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영어만 고집하시렵니까.’
직장인 점심 식사 메뉴에 들어 있는 김치찌개처럼 새해 결심 리스트에 단골로 등장하는 3종 세트가 있다. ‘금연, 다이어트, 자기계발!’
그 중 직장인의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새해 소망 1순위는 역시 자기계발, 그 가운데에서도 외국어 공부다.
특히 글로벌 신(新)시장 개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올해는 영어 이외에 중국어에 관심을 가져볼만하다.
이미 많은 기업이 인재 교육 차원에서 중국어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고
중국어의 토플이라는 한어수평고시(HSK)는 승진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아 가는 분위기다.
그동안 새해 하면 외국어 공략, 외국어 하면 으레 영어를 떠올려 왔다면 올해는 그 짝사랑의 대상을 중국어로 바꿔보면 어떨까.
오전 7시가 좀 지난 이른 시간. SK가스 직원들이 회사로 모여든다. 이들이 책상 앞에 모여 앉아 펼쳐든 것은 중국어 교재. 약 1년째 중국어 강좌를 듣고 있다는 김금련 SK가스 인력팀 대리는 “이제 조금씩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해지는 것 같다”면서 “중국어 강좌를 들으면서부터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중국 관련 뉴스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중국어가 가능해지니까 중국 사업에도 욕심이 생긴다는 게 김 대리의 말이다.
중국어 수요 폭발은 세계적 현상
이런 풍경은 SK가스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SK그룹의 경우 각 계열사의 중국어 면학 열기가 한창 고조돼 있다. SK케미칼은 3개 업체에서 6명의 강사가 출강해 강의를 하고 있고 SK C&C는 전 사원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물론이고 중국 사업에 활용 가능한 인력을 본부별로 추천받아 매일 3시간씩 중국어 집중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SK㈜의 엘리베이터에서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약 10분 간격으로 중국어 회화가 흘러나온다. SK 각 관계사는 이처럼 사원들에게 중국어 교육을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다.
최근 많은 기업들이 중국어 교육에 관심을 쏟고 있다. 비단 SK 각 계열사뿐만 아니라 금호아시아나, 포스코 등이 중국어 사내 교육, 또는 외부 교육을 장려하는 대표적 업체다. 직장인들이 영어 못지않게 중국어를 필수 자기 계발 코스로 삼아야 할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교양 차원에서 영어를 배우려는 사람이 많은 것과 달리 중국어는 당장 기업의 중국화 사업을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새해 결심 목록에 우선순위로 기록해야 할 시대가 된 셈이다.
사실 중국어에 대한 관심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 현지 언론이 ‘중국어가 섬유, 신발 등에 이어 중국의 주요 수출 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할 정도로 중국어 수요는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이다.
아시아권에서는 한국이, 유럽에서는 프랑스가 특히 중국어에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미국의 경우 최근 가히 ‘중국어 열풍’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학습 열기가 뜨겁다. 지난해 12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미국에서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택하는 학교와 학생들이 꾸준히 늘면서 유자격 교사 확보가 최대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현재 정확한 숫자가 나와 있지는 않지만 미국 외국어교육위원회(CTFL)는 공립학교에서 중국어를 배우는 학생이 6년 사이에 5000명에서 5만 명으로 10배나 늘었다고 밝히고 있다. 또 이미 조지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초 연방예산 5700만 달러를 국가 안보에 필수적이라고 판단되는 아랍어와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 교육 증진에 사용하겠다고 밝혔었다.
