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시즌이 또다시 돌아왔다.
여름방학만 지나고 나면 본격적인 취업 전쟁에 들어간다. 올 상반기 입사 경쟁률은 평균 100 대 1을 넘었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56개 대기업, 공기업을 대상으로 ‘2007년 상반기 취업경쟁’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평균 취업 경쟁률은 116 대 1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 56개 업체 중 100 대 1 이상의 경쟁률을 보인 업체는 23개로 전체의 41.0%를 차지했다. 하반기에도 사정은 이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상반기 경쟁률이 치열했던 직종은 단순히 취업난이 아닌 또 다른 이유가 숨어있다. 상반기 인기 직종을 통해 하반기 취업 동향을 가늠해보자.
상반기 치열한 경쟁률을 보인 직종은 공통적으로 지원 조건이 완화된 특징이 있다. 공사 취업 경쟁률은 고시를 방불케 한지 오래다. 매년 좁아지는 공사 취업문이지만 그 가운데 특히 높은 경쟁률을 보인 업종이 있다.
■ 조폐공사 전자직 2명 채용에 1274명 지원 ■
지난해 1월 신입 직원을 채용한 한국조폐공사는 사무직, 연구직, 기술직 등 신입사원 50명 모집에 8657명이 지원, 평균 173 대 1을 기록했다. 특히 조폐 기계의 정비·운전을 주업무로 하는 전자직종이 가장 높았다. 2명 모집에 1274명이 지원, 637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전자직종은 2003년부터 공채를 했다. 인원을 적게 뽑은 것도 있지만 취업 지원 자격 턱이 낮아진 것도 큰 이유로 작용했다.
김정호 조폐공사 인사팀 과장은 “전기·전자 자격증만 있으면 지원이 가능했고 필기시험도 인·적성, 직무능력평가 등 검사 중심의 테스트만 했다”며 “특히 직무 관련도가 낮은 영어 반영비율을 기존 30%에서 10% 이하로 낮춰 지원자 수가 더욱 늘었다”고 말했다.
향후 신권 발행, 전자여권 제조 등 자동생산 업무가 늘면서 전자직종에 대한 인력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호 조폐공사 인사팀 과장은 “전자식 자동기기가 늘면서 전기뿐 아니라 전자회로를 잘 아는 전문 인력이 필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조폐공사 측에서도 내년부터 선발인원을 5명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 심평원의 행정직 69 대 1 경쟁력 ■
올 4월 취업 공고를 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은 총 123명 모집에 3255명이 지원해 평균 26 대 1의 응시율을 보였다. 특히 응시자격 제한이 없어진 행정직은 69 대 1로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반면 의학·약학·보건학·간호학 등 연구직은 관련 석·박사를 모집해 상대적으로 2 대 1의 낮은 경쟁률을 보였다. 99년 국민건강보험법이 생긴 이듬해인 2000년 7월 창립된 심평원은 전신인 의료보험연합회의 심사기관이 독립되면서 생겼다. 2005년까지 10명 안팎으로 뽑다가 지난해부터 100여명 이상 뽑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병의원·약국·보건소 등 의료서비스에 대한 심사·평가 역할이 증대되면서 자연스럽게 인력 증원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송강현 인력개발부 부장은 “주로 간호사·의료기사·약사 등 관련 종사자들이 많이 지원했다”며 “전산행정직은 일반인에게 생소했지만 입소문과 취업사이트 공고를 통해 많이 알려졌다”고 말했다. 특히 내년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되면 관련 업무와 비중이 커져 인력 보강이 더욱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 우리은행 창구텔러, 정규직 전환 효과 ■
경영환경이 변하면서 경쟁률이 높아진 직군도 있다.
은행권 은행창구텔러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선언한 우리은행의 올 상반기 개인금융서비스직군은 350명 모집에 1만300여명이 지원, 30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지난해 하반기 같은 직군이었던 비정규직 매스마케팅직이 200명 채용에 3000여명이 몰려 15 대 1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경쟁률이 2배 늘어난 셈이다.
유도현 HR운용팀 차장은 “정규직으로 바뀐 것 말고는 기존 처우와 달라진 것이 없지만 고용안전과 직군전환이 가능해지면서 지원자가 크게 늘었다”고 분석했다. 다른 직군 대졸 초임 연봉이 3800만원 수준인 데 반해 개인금융서비스직군의 대졸 기준 초임 연봉은 2400만원으로 1400만원 정도 적은 편이다. 하지만 지원자는 고졸 학력부터 대학원 박사학위, 미국공인회계사(AICPA) 자격증 소지자 등 우수 학력자까지 골고루 지원했다.
유 차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문대 이상 졸업자들만 뽑았는데 올 2월부터 학력, 연령 철폐를 하면서 경쟁자들이 몰린 부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채용 방법도 필기시험 없이 서류 전형과 면접 과정만 거치면 된다.
