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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기획-스피치>말 잘 하는 사람이 뜬다2007-04-17
작성자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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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이 넘는 집단토론과 찜질방 면접, 술자리 면접, 이어지는 합숙여행 면접 등 취업을 위해서는 눈에 띄게 말하고, 조리 있게 말하고, 마음에 들게 말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자신의 실력을 표현하기 위해서 꼭 갖추어야 할 스피치 능력. 왜 중요해지고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계발시킬까.

이윤경 기자(yoon@heralm.com)

한화 구조조정본부 홍보실의 김지현 씨는 사보 원고를 위해 최근 입사한 직원들을 인터뷰하던 중 이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하나같이 자기 PR 기술과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 김 씨는 “신입사원 대부분이 달변가는 아니지만 대화의 기술을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 쪽으로 질문을 유도하거나 다른 질문에 연결해 짧고 간결하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공통점은 한화그룹이 면접에서 이 같은 인재를 눈 여겨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황에 대한 대비가 철저하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높은 점수를 준다.

한화석유화학 금융팀의 신입사원 여성준(고려대 경영 99) 씨는 독창적이고 재미있는 답변으로 한 번에 면접관들을 사로잡았다. 주량이 어느 정도냐는 질문에 “한 병 여섯 잔을 마십니다”라고 대답을 한 것. 두 병이면 두 병이지 웬 여섯 잔? 면접관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여씨는 깜찍한 멘트를 날린다. “제가 두 병에서 한 잔 덜 마셔야 선배님들을 무사히 택시 태워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김장감이 감도는 면접장에서 여씨가 이렇게 자신만만하고 편안한 답변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철저한 준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면접 전 취업 스터디 그룹을 짜 예상 문제 400선을 완벽하게 마스터했던 것. 지피지기를 갖춘 그에게는 면접장에서도 독창적인 답변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채용 과정에서 면접 평가가 중요해지고 있다. 학교와 학점, 외국어 점수의 비중이 낮아지는 대신 블라인드 면접, 프레젠테이션 면접, 영어토론 면접 등 다양한 종류의 면접이 늘어나고 있고, 이에 맞춰 면접 공부를 하는 구직자도 많아졌다. 잡코리아의 한 헤드헌터는 “면접과 집단 토론으로 지원자의 인성, 가치관, 대인관계, 커뮤니케이션 스킬, 순발력, 아이디어, 인내력 등 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어떻게 말을 하느냐가 취업의 당락을 가름하는 셈이다.

