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코엑스 인도양 홀에서 열린 '2005 실버 취업 박람회' 모습
비전과 방향 확고히 세우고 달라진 업무 환경에 적극 대응해야
한때 ‘한국 경제의 주역‘으로 불리던 중장년층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창업 및 재테크 서적, 주식 설명회, 이민 상담의 주 고객이 바로 이들이다. 연공서열이 무너지면서 경쟁은 더 살벌해졌다. 그렇다고 막상 회사 문을 나가려니 겁부터 난다. 국민연금이나 퇴직금도 있다지만 퇴직 후 삶도 불안하기 마찬가지다. 그러나 힘든 상황 속에서도 미래를 여는 중장년층이 있다.
지난 22일 송파구 신천동에 위치한 교통회관 접수창구에는 택시 운전 자격증 시험을 보러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얼마 전 20년 간 다니던 회사에서 명퇴한 최두선(53)씨는 “퇴직 후 마땅한 기술도 없고 돈도 없어 택시 자격증을 따러 왔다”고 말했다.
최씨의 경우처럼 자의든 타의든 중장년층 퇴직근로자가 재취업을 할 경우, 전 직장에 비해 더 낮은 직책으로 옮기는 것이 통례다. 이석기 라이트 매니지먼트사 수석 컨설턴트는 “전 직장에 비해 낮은 연봉으로 옮기는 경우가 90%에 달한다”며 “퇴직 이후 더 높은 연봉을 받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말한다. 재취업에 성공하는 퇴직자의 경우, 대기업에서 중소기업 관리자급으로 옮기거나, 중소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이직한 경우,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3-6개월 만에 그만두는 경우도 제법 된다. 취재 중 만난 L계열사 부장으로 근무했던 이모(49)씨는 퇴직 이후 동종 업계 벤처로 옮겼다가 3개월 후 다시 퇴사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십 수 년 간 근무한 환경과 달라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씁쓸해 했다.
이에 대해 김석란 컨설턴트는 “한 분야의 전문성을 쌓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멀티 플레이어를 선호하는 편”이라며 “달라진 업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귀뜸했다.
현재 채용시장에서 가장 많은 일자리는 경력 3~8년 이내.
위피브 컨설팅 김재헌 대표는 “2006년의 경우 외국계 기업을 포함, 일반적으로 73년생 이후로 나이 제한을 두고 있고, 차장급의 경우 70년생 이후가 가장 합격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는 2004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국내 기업 200여개 중 51%가 연령 제한을 둔다고 밝혔다. 고령인력 회피는 미국도 다르지 않다. 美 인사 전문지 HRfocus는 55세 이상 고령 인력 활용 정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기업이 무려 90%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국내 연구 개발직(R&D)의 경우 38세가 정년이다. 따라서 40세 이상의 이직이나 재취업은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 IT 업계의 한 관계자는 "IT나 R&D의 경우 40 세 이상이면 노인 취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또 다른 기회’라는 인식을
그러나 국내 굴지의 생명과학 회사에서 부장으로 근무하던 이씨(48)는 “퇴직을 나쁘게만 볼게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씨의 경우, 회사의 압력으로 사퇴한 후 후배들과 함께 벤처회사를 차렸다. “회사에서는 방침에 맞춰 눈치를 보며 연구했지만 이젠 돈이 안 되더라도 내가 원하는 기술을 연구할 수 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현재 500여명 규모의 회사 CEO인 54세의 이모씨는 1년 전만 해도 실업자였다. 다니던 중소기업에서 명퇴해 5개월이 지나도록 실직 상태였던 것. 구직관련 사이트도 뒤져보고 재취업 컨설팅을 무료로 하는 노사공동 재취업 센터에도 등록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나도 면접 한번 볼 기회가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경비직이라도 해볼까 생각했다. 그러던 중 회사의 총괄관리를 맡는 임원으로 지원했다. 다른 분야의 업종이라 입사 후 더 열심히 일했다. 이씨는 “운이 좋았는지 사장이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회사를 맡게 됐다”며 “다소 무리라고 생각되더라도 일단 기회를 잡아라”고 조언한다.
전문가들은 이씨처럼 중장년층의 경우 숙련된 기술과 축적된 노하우를 갖고 있어 기업 성과에 상당부분 기여할 여지가 많다고 말한다. 한국능력개발원 이의규 박사는 “지식기반 사회의 핵심을 담당하던 중장년층은 미래지향적이고 합리적이다”며 “점차 중장년층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장 패러다임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재 고용시장에서 중장년층이 차지하는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4년 41.7%에서 2005년 42.8%로 늘어났고 지난해의 경우 43.8%에 이른다.
2006년 12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경제 활동 참가율의 경우 40대는 79.3%, 50대는 69.5%를 차지한다. 경제 활동 참가율이란 생산 가능 인구 중 노동공 급에 기여한 사람의 비율을 뜻한다. 참고로 청년층의 경제 활동 참가율은 46.7%.
통계청 사회통계국 은순현 고용통계팀장은 “중장년층이 청년층보다 적극적으로 취업 및 구직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며 “2006년 12월의 경우 중장년층 실업률은 3.3%로 전년 동월대비 0.2% 퍼센트 감소했으며 남자는 3.7%, 여자는 2.8% 감소했다”고 밝혔다.
중장년층 고용률 점차 올라가
건실한 중견기업에 다니던 41살의 김모씨는 다니던 부서가 없어지면서 퇴직했다. 회사 내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을 만큼 성실했던 김씨는 금방 재취업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실업급여를 6개월 간 받고 1년이 넘도록 취업이 되지 않았다. 그동안 열 군데 정도 서류가 합격하고 두 곳 정도 면접을 봤다.
