터디 모집 공고는 980여 개. 이 중에는 ‘신한은행 1차 대비’, ‘CFA 1차 준비’ 등 구체적인 타깃을 밝힌 모임도 10개 정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채용 비수기(非需期)여서 그렇지 본격적인 취업 시즌이 되면 ‘○○기업 2차 영어토론’, ‘△△공사 최종면접’ 등 초단기 목적형 스터디 공고가 수십 개씩 게재된다고 합니다.
서로 경쟁자인데 불편하지 않을까요?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김 씨는 “‘다 같이 붙자’는 마음으로 준비하기 때문에 오히려 관계가 더 돈독해진다”면서 “설령 나만 떨어지더라도 해당 기업에 입사하려면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춰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합리적이면서도 냉정한 요즘 대학생들의 취업 대비 공부법에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출처 : 동아일보<박형준 산업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