스피치 실력을 갖춘 학생들은 캠퍼스 내에서도 각광받는다. 교양과목의 대부분은 팀별로 발표 수업을 진행하거나, 발표를 하는 학생에게 가산점을 준다. 그러다 보니 단연 발표 잘 하는 학생 이나 발표 경험이 많은 4학년 학생 중심으로 팀이 구성된다. 졸업을 앞둔 이은정(D대 중문학 02) 씨는 “대부분의 수업에서 제일 나이가 많다 보니 늘 발표를 도맡아 한다”면서 “교수님께서 발표 수업을 위해 4학년 학생을 팀에 한 두 명 씩 끼워넣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디베이트 게임도 정착되고 있다. 이미 외국에서는 보편화되어 있는 디베이트는 영국 의회의 토론을 본 떠 만든 것으로 정확한 표현은 의회식 영어토론(Parliamentary Debate)이다. 정부측과 야당측으로 팀을 나누어 한 주제에 대해 입장을 내세우고 명확한 근거를 들어 심판을 설득해야 하며 심판은 토론 후 라운드의 승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세계 디베이트 올림픽’에는 80여 개 국 대학생들이 참가하며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한국 대학생 150여 명이 모여 3일에 걸쳐 대회를 치르는 ‘한국 대학생 영어토론 대회(KIDC)’가 올해로 3회를 맞고 있다. 디베이트는 영어와 면접이 중요해지는 사회에서 영어실력은 물론 각종 시사문제 공부와 발표력을 기를 수 있다는 점에서 학생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스피치 실력이 강력한 경쟁력이 되는 시대에 대해 KBS 김은성 아나운서는 “현대 사회가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불통(不通)의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1분 동안의 첫 대화에서 상대를 나쁜 이미지로 인식했을 경우 그것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60~70분의 독대가 필요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면서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고 시간도 짧아지다 보니 ‘가장 정확한 말 한마디’가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핵심을 전하는 소통력은 세계화 시대에 모두가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되고 있다. 치열했던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보듯 자국의 이익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세계에서 협상전문가의 역할은 계속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우수한 협상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대학에서도 국제학, 협상학 전공 개설 등을 고려하는 등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추세다. 지난 2001년 학부로서는 처음으로 국제학 전공을 도입한 이화여대 국제학부는 잡지, 영어토론서클 등 다양한 과외 활동과 100% 영어수업 진행으로 학생들을 국제적인 스피치 전문가이자 전문 협상인으로 양성하고자 노력한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영포럼(WEF) 최연소 패널 최유선(21) 씨는 현재 외교통상부에서 일하고 있다. 최씨는 이화여대 국제학부 4학년 재학 중 다보스 포럼에 참가해 고든 브라운 영국 재무장관, 라니아 알 압둘라 요르단 왕비 등 유력인사 앞에서 ‘세계 교육 기금 마련’을 공식 제안한 화제의 인물이다. 또 브라운 장관은 오는 5월 ‘교육격차 해소’에 관한 세계은행 기부자회의의 토론자로 최씨를 초청했다. 미국과 일본에서 12년을 보낸 최씨가 영어 토론에 능한 것이 단순히 영어 구사력이 뛰어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재학시절부터 수많은 디베이트에 참가했고 끊임없는 공부와 연습으로 스피치 실력을 쌓았다. 최씨가 소속된 디베이트 동아리는 대회 일주일 전 합숙을 하는가 하면 연습 게임이라도 자료 조사를 해오지 않으면 입장이 불가할 만큼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김 아나운서는 스피치를 연애에 비유한다. 연애 경험이 많은 사람이 연애를 잘하듯 스피치 역시 자주 해본 사람이 잘한다는 것. 파트너에 대한 배려가 중요한 것과 서로 신뢰해야 한다는 것, 완급 조절을 잘해야 하며 지식이 많을수록 유리하다는 것도 ‘연애’와 꼭 닮았다. 김 아나운서는 스피치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반복 훈련과 평가를 통해 ‘상위인지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상위인지능력이란 스피치를 하고 있는 자신을 스스로 확인하면서 통제하고, 돌발 상황에서 순발력 있게 대처하는 능력이다.

또 스피치 전문가들은 스피치란 단순히 말을 잘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말 이외의 요소들 역시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방송 진행자의 스피치 구성요인과 공신력 평가’라는 논문으로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박사학위를 받은 김 아나운서는 KBS 아나운서 66명을 대상으로 ‘가장 말을 잘 하는 사람’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시사 교양 부분에서는 압도적으로 손석희가 뽑혔으며, 쇼 오락 분야에서는 유재석이 1위를 차지했다. 이에 대해 그는 “스피치 속에 말 이외의 다양한 구성 요소가 존재함을 나타내는 결과”라며 “김제동, 신동엽 등을 제치고 유재석이 1위를 한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와 열정적인 모습이 그의 스피치에 감동을 싣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ㆍ미 FTA를 계기로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는 협상서적들에서도 거침없는 화려한 말보다는 신뢰감을 주기 위한 감성적 소구를 발휘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협상가 짐 토머스는 <협상의 기술>에서 ‘협상의 첫째 원칙은 상대의 체면을 살려주는 양보의 기술’이라고 설명했고, 허브코헨은 <협상의 법칙>에서 ‘설득에 능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다정다감하며 겸손하고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유머감각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출처 : 헤럴드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