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할 3푼 3리!
오랜만에 양복을 입고 아침 일찍 버스를 탔다. 백수 생활하느라 맨날 반바 지에 낡은 티셔츠 차림으로 돌아다녔는데 동네 사람들이 웬 양복 차림이냐 고 물었다. 초자연인으로 밤낮없이 동네를 활보했으니, 사람들 눈에 완전 히 달라 보일 수밖에….
지난 3개월 동안 취업할 생각은 있었지만 백수 생활의 낭만과 아픔을 함 께 즐기며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생활을 했다. 밤이 오는 게 무섭고 아침 이 오는 게 무서웠다. 자존심에 실업급여 신청도 하지 않았다. ‘네깟 회 사가 뭔데 나를 해고시키냐? 나는 내가 스스로 박차고 나온 거다. 두고 봐 라 너희들보다 더 나은 회사에 들어가 보란 듯 성공한다!!’
이제 또 다른 출발선에 섰다.
퇴직금도 다 써버리고 이제 딱 10만원 남았다. 이런 순간에 취업을 하고 보니 감개무량하고 눈물까지 나오려고 한다. 집에서 거리도 가깝고 아이템 도 괜찮은 회사. 규모가 작고 연봉도 낮지만 백수 생활보다 낫다는 생각 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최종 합격해 출근하게 됐다. 그동안의 방탕한 생활 에 대한 속죄의 마음으로 일을 하려고 한다. 연봉은 낮지만 내가 하고 싶 은 일을 하면서 꿈을 키우고 싶다.
비록 힘들기는 했지만 백수 기간에는 많은 것을 배웠다.
속초 바다에 세 번이나 가서 바다와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느슨해지는 마 음을 굳게 다잡았기도 했고, 산에서 수양도 해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사 람 마음을 다스리는 게 가장 어렵다는 것을 또 한번 배웠다. 자기 자신과 의 싸움에서 이기는 게 가장 값진 승리라는 것. 마음 다스리는 것은 어렵 고도 어렵다.
취업은 바로 그런 것이다. 구직자와 구인업체의 이해관계가 100% 맞아야 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3개월 동안 세 군데에 이력서를 넣었다. 세 군데 넣어 한 곳에 최종 합격했으니 딱 3할 3푼 3리다.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계속 헛스윙 해 봐야 타율만 떨어질 뿐이다. 확실한 한방을 기다리면서 힘 차게 휘두를 때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다. 취업은 야구다.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칠 땐 온 힘을 다해 정확하게 쳐야 한다.
어느 토요일 새벽 청량리역에 있는 한 백화점 앞에서 삶의 체험 현장이라 생각하고 멀쩡한 집을 놔두고 노숙을 했다. 참 많은 사람들이 갈 곳을 잃 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대낮에 술 마시고 방황하 는 사람들도 있고 밥 사먹을 돈이 없어 구걸하는 사람들 보면서 단돈 1000 원이 주는 의미도 되새겼다. 김밥 한 줄 사먹을 수 있는 돈 1000원을 구걸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 이번 기회에 종합 선물 세트를 받은 거 같다. ‘인생’과 ‘세상’이라는 종합 선물 세트. 물질적인 선물이 아니라 정신 적 선물 세트. 가장 소중한 선물을 받았으니 다시 열심히 살아가야겠다. 내 인생 가장 소중한 선물을 받아들고 너무 기쁘다.
‘주머니 속에 돈이 없는 게 가장 슬픈 게 아니라, 가슴속에 꿈이 없는 게 가장 슬픈 것’이라는 대학 시절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3개월 동 안 꿈도 없이 어디로 가야 할지 계속 방황하고 다녔지만 그마저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꿈 없이 갈 곳을 잃고 산다는 게 얼마나 비참하고 힘든 일인 지 알게 됐으니 백수 생활 3개월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경험이자 추 억이 될 것이다.
구직자 여러분들도 힘내시고 3할 3푼 3리를 친다는 생각으로 기다릴 줄도 알고 기회가 왔을 때 힘차게 방망이를 휘두르시길 바랍니다.
첫 마음을 잃지 않아야
다른 중소기업에서 일하다가 이곳으로 온 지 내일이면 한 달이 되는군 요.