왜 중국어인가
중국이 앞으로 전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리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중국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두 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어 사용자 수에서나 중국의 발전 속도를 봐서나 중국어의 쓰임새는 지금과 상당히 다른 모습을 띠게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물론 현재 중국인 중에는 영어를 사용하는 게 대우받는 일이라고 여기는 경우도 있어 과연 중국어의 용도가 경제 발전 속도만큼 빠른 속도로 늘 것인가에 대해서는 일부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잠재성이 큰 중국 시장에서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일궈 나가기 위해서는 중국어 회화 습득 능력은 필수다. 더욱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로 중국어 학습 인구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는 ‘중국어의 토플’ HSK 시험 응시자 추이를 통해서도 예측해볼 수 있다. 1984년 시작된 HSK는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130만 명이 응시했다. 특히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매년 30% 정도 늘어나는 추세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시각에서 중국어에 대한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송지현 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 전임강사는 “10~20년 후의 중국의 위상과 경제력을 생각하면 지금 영어가 경쟁력이듯 중국어가 경쟁력이 될 것”이라면서 “당장 눈앞에 닥친 진학과 취업 때문에 영어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좀 더 멀리 내다 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어에 사용되는 많은 단어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한자어와 유사하기 때문에 완전히 생소한 다른 외국어를 배울 때보다 오히려 유리하다는 의견도 있다. 중국어 강사 경력이 있는 심우익 시사중국어학원 교육부 과장은 “총밍(총명하다), 윈똥(운동하다) 같은 말은 한국어와 유사해 쉽게 접할 수 있다”면서 “성조가 있고 발음 방식도 다르지만 이는 훈련과 연습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디서 어떻게 배울까
그러면 중국어 공부는 어디서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국내에서 중국어 열기가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한 것은 불과 6~7년 전이다. 오래 전부터 많은 이들이 중국의 잠재성을 높이 평가해 왔지만 교재 출간 등 언어에 대한 관심이 구체화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또한 아직까지 국내 중국어 교육 인프라는 과도기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일부 대형화된 중국어 전문 학원 정도가 수강생들의 선택권을 그나마 넓히는 역할을 한다. 이들 대형 학원들은 동영상 강의 등도 함께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예·복습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1999년 설립된 차이나로중국어학원은 초·중급 중국어 회화와 HSK, 동시통역대학원 과정 등 전 과정에 걸친 강의를 제공하는 종합학원이다. 종로와 강남, 중국 현지에 분원을 두고 있다. 박귀진 원장이 22년간 중국어 강사로 활동해 자체 제작한 교재에 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 학원은 온라인 강의도 병행하고 있는데 동영상 강의는 오프라인 학원과 동일한 강좌를 재구성해 수강생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게 학원 측의 말이다. HSK 시험 대비 강의가 특히 유명하며 그동안의 강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앞으로는 가맹점의 전국화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에도 진출할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고려중국어학원 역시 HSK 시험 대비 강의가 수강생들의 호응도가 높은 편이다.
2002년에 오픈한 이얼싼중국어학원은 최근에 생긴 만큼 다양한 커리큘럼과 수강생 편의시설을 갖춘 게 특징이다. 입문 과정에서부터 고급까지 전 과정이 새벽부터 저녁까지 개설돼 있어 수강생들이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다는 게 학원 측의 말이다. 또한 전타임 강의가 한국인 강사와 중국인 강사가 각각 1시간씩 진행하는 ‘한중교차수업’으로 이뤄져 있다. 유학아카데미를 함께 운영하고 있어 중국 유학을 계획하고 있는 경우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시사중국어학원은 교재와 학원 강의, 인터넷 동영상, CD 등 모든 시스템을 총동원하는 ‘e러닝 통합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는 게 강점이다. 이 학원의 ‘팅하오 인텐시브 과정’의 경우 학원, 인터넷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해 학습자의 중국어 실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도록 하는 통합 과정이다. 또한 베이직 단계에서는 주5일 수업 중 한국인 강사가 4일 동안 설명과 연습을 통해 익히게 도와주고, 나머지 하루는 배웠던 내용을 바탕으로 중국인 강사와 직접 대화를 나눠 중국어를 직접 체험하는 체험학습 프로그램으로 구성해 놓았다. 시사중국어학원 역시 어학연수, 현지 사설 학원, 현지 대학 진학 등 유학이나 연수와 관련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중국어 열풍은 온라인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온라인 교육 전문 업체 윈글리쉬닷컴의 경우도 중국어 관련 강좌수와 수강생 수가 늘고 있다. 윈글리쉬닷컴은 현재 온라인과 위성DMB 채널 42번을 통해 중국어 관련 강좌를 총 12개 제공한다. 이는 6개월 사이에 2개가 늘어난 것으로 올해는 회화, 자격증, 비즈니스 관련 중국어 강좌를 4개 더 늘릴 계획이다.