마케팅을 전공하고 평소 관광 산업 쪽에 관심이 많았던 김씨가 지원한 곳은 서울시에서 후원하는 관광전문기구. 온라인 이력서를 넣고 총 세 차례의 면접을 통과, 최종 합격통보를 받았다. 해외사업본부 과장으로 발령받은 서씨는 “취업이 어렵더라도 낙담하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환히 웃었다.
그렇다면 중장년층이 고용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비전과 방향을 확고히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강점 및 전문성을 차분히 정리해 볼 것을 권한다. 경력, 지식, 기술, 역량, 인맥 등 세부적으로 분석할수록 재취업 시 목표가 분명해 진다는 것.
25년 간 국내 모 자동차 회사에서 자재를 담당했던 김승도(54)씨는 취업박람회를 찾아다니며 자신만의 잡 타깃 마켓을 잡았다. 20년 넘게 자재와 생산부문을 담당했던 김씨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장점을 어필했다. 8개월 후 김씨는 안산에 있는 외국계회사의 자재부장으로 당당히 합격했다. 김씨는 “자신의 강점을 파악해서 시장에 적극적으로 어필하면 길이 열립니다.”
스카우트의 김석란 컨설턴트는 “중장년층의 경우 상품 가치가 있으면서도 포장하는 방법을 몰라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비전을 명확히 한 후, 취업 사이트의 도움을 받아 이력서를 작성하는 연습을 하라고 조언한다. 보다 체계적으로 도움을 받고자 한다면 전직 지원수행 업체의 도움을 받아도 된다.
전문 컨설팅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업체로는 스카우트, 디비엠 코리아, 라이트 매니지먼트, 제이엠 커리어, 리헥트 해리슨(LHH)-아데코 그룹 등이 있다. 비영리 단체로는 노사공동재취업 지원센터가 있다. 스카우트사의 경우 컨설팅 도움을 받아 재취업에 성공하는 40~50대 직장인의 비율이 50%를 차지한다.
직장을 다닐 경우 경력 관리는 필수. 인크루트 서미영 상무는 ▲인맥을 튼튼히 하고 ▲실무 역량에의 전문성 확보와 ▲글로벌 능력 갖추고 ▲디지털 환경과 최신 정보를 공부하고 ▲사내 평판을 관리하고 ▲건강관리에 힘쓸 것을 강조했다.
위피브 컨설팅 김재헌 대표는 만일 현업에서 50대 후반까지 임원으로 남길 원한다면 ▲최종 학력(최소한 석사 이상) ▲외국어 능력(영어 능숙 외 제 2외국어 기본) ▲국내외 인적 네트워크(영업 마케팅을 위한 기본적인 경쟁력) 등을 갖출 것을 조언했다.
또 취업 관련 전문가들은 실업기간이 길수록 고용시장으로 재진입이 어려우므로 기업 차원에서 전직 지원 서비스(Outplacement)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포스코나 국민은행 등 일부 대기업에서만 자체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아예 없는 실정.
전문가들은 중소기업 퇴직자를 우선으로 아웃플레이스먼트를 지원하는 노사공동 재취업지원센터를 권했다. 기업과 노동조합, 지원센터와의 3자 연계를 통한 커리어 컨설팅으로 맞춤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대외협력팀 양균석 팀장은 “300~400만원씩 하는 컨설팅비가 부담스러운 중장년층이 많이 찾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중장년층 취업에 대해 이석기 컨설턴트는 “실업을 단순히 개인의 능력 탓으로 돌릴 게 아니라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고용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 법으로 정년을 연장, 65세까지의 고용 확보 등 종합적인 취업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은 ‘지역사회 서비스 고용 프로그램’을 통해 중고령 인력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독일은 직업계속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호주는 중고령자에게 적절한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중고령자 수당’ 등을 제도화하고 있다.
김은지 기자 guruej@economy21.co.kr
|인터뷰| 구본형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소장
“익숙한 것과 먼저 결별하라”
◆ 조직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장년층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어디에도 평생직장은 없다. 중장년층은 경제적 감가상각이 심한 나이다. 직장 내에서 임원으로 가는 길 외에는 건설적인 미래를 세우기란 현실적으로 힘들다.
◆ 이직을 고민하는 중장년층 직장인이 많다. 고려할 점이 있다면.
첫째 이직을 원한다면 2-3년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전까지는 스스로로 사직해서는 안 된다. 둘째, 배우자를 최악의 고객으로 생각하고, 배우자의 동의를 얻어 내라. 셋째, 틈새시장을 찾아라. 넷째,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하지 말고, 만족스러운 제 2 의 인생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투자한다고 여겨라. 이직을 제 2의 인생을 위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프로세스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 만일 이직을 꿈꾼다면 어떤 분야가 가장 적합한가.
-우선 자신의 '시장에서의 고용가능성' (Market employablity)을 따져 보아야 한다. 고용가능성이란 시장에 자신을 내놓았을 때 언제라도 자신이 원하는 조건에 고용을 원하는 고용주가 있다는 뜻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전문성이다. 분야는 자신이 하고 싶고 잘하는 분야가 좋다.
◆ 일각에선 ‘이직은 전문성의 반감’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직과 전문성과의 상충은 어떻게 보는가.
-중장년층의 이직이 전문성의 상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은 급속히 진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이 갖는 가치는 반감되고 있다.
출처 : 이코노미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