삼성의 한 자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반도체 패키징 회사인데 중소기업보 다는 좀더 규모가 큰 편입니다. 상반기 하반기 pi/ps도 있고, 연 700% 상 여금에 복리후생도 괜찮은 편입니다. 주 40시간제, 주 5일 근무라고 듣고 왔는데 실제 근무일은 총 26일이고, 그 중 16일은 2조 2교대입니다.
그 외 시간은 초과근무나 특근이고, 인센티브로 A급 받으면 연 3000만원 정도, B급을 받으면 2500만원 정도 받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자가 대기업 이 아닌 곳에서 이정도의 월급이면 많이 받는 것인데 왠지 적응이 잘 안 되고 일하고 싶은 의욕도 생기지 않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네요.
전 고졸이라 설비 메인트(Maint)라는 업무에 지원했습니다. 전공은 ‘전 기’이지만 설비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고등학교 재학시 취업 나갈 기 회가 있었는데 그 때 전기일을 해보고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습 니다. 그래서 제대 후 설비 쪽으로 진로를 바꿔서 취업을 시도했습니다. 지금은 업무에 대한 부담이 좀 크지만 제대로 제 길을 찾아온 것 같습니 다.
선배들도 이곳보다 좋은 곳은 없다고 말하는데, 저는 아직 라인에 투입된 지 얼마 안 돼 확실히 파악이 안 되네요. 수습기간이 3개월이라 ‘메인트 숍’ 이라는 메인트 업무도 배우고 오리엔테이션도 하고 있습니다.
이 곳은 남자들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군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입사 원을 ‘쫄병’이라 부르며 빨리 설비 세팅과 보수업무를 배워야 저희들이 편할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사회생활이 군대생활과 같다는 말만 들었는데 직접 보니까 실감이 나네요. 또 위로부터 핀잔을 듣는 선배들을 보니 안쓰 럽기도 하고 저도 영 자신이 없어집니다.
백수로 지낼 때는 ‘일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던 마음을 지금은 잊어버렸 나 봅니다. 막상 회사를 그만두려니 다시 백수 생활을 할 자신도 없고, 좋 은 데 취업했다고 동네 분들에게 자랑하시는 어머니 모습도 눈에 걸리네 요.
제 배가 벌써 불렀나 봅니다. 다른 분들은 처음 그 마음 잊지 마시고 계 속 파이팅 하세요~.
중국을 정복하라
취직을 본격적으로 준비한 것은 지난해 12월. 캐나다에서 6개월, 중국에 서 1년간의 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한 뒤부터였다. 귀국 다음 날부 터 토익학원 및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하고 2월 복학 전까지 공부만 했다. 평소 무역 쪽에 관심이 많아 무역협회 주관 대학생 단기무역실무과정을 수 료하고 영어회화 및 중국어에 매진했다.
복학 후 학점 관리 및 토익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으며 본격적으로 취 업사이트에 이력서를 등록한 뒤 닥치는 대로 원서를 넣었다. 졸업 전이라 중소기업 몇 군데에서 면접을 제의받았다.
중소기업 면접이라 우습게 생각했는데 실제 부딪혀보니 쉽지 않았다. 두 군데에서 합격 통보가 왔다. 한 곳은 해외영업, 다른 한 곳은 중국 상해 현지에서 근무하는 자리였다. 합격 증서를 들고 교수님을 찾아뵈었는데 ‘1학기 취직은 절대불가’, 생각지 못한 난관이었다. 수차례 면담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좋은 경험한 셈 치고 취업을 포기했고 시간은 흘렀 다.
중간고사가 거의 끝날 무렵, 그 때도 틈틈이 취업사이트를 뒤져가면서 취 업정보를 얻고 있었다. ‘DELL 대련 Inside Sales Representative 모집’ 이라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왔다. 중국 대련에서 일할 영업·판매 직원을 찾고 있었다.
만약 합격하더라도 7~8월에 출국하게 되므로 교수님들도 굳이 반대하시지 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당장 원서를 내고 정보를 캐기 시작했 다. 외국기업 취업박람회에 델이 참가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회를 잡기 위 해 새 옷을 구입하고 지원서를 들고 찾아갔다. 당차게 인사를 드리고 즉 석 면접을 봤다. 인사과장님의 얼굴도장을 찍기 위해서 있는 질문, 없는 질문 다 해가며 성의를 보였고, 면접 후 인사과장님에게 개인적으로 감사 메일을 보내고 다음 날 또 찾아갔다. 귀찮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든 기회를 잡고 싶었다.
