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은 21세기형 창조적 인재 뽑는다는데…
직무적성검사 특강 찾아
충무로 학원가 문전성시
“학력고사 세대의 습관”
지난해 대기업에 입사한 박정철(29) 씨는 후배의 부탁을 받고 뜻하지 않은 ‘1일 과외 교사’가 됐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직무적성검사의 노하우를 전해주기 위해 꼬박 한나절을 보냈다. 박씨는 “취업이 바늘구멍이니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직무적성검사가 고시(考試)도 아닌데 학력고사식 벼락치기로 준비하는 건 무의미하지 않냐”면서 혀를 찼다.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21세기형 창조적 인재를 뽑겠다고 나섰지만, 콕콕 문제를 찍어주는 사교육에 익숙해진 취업 준비생들은 단순암기식으로 취업문을 두드리고 있다. 기업들의 요구는 디지털인데, 여전히 아날로그에 머물고 있는 것.
이번주 말로 집중된 2007년 대기업 하반기 공채 직무적성검사 시험을 앞둔 예비 직장인. 그들은 기출 문제와 유형별 질문 스타일을 정리한 직무적성 검사 문제집을 구입해 몇 번씩 풀어보는 것은 기본이고, 직무적성 검사 동영상 강의를 신청해 몇 명씩 돌아가며 보고, 충무로 등 학원을 찾아가 문제풀이 단기 특강을 듣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실제로 적성검사 문제집이 동이 나 ‘대기표’가 등장하는 등 삼성직무적성검사(SSAT) 문제집이 2005년에 비해 12배 이상 판매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인터넷 취업사이트에도 ‘문제 푸는 노하우’가 줄지어 게시되고 있다. 심지어는 같은 그룹 지원자들 간 모임을 만들어 각자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만든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공유하고, ‘콕 집어 주는 문제’를 찾아오는 수강생들로 충무로의 학원가는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충무로에서 몇 년 전부터 SSAT 강의를 개설한 우리취업아카데미 김상열 팀장은 “현재 온.오프 라인 수강생을 합친다면 수백명에 이를 뿐 아니라 올해만 해도 작년에 비해 배 이상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달달 외우면 취업문을 통과할 수 있을까. 채용 담당자들은 ‘효과 없음’이라고 단언했다. 한 대기업 채용 담당자는 “우리 직무적성검사는 단순히 문제의 정답 여부를 체크하기 위한 시험이 아니다”며 “인성, 적성, 창의력, 순발력 등 단기간에 절대 쌓을 수 없는 능력을 평가하기 때문에 암기식으로 공부를 해서 1차 관문을 통과하더라도 곧 걸러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몇 번의 모의고사로 문제에 대한 적응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준비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가영희 한국교육상담연구원 연구원은 “학원을 가야 안심하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암기를 해야 공부를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학력고사 세대의 습관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것”이라며 “절대 21세기 미래 인재형은 학원 등에서 배우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출처 : 헤럴드경제<남상욱.정지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