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연말 어깨가 유난히 무겁다. 갈수록 깐깐해지고 있는 인사평가에다 치열한 자기계발 경쟁, 게다가 경기부진 및 기업의 투자위축에 따른 구조조정의 칼날이 직장인의 목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3대 스트레스가 직장인의 밥그릇과 맞물리면서 압박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가중된 연말 업무까지 겹치면서 몸과 마음은 천근만근이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박모(40) 과장은 최근 사내 업무능력 시험을 앞두고 며칠밤을 꼬박 새우고 있다. 떨어지면 승진과 연봉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동료는 지난해 시험에서 떨어져 승진이 좌절됐다. 실적악화로 본사 구조조정 이야기까지 들리면서 박 과장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연말 인사평가는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다. 연봉제 기업이 늘면서 상대평가를 통한 등급별 순위까지 꼼꼼히 매겨진다. 최하위 등급은 연봉 삭감에다 퇴출 0순위다. 직원 스스로 본인 고과를 매긴 다음 평가자와 면접을 통해 한 해 실적에 대해 협상하기 때문에 ‘자아비판(?)’의 괴로운 의례도 거쳐야 한다. 대기업 한 직원은 “인사평가가 나쁘면 바로 연봉이 깎이는데 누가 긴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바짝 긴장한 직장인은 최근 사내 의무교육 채우기, 어학성적 높이기 등 밀린 숙제를 하느라 퇴근시간이 자정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만년 대리ㆍ과장’ 이야기를 듣고 있는 고참일수록 인사평가에 대한 압박은 더욱 세다.
직장 10년차 이모 과장은 “올해 의무이수 교육점수가 미달한다는 인사팀 메일을 뒤늦게 확인하고 서둘러 사이버교육을 신청했다”면서 “진급 대상인데 점수 미달로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인사평가 항목에 어학, 자격증 취득 등 자기계발 능력 측정비중이 커지면서 이에 대한 압박도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IT기업에 다니는 김 과장은 요즘 영어스트레스 때문에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질 정도다. 회사에서 800점 이상의 토익성적을 요구하고 있지만 최근 토익시험 형식이 바뀌면서 이마저만 어려운 게 아니다. 학원강의에다 사이버 수강까지 총력전을 펼치지만 원어민처럼 술술 영어를 읊어내는 후배를 보면 금세 기가 죽는다. 김 과장은 “당장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기도 바빠 이래저래 스트레스만 받고 있다”고 말했다.
명예퇴직과 부실사업 정리 등 구조조정 한파는 직장인을 더욱 춥게 만든다.
국내 굴지의 정유회사에 근무 중인 최모 부장은 최근 출근하자마자 컴퓨터 메인화면에 뜬 메시지 창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이 46세 이상 직원에 대한 명예퇴직 권고안’이었다. 중학생 큰 아들을 생각하면 회사를 그만둘 수 없지만 회사의 은근한 압박도 만만치 않아 좌불안석이다.
최근 팬택 계열이 600여명의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한 데 이어 금강산관광 축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대아산이 인원 축소와 임금 삭감 등 구조조정을 검토 중이다.
실적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사업구조조정으로 생산라인 철회나 사업부 통합 등에 들어간 회사 직원은 영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미 본사와 생산공장의 인원축소가 진행 중인 기업은 사내 ‘살생부(殺生簿)’까지 나돌고 있다.
기업간 인수ㆍ합병이 활발해지면서 최근 다른 기업으로 넘어간 기업 직원 중에는 구조조정의 우려감 속에 창업이나 이직을 고려하는 이도 많다.
구조조정에 들어간 한 대기업 관계자는 “실적악화로 본사와 지방공장 직원을 인건비 대비 10%를 줄이라는 지시가 떨어져 사내 분위기가 뒤숭숭하다”고 말했다.
출처 : 헤럴드 생생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