델의 전형과정은 너무나도 길었다. 한 달이 다 지나서야 겨우 합격 통보 를 받았다. 다행히 면접은 한국어 면접이었는데 이미 수차례 면접을 본 경 험이 있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가면서 델에 대한 정 보를 입수하고 마이클 델 회장이 쓴 책을 보며 델의 경영방식에 대한 정보 를 얻었다. 면접 당일 전략상 델 회장이 쓴 책을 보란 듯이 들고 가방에 는 델 로고가 찍혀 있는 휴대전화 줄을 달고 면접장에 들어갔다. 또한 면 접 전날 ‘합격과는 상관없이 이런 세계적인 기업의 면접을 볼 수 있는 기 회를 주셔서 정말로 감사하다’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처음 보는 대기업 면접이었고, 너무 중요한 면접이었기에 매우 긴장되고 떨렸다. 면접실에 딱 들어서는 순간 환호성을 질렀다. 채용박람회에서 얼 굴도장을 찍은 인사과장님이 면접관으로 계신 것이다. 그분도 나를 알아보 시고는 “오랜만이네요. 여기에서 다시 만나게 되니 기쁘네요.”라고 말씀 하시고 미소지었다. 면접은 편하게 진행됐고 열정을 담아 질문에 답하며 수월하게 끝났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 동안 취업을 위해 준비했던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물론 델차이나 소속으로 들어가기 때문 에 연봉은 보잘 것 없지만, 아직 젊고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열정 하나만 붙잡고, 경력을 쌓기 위해서 중국 땅을 밟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준 안석화 씨의 개인 성공담을 적은 <너의 눈을 세 계로 돌려라>라는 책에 있는 구절을 적으면서 마치고자 한다.
“후회 없는 삶보다는 후회 있는 삶이 오히려 낫다. 처절한 피드백과 결과 에 대한 반성 없이는 ‘후회’라는 단어조차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신입은 어쩌라고"
취업을 준비를 시작한 것은 4학년 1학기였다. 객지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더 이상 집에 손 벌리기도 죄송했고 졸업 후 당장 취업되지 않으면 살 길 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서울 4년제 대학교에 학점 3.45, 자격증이라고는 워드프로세스 1급과 비서 자격증 2급이 전부였다. 문제는 토익이었다. 그 래서 토익학원에 등록해 두 달간 수강했지만 점수는 크게 오르지 않았 다.
어영부영 마지막 학기가 지나고 해운회사 계열인 한 선박회사에 운 좋게 1 차 서류전형에 합격했다. 새로 산 정장을 입고 회사에 들어서는 순간 긴장 감으로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대기업 면접은 처음이었다. 면접은 필 기시험부터 시작됐는데 영한사전 한권이 주어졌고 앞에는 온통 영어작문 과 독해로 가득한 시험지가 펼쳐져 있었다. 그 다음은 엑셀 실기시험이었 다. 실무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시험을 치르는 것이어서 손이 부들부들 떨 렸다. 다음은 상무이사의 면접이었다. 사람 대하는 면접에는 자신이 있었 고 편안하게 면접을 봤다.
하지만 다른 시험은 굉장히 못 봤기 때문에 당연히 떨어졌으리라 낙담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1차 면접에 합격했으니 다음날 사장님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 통보를 받았다. 다음 날 사장님 면접은 첫날보다 더 떨렸다. 무슨 질문을 받았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 지만 50%의 확률이 있어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청천날벼락 이…불합격 통보였다. 나는 신입이었고 다른 면접자는 경력직이었기 때문 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무역회사에서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5명이 함께 면접을 보는데 이미 대기업 면접 경험이 있어 별로 떨리지 않았다. 어려운 시험도 없었고 무난하게 면접을 끝냈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이 지 난 어느 날 합격 통보를 받았다. 비록 내가 바라던 대기업은 아니지만 어 려운 취업난에 회사에 다니게 된 것만으로도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 경력 을 쌓은 후에 다음에는 꼭 불합격한 회사에 다시 이력서를 낼 계획이다. 그때는 경력직으로 말이다! 여러분도 모두들 힘내세요.
출처: 월간리크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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