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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일자리가 최고의 사회복지죠”2007-04-27
작성자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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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장애·고령 함께 극복한 이정섭씨

62세 4급 장애인 6개월간 뛰어 취업
직업상담원 나서 채용회사 직접 설득

“작년 8월부터 6개월간 일자릴 구하느라 발버둥 쳤어요. 10년간 해온 아파트 경비직을 그만둘 땐 취직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은 몰랐어요. 일할 마음만 있으면 어디서나 받아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지난 2월부터 조선대학교 미화원으로 일하기 시작한 이정섭(62·광주시 서구 쌍촌동)씨는 장애와 고령을 한꺼번에 극복한 경우다. 24일 광주종합고용지원센터에서 만난 이씨는 밝은 표정이었다.
이씨는 1996년 산업재해로 외손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잃은 4급 장애인이다. 그는 1984년까지 광주광역시에서 지자체의 가로 정리를 하면서 안정된 생활을 해왔다. 고정적인 월급을 받았고, 아내와 두 딸을 거느린 든든한 가장이었다. 1984년 어떤 일로 이혼하고 나서 혼자 몸이 된 뒤 1986년 일자리를 옮겨 합판공장에서 목수 일을 시작했다. 10년간 나무와 씨름하던 그는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군산 어느 합판공장에서 목재를 자르는 전기톱에 손가락 두 개를 내주고 말았다.
“내가 평생 직업을 위해 배운 기술이라고는 목수 일이 전부였어요.”
하지만 그 목수 일이 그를 신체장애자로 만들었고, 그때부터는 공장에서 받아주질 않았다. 제품을 움켜쥐기 어려웠고, 생산라인에서 자주 실수를 했다. 제조업에 취직하는 대신 아파트 경비를 해야 했다.
아파트 경비를 그만두고 새 직장을 구하려 하자, 이번엔 환갑을 넘긴 나이가 문제였다. 손가락이 없는 고령자를 어떤 회사에서도 받아주려 하지 않았다.
모아둔 돈이 없던 그에게 실직은 가혹했다. 사글세는 밀렸고, 끼니마저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헤어진 딸과 연락조차 못하고 있는데, 동사무소에선 주민등록상 자식이 있다고 영세민 자격을 주지 않아요. 65살이 넘어야 영세민이 될 수 있다더군요.”
이씨는 광주종합고용지원센터를 찾아갔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3개월간 봉사활동에도 참여했다. 센터에서도 몇 차례 취업알선을 했으나, 나이와 신체장애의 벽을 넘긴 어려웠다.
“이제 보니 환갑이 넘은 나이에 손가락도 없이 일자리를 잡은 건 행운이었어요. 광주고용지원센터 직업상담원 류 미 선생님이 내 손을 잡고 직접 인력파견업체를 방문해줬어요. 며칠 후 조선대로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죠.”
이씨의 생활은 이전보다 나아졌다. 아파트 경비시절 받던 월급 65만원보다 20만원을 더 받고 있다.
하지만 이씨는 1년 후를 걱정하고 있다. 장애인 채용시 사업주가 1년간 받는 장애인고용촉진장려금 혜택이 없어지면, 인력파견업체와의 고용계약 연장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장애인 구직활동은 노력에 비해 성과를 얻기 어렵다. 최근 광주지역에서 장애인 구직자 100여명이 참여한 채용행사가 열렸다. 10여개의 구인업체들이 면접을 실시했으나, 실제 채용으로 이어진 사례는 3건에 불과했다.
광주종합고용지원센터 김건호 고령자취업담당은 “장애인의 경우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장기간 근무하는 경우가 적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대해 “장애인고용촉진장려금 지급기한이 짧기 때문”이라며 “취업자 스스로도 회사 조직에 적응하고 열심히 일해 인정받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번에 얻은 일자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근무에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일자리만한 사회복지가 있나요? 일한다는 것은 내가 사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뜻 아닙니까.”
광주=강경흠 기자 khkang@naeil.com

출처 : 내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