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고용은 보장되지만 근로조건은 정규직에 못미치는 이른바 ‘중규직’이 각 기업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만으로 양분화돼 있는 노동시장에 ‘무기계약직’과 ‘분리직군’, ‘하위직’ 등의 ‘유사 정규직’과 ‘유사 비정규직’ 노동자층이 새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 대해선 비정규직법 상 기업의 ‘차별시정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법 시행을 계기로 간접고용 확산과 함께 나타난 양대 현상이다.
무기계약직=기간을 정하지 않고 고용계약을 맺는다는 점만 정규직과 같다.
급여·복리후생·승진 등에선 기업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비정규직 때와 별반 차이가 없다. 최근 “정규직 전환”이라고 발표한 기업이나 기관 가운데 가장 많은 수가 여기에 해당된다. 비정규직법 시행일인 지난달 1일, 2년 이상 근무한 계약직 사원 2700여명에 대해 시행한 삼성테스코(홈플러스)나 정규직과 유사한 일을 해온 계약직 매장관리자 500여명을 무기계약직으로 바꾼 롯데마트 등이 대표적 사례다.
대상이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부분 정규직화 요건을 갖춘 이들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무기계약직 전환도 회사 쪽의 선별 절차를 거쳐야 한다. 외환은행은 전체 비정규직 직원 1572명 가운데 1천명만을 인사고과와 자격증 보유 여부 등으로 선별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분리직군=대표적 사례로 지난 3월 계약직 직원 3076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우리은행이 있다. 우리은행은 창구나 콜센터 업무 등을 하던 계약직 3076명을 개인금융서비스직군 등 기존 정규직군과는 다른 3개 직군을 신설해 편입시켰다. 무기계약직과 다른 점은 고용보장 외에 정규직과 구별되는 직군을 별도로 만들어 차별적인 임금·인사 체계를 갖췄다는 점이다. 이랜드 리테일(홈에버)과 산업은행에서 시행한 ‘직무급 무기계약직’도 분리직군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차별 때문에 민주노총 등은 ‘반쪽짜리’ 정규직이라고 강력히 비판한다. 실제 우리은행은 기존 정규직들은 호봉제와 집단 성과급제를 적용하는 반면, 분리직군 노동자들에게는 개인마다 설정한 목표치 및 실적에 따라 임금과 성과급을 지급하고 있다. 직군 간 이동은 불가능하고 직군 내 승진 체계도 단순하다.
하위직제=새로운 고용 형태 가운데 ‘가장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존 정규직의 최하위 직급보다 한 단계 낮은 하위직을 신설해 비정규직을 편입시키는 방식이다. 현대자동차와 부산은행이 시작했다. 현대차는 사무계약직원 등 377명을 일반직군 5급 신규 사원으로, 부산은행은 계약직 창구직원 등 606명을 7급 신규 사원으로 받아들였다. 이승민 금융노조 정책본부 실장은 “하위직급에서 기존 정규직 직급으로 올라갈 때 까다로운 절차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분리직군보다는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망=이런 식의 고용형태 전환은 앞으로도 줄을 이을 전망이다. 반면 고용불안에서 벗어난 ‘유사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과 활동이 활발해질 여지도 있다.
최근 비정규직 규모가 8400여명에 이르는 국민은행이 이들의 처우 개선을 놓고 노사협의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1등 은행’도 ‘정규직 전환’이 아닌 ‘중규직 전환’ 행렬에 합류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출처 : 한겨레<황보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