윈글리쉬닷컴이 2005년 5월부터 위성 DMB 채널을 통해 제공하고 있는 중국 버라이어티쇼 ‘아이 러브 차이나’는 지난해 12월 말 같은 채널 내 수많은 영어 강좌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딱딱한 중국어 강좌 위주에서 벗어나 통신원 리포트, 무비 차이나 등 매일 다른 형식으로 중국의 생활, 문화, 경제 등 생생한 정보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초등학생 전용 상품으로 여겨졌던 학습지를 외국어 공부에 활용하는 성인들이 늘고 있다. 시간을 절약하고 기초부터 자신의 페이스에 맞게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재능교육은 아예 지난 연말 유아부터 성인까지 폭넓은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재능중국어’를 내놓았다. 총8등급 192세트로 구성된 상품으로, 회화를 기본으로 각 학습단계에 맞는 발음, 문형, 문법, 독해 등의 4가지 중점 영역을 설정해 놓았다. 중국어 발음과 관련해서는 중국 원어민이 직접 녹음한 오디오 테이프를 교재 두 세트마다 하나씩 제공해 정확한 발음을 익힐 수 있게 했다.
<김소연 기자>
INTERVIEW 고엽 고엽중국어학원 원장
‘부수 원리로 한자 익히면 중국어 쉬워’
“중국어는 원리 글자이기 때문에 영어를 배우는 20분의 1의 노력만 들여도 배울 수 있는 쉬운 언어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건 학원을 운영하면서 종로 시사중국어학원 등 외부 강의 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는 고엽중국어학원의 고엽 원장(44)은 “중국어는 1년 정도 제대로 공부하면 쓰고 말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
“중국어는 단순한 어법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글자 하나만으로도 뜻이 통하는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절차와 과정을 제대로 밟으면 세계에서 가장 쉬운 언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중국어의 토플격인 중국한어수평고시(HSK) 전문 강사인 고 원장은 회화 위주의 시험 개편 논의 이전부터 회화 능력을 강조한 강의를 선보여 수강생들의 큰 호응을 얻은 대표적인 인기 중국어 강사다. HSK는 2008년부터 종합적인 언어 능력과 의사소통 능력에 더욱 중점을 둔 형태의 문제가 출제되고 등급도 세분화되는 등 새로운 방식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많은 이들이 중국어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어려워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언어의 원리에 대해 고심하지 않고 무작정 뛰어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자가 많아서 배우기 어렵다는 것은 편견입니다. 한자는 각 부수가 독립적인 뜻을 갖고 결합돼 만들어진 글자인데 이것을 마치 그림 외우듯 배우려 들면 어려울 수밖에 없겠지요. 또한 배워야 할 한자가 11만 글자나 된다는 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주로 쓰는 것은 2000여 자에 불과해요.”
그는 “10개월 정도 배운 제자들이 중국인과 의사소통을 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면서 “10년을 배워도 입 떼기가 쉽지 않은 영어보다 시간 절약하면서 배울 수 있는 언어”라고 재차 강조했다.
무역업 등 자영업을 하던 중 중국 문학에 관심을 갖게 돼 1980년대 말부터 중국어 강사의 길에 들어섰다는 고 원장은 “처음 중국어에 인생을 걸어보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친구들 중 가장 비전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중국어의 위상 변화와 함께 달라진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또 “세계 경제의 주요 흐름이 미국 위주에서 중국 등지로 다변화되면서 중국어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면서 “일본어 강의가 종합 외국어 학원 위주인 반면 중국어는 전문학원이 각광받는 게 이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국내 기업의 중국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중국어 수요가 늘어 중국어 자체를 비즈니스 아이템으로 활용하는 것도 일종의 블루오션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아직까지 중국인들이 자국의 언어를 가르치는 노하우가 부족한 만큼 외국인 대상의 중국어 교육기관, 또는 국내 중국어 강사를 목표로 유학을 준비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만 그는 조기 유학에 대해서는 반대의 입장을 밝혔다. 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데다 치안상태 등이 성숙돼 있지 않아 자녀의 장래를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한경비즈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