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직무·정보 불일치 심각
구인자-구직자 같이 ‘헐떡’
현재 인력과잉-미래 인력부족
경제 전반 뒤흔들 시한폭탄
반도체 생산용 로봇장비업체인 준앤텍 유홍준 대표는 지난해말 경남 사천시 소재 한국폴리텍바이오대학(학장 이영희)을 향해 비행기로 날아갔다. 우수한 기능인을 길러낸다는 입소문을 듣고 나서였다. 유 대표는 마음이 들떴다. 하지만 그의 인재사냥은 실패했다. 이미 중소업체 사장 10여명이 줄지어 학교를 다녀갔고, 졸업생 30명을 모두 ‘찜’한 상태였다. 한국폴리텍바이오대학 문병철(항공정보통신과) 교수는 “요즘 경영자들은 좋은 인력을 찾기 위해 먼 길도 마다 않는다”며 “한 업체는 1800만원어치의 실습장비를 보내주면서 내년에 졸업할 인력까지 예약해뒀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간 부산 의류업체인 ㅅ사 신입사원 채용 면접장 문 앞에선 마 모(27)씨가 서성이고 있었다. 간밤 서울에서 달려왔다. 관리직 3명을 채용하겠다는 공고에 500여명이 원서를 냈고, 이들중 13명에게만 면접자격이 주어졌다. 면접자 중에는 대기업 부장출신도 있었다. 마씨는 탈락했다. 2년째 일자리를 찾아다녔던 그는 현재 구직활동을 포기한 상태다.
◆구인-구직자 ‘숨바꼭질’ = 한국 노동시장이 복잡한 딜레마에 빠졌다. 인력·직무·정보 등의 ‘불일치(Mismatching)’에 겹겹이 쌓였기 때문이다. 불일치란 시장의 요소가 서로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현상이다.
중소기업 구인난과 대졸자 구직난은 대표적인 인력 불일치다. 구직자의 전공과 업무가 서로 달라 발생하는 직무 불일치는 첨단산업분야에서 흔하다. 고급전문가를 원하는 IT기업 수요는 늘고 있지만, 대학에서 이에 맞는 인재를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미래 ‘조건 불일치’ = 최근 노동시장을 괴롭히는 또 다른 딜레마는 ‘현재와 미래의 조건 불일치’다. 단기적으로는 청년 인력과잉으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극심한 인력부족이 예고되고 있다.
당면한 청년실업문제는 위험수준이다. 노동시장의 최우선 과제로 대두된 청년실업률은 전체 실업률 3.5%의 2배가 넘는 7.9%. 본격적인 저성장기에 들어선 2003년 이후 내내 8% 안팎을 유지해왔다. 최근 통계청과 한국교육개발원 발표에 따르면 전국 360개 대학에 재학중인 학생은 292만명(2005년 기준)으로 1980년보다 230만명 증가했다. 졸업생도 크게 늘어 그해에 26만8800명이 대학문을 나섰으나, 이중 15만4500명만 일자리를 구했다. 대학원 진학자 2만8600명을 제외한 7만7800명이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로 전락했다. 청년실업은 곧 ‘사회의 낙오’라는 위기감을 준다. 중장년 근로자는 자영업으로 전환할 기회라도 있으나, ‘초보 사회인’이 취업전선을 넘지 못할 경우 ‘퇴로 없는 전장’에 버려져야 한다.
중장기적 인력수급 불안정은 노동시장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을 뒤흔들 시한폭탄이다. 우리나라는 2013년부터 예상하기 힘든 인력부족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학계와 산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 시기는 현재 43~51세인 ‘베이비 붐 세대’(1955년~1963년생)가 정년인 57세를 맞아 은퇴를 시작하는 때다. 이론적으로는 한해 평균 20만명이 7년간 산업현장을 빠져나가면, 실업률 3.5%(2006년 기준)에 해당하는 135만명의 실업자가 모두 일자리를 찾는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는 급격한 내수위축과 인력부족에 따른 임금상승을 가져온다. 기업은 내수시장 축소와 원가상승을 부담해야 한다. 경제성장에 필요한 인적자원 부족 등으로 경제성장율 하락은 불가피하고, 사회보험 수혜인구는 급격히 늘어난다.
◆자영업 증가 약인가 독인가 = 중장년 근로자의 ‘안전한 퇴로’로 인식돼온 자영업 전환도 따지고 보면 믿을만한 게 못된다. 최근 일자리 창출을 주도해온 서비스업은 외환위기 이후 실업률을 3%대로 안정시킨 역할을 해왔다. 문제는 자영업 비중이 34.0%(2004년 기준)로 OECD국가(17.4%)의 2배라는 점이다.
지난 17일 서울종합고용지원센터를 방문한 공기업 임원출신 김 모(남·65)씨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구를 나섰다. 김씨는 작년 8월부터 4주에 한번씩 실업급여를 타기 위해 센터를 방문했다. 매번 상담창구를 찾아가 자신을 채용하겠다는 기업이 있는지 확인했다. 해외마케팅 분야에선 베테랑이라고 자부해온 김씨는 수준급 어학·전산 실력을 갖추고 있다. 직업상담원 이효원씨도 매달 20여곳의 기업 인사담당자들에게 김씨의 채용을 타진하고 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매번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이효원씨는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는 기업들도 막상 고령근로자에겐 고개를 돌린다”며 “김씨의 업무능력이 바닥에 버려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성장-고용도 불일치 = 보다 근본적인 불일치는 성장과 고용이 5년간이나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을 나타내는 취업자 1인당 실질부가가치는 외환위기 이후 꾸준히 늘어 2001년 2억5000만원을 넘어 3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하지만 고용률은 2001년부터 59.0%(2001년)와 60.0%(2002년) 사이를 오가고 있다. 더구나 진동폭은 점점 줄어들어 59.7%를 향해 수렴하고 있다. 마치 ‘태엽을 감지 않은 시계추’같은 모양이다.(표 참조)
한국고용정보원 주무현 연구위원은 “고용률이 지금의 정체상태를 보이는 것은 제조업의 고용흡수력이 낮고, 서비스업의 비중에 비해 일자리 창출 능력이 낮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성장동력산업을 발굴하더라도 노동시장 불일치를 함께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신경망을 고도화해 노동시장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를 수요자와 공급자에게 알리고,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출처 : 내일신문<강경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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