■ 제주항공 승무원, 1000 대 1 ■
비행 승무원은 매년 높은 경쟁을 보여 왔다. 그 가운데 올해 취항 1주년을 맞은 제주항공은 상반기 경쟁률이 무려 1000 대 1에 육박했다. 남녀 5명 모집에 총 4947명이 몰려 989 대 1을 기록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보통 300~500명 가까이 뽑는 것을 볼 때 소수 모집으로 인한 경쟁률 상승이 이유로 꼽힌다.
또 올 초 항공사들이 대규모 채용계획을 밝혀 승무원 준비생들이 많아진 것도 원인으로 분석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에선 올 초 사상 최대인 1300여명을 뽑을 계획이다. 대한항공은 여자 객실승무원(스튜어디스) 500여명, 운항승무원(조종사)을 230여명 선발하고 아시아나항공도 객실승무원 380여명, 운항승무원을 150여명 채용할 예정이다.
승무원 양성학원인 ANC의 김종욱 기획홍보팀장은 “올해 항공사들의 대규모 채용계획이 알려지면서 승무원 준비생들이 예년에 비해 평균 20~30% 정도 늘어났다”며 “특히 나이 제한을 폐지하면서 대한항공은 지원자가 1만6000명으로 50% 이상 늘었고 아시아나는 1만명으로 40% 가까이 늘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승무원 채용 나이 제한을 시정 권고한 바 있다.
이처럼 승무원 채용인원이 늘어난 원인으로는 해외여행객 증가와 항공자유화가 꼽힌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19개 노선이 신규 취항하고 올해 여객기 5대가 새로 들어올 예정이다. 아시아나도 사정이 비슷하다.
김연준 아시아나항공 홍보팀 대리는 “올해 8대의 항공기가 도입되고 지난해부터 중국 산둥반도가 개방되면서 단거리 가동 횟수가 많아져 인력 보강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전했다.
정영철 대한항공 홍보팀 부장은 “2010년 중국 노선이 완전 개방되면 승무원 인력이 더욱 필요하다”며 “승무원을 교육시키는 데 평균 3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올해 인력 채용이 크게 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취업 경쟁률 바로보기 】
◆ 높은 경쟁률은 열린채용 탓
= 채용 규모 축소만큼 구직자들을 괴롭히는 것은 입사 경쟁률이다. 100 대 1을 넘어 1000 대 1을 돌파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취업 준비생의 마음은 무겁다. 하지만 취업 경쟁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 경쟁률은 이보다 낮다는 분석이다.
인크루트가 지난해 12월 상장기업 465개사를 대상으로 한 입사 경쟁률 조사에 따르면 평균 경쟁률은 56 대 1 수준으로 나타났다.
입사 경쟁률 분포로는 △10:1~50:1이 34.0% △100:1~200:1이 17.4% △200:1 이상이 7.1% 등 100 대 1 이상의 높은 경쟁률을 보인 곳도 24.5%(114개사)였다. 일부 경쟁률이 높은 것을 전체 경쟁률이 높은 것으로 착각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지난해 하반기 2220명을 뽑는데 1만1141명이 몰려, 5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공기업도 548.6 대 1의 경쟁률을 보인 곳이 있는가 하면 9 대 1의 경쟁률인 곳도 있었다.
물론 인기 직종과 비인기 직종 간의 경쟁률이 희석된 부분도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높은 경쟁률에 처음부터 겁먹지 말 것을 조언한다. 유도현 우리은행 HR운용팀 과장은 “구직난으로 지원자가 늘어나기도 했지만 지원 자격에 학력, 나이 등을 철폐하면서 지원자 수가 급증한 면이 크다”며 “최근에 고졸부터 40세가 넘은 사람까지 다양하게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즉, 열린채용을 확대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한편 실제 채용자를 보면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정상적으로 채용 준비를 한 사람이라 열린채용의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또 공사의 신입 채용 경쟁은 치열했지만 경력직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올해 1명의 경력직을 모집한 인천항만공사 회계 부문에 총 60여명이 지원했다. 9명 모집에 6673명이 지원한 신입공채보다는 경쟁률이 크게(?) 낮았다. 앞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석·박사를 대상으로 한 연구직은 2 대 1의 낮은 경쟁률을 보였다.
이주엽 인천항만공사 경영지원팀 차장은 “경력직 회계사를 모집했지만 자격이 미달해 뽑지 않았다”며 “준비만 잘 한다면 경력직은 생각보다 쉽게 취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구직자들의 취업 눈높이도 낮춰야 한다는 조언이다.
한양대 취업지원센터의 김성수 과장은 “실제로 수험생들이 보는 기업은 10개도 채 안 된다”면서 “지원의 폭을 중견기업까지 넓히면 충분히 취업률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출처 : 매일경제[김충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