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꿈만 꾸는 사람과 꿈을 이루는 사람. 커뮤니케이션과 대화법의 전문가 ‘돈 가버’는 이렇게 말했다. 구체적인 큰 목표를 세우고, 단순하지만 잘 짜인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나가는 것이 인생의 꿈을 실현하는 비결이라고. 과연 깔끔하게 정리된 이 성공비법을 우리는 얼마나 실천하며 살고 있을까? 어둠 속에서도 방향을 잡아주는 등대처럼 명확한 꿈을 갖고, 그곳까지 가기 위해 열심히 노 젓는 사공이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예술경영과 전문사 과정에 재학 중인 최용수(26)씨. 하루하루 꿈을 향해 다가가는 부지런한 뱃사공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 꿈★은 이루어진다.
피부 뽀얀 젊은 총각이지만 그의 이력은 가히 예사롭지 않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 버클리 음대에 입학한 그는 낯선 땅에서 ‘Production Y’란 공연 기획사를 창업하고 공연 시장에 뛰어든다. 4년 동안 장학금을 받으며 무사히 학교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그는 세계 4대 뮤지컬 〈미스사이공〉의 조연출을 맡아 성남 아트센터와 세종 문화회관에 무대를 올렸다.
게다가 다가오는 2007년 1월 23일부터 2월 25일까지 대구 오페라 하우스에서 펼쳐질 〈미스사이공〉의 국내연출까지 맡게 되었다고 하니 과연 나이가 믿겨지지 않는 걸쭉한 이력들이다.
하지만 그가 탄탄대로처럼 어려움 없이 순탄한 길을 걸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그에게는 모두가 No! 라고 말할 때 Yes! 를 외칠 수 있을 만큼의 용기와 패기가 필요했다. “제가 무슨 일을 좀 하려고 하면 99.9%는 반대를 해요.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기하지만 저는 나 밖에 대답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자문해보죠. 그러면 99.9%가 실패할 거라고 반대했던 이유가 성공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으로 변하더라고요.” 그가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 꿈이 자기 힘으로 찾아낸 나만의 답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 답이 틀렸다 할지라도 실패를 통해 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에 그에게 두려움이란 없다. 그가 미국에 있는 동안 본인이 창업한 공연 기획사 ‘Production Y’에서 여러 공연을 기획, 연출했었다. “그 때도 10명 중 9명은 반대를 했었죠. 2004년도에 미국의 문화를 정복하겠다는 대망을 품고 김범수, 드렁큰타이거, 윤미래씨의 보스턴 콘서트를 맡았어요. 그런데 미국에선 동네잔치처럼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공연이었죠.” 결과적으로 이윤이 얼마 남지 않았고 재정적으로 쓰라린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는 몸으로 직접 부딪치며 도전했기에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가지고 있는 것을 바로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추진력,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에 대한 책임의식을 제대로 배웠죠.” 실패에서 성공의 열쇠를 찾아내는 모습. 이것이 바로 꿈을 이루는 자의 성공 비결이 아닐까?
# 끊임없는 도전, 기회를 잡는 방법
고등학교 시절 때부터 남달랐던 최용수 씨. 남들은 수능공부에 온 정신을 팔고 있을 때지만 그는 명확한 목표도 없이 정해진 루트를 따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뭘까?” 스스로 자문하면서 3년 후, 5년 후의 모습을 구체화시켜 나갔다. 그는 음악(기타)을 하겠다는 결심을 세우고 세계 최대의 사립 음악대학 버클리 음대의 장학금 오디션에서 당당히 1등 상금을 거머쥔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통념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끊임없이 도전하는 정신. 그것이 바로 최씨의 본능이었다.
대학교 2학년 2학기, 그의 나이 22세 때 자신이 맡은 공연에 필요한 가수들을 섭외하기 위해서 수많은 기획사 사무실을 들락날락 거린 적이 있다. “기획사에서는 태반이 안 만나준다고 퇴짜를 놓았죠. 때론 좌절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런 것은 창피한 게 아니였어요. 정말 창피한 것은 자신이 시작하고 실행시킨 결과물에 대해 책임을 지지 못하는 거예요.” 그렇기에 웬만해선 창피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최씨. 그는 한국에 돌아와 새로운 도전의 문에 노크한다. 이번엔 뮤지컬이었다. 2006년 8월, 뮤지컬 〈미스사이공〉이 한국에서 초연을 앞두고 있을 때, 최씨는 이 뮤지컬의 조연출을 맡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34곡의 음악으로 이루어진 Sung through 뮤지컬 〈미스사이공〉은 음악을 전공한 그에게는 더욱 용이했다. 그러나 그는 작업에 참가하기 전 영어 가사의 원곡을 한국어 가사로 번역하여 몽땅 암기했다. 나중에 외국 연출자가 한국 배우에게 무언가를 전달할 때 자신이 소통을 원활하게 돕기 위해 탄탄한 대비를 한 것이다.
여기서 갈고 닦은 실력은 그를 대학 강단에까지 올려놓았다. 현재 경희대 연극영화과에서 강의를 하며 그와 비슷한 또래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최씨. 자신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이기에 대학생에게 강의를 하는 일은 부담되는 도전이라고 한다. 하지만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면 새로운 기회의 토대가 마련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기회는 어느 누구도 마련해주지 않아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자에게는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죠. 기회를 만들기 위해 저는 끊임없이 도전합니다.” 눈앞에 가로막힌 벽이 얼마나 높은지 얼마나 단단한지 부딪쳐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부딪치고 도전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 노력하는 천재가 되자
“기타를 들고 버클리 음대에 갔을 때는 제가 최고인 줄 알았죠. 그런데 저만큼 하는 사람이 적어도 만 명은 있었어요. 그 때 깨달았어요. 천재란 말은 천재적인 노력을 할 수 있다는 말과도 같다는 걸요. 재능, 능력 그 밖에도 고통과 노력을 감내할 수 있는 자만이 천재란 타이틀을 얻을 자격이 있죠.” 그가 끊임없이 전진하는 까닭은 무섭게 노력하며 노를 젓는 사공들이 세상에 너무 많다는 위기의식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나라의 문화 콘텐츠에 대한 욕심이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 문화 산업은 많은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체 작업이며, 사회, 경제, 정치 전반이 뒷받침될 때 함께 성장할 수 있다.
때문에 미국을 위시한 문화콘텐츠 시장의 빠른 향상 속도 속에서 문화주권을 잃을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도 뒤따르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그것만 생각해도 위기의식이 생기죠. 그래서 노력하게 되는 것 같아요.” 성공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위기란 성공으로 가기 위한 찬스라고. 그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국내의 사회 전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에 그에게 펼쳐질 성공의 길은 과연 협소하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07년 1월 23일. 대구 오페라 하우스에서 막을 올릴 〈미스사이공〉. 최. 용. 수. 그의 이름 석 자를 걸고 대구 시민뿐만 아니라 국내 뮤지컬 팬들의 발걸음을 모으길, 그리고 보이지 않는 그의 노력이 큰 무대에서 진정으로 빛을 발하길 기대한다.
연출가 최용수 프로필
▲ 2003. 공연기획사 ‘Production Y’ 창업 ▲ 2003. 장혜진+The Sextet Prelude 보스턴 콘서트 기획/연출 ▲ 2004. 정통 재즈밴드 The Sextet Prelude 내한 투어 콘서트 기획 ▲ 2004. 김범수 + 드렁큰타이거 + 윤미래 보스턴 콘서트 기획/연출 ▲ 2006. 뮤지컬 〈미스사이공〉 조연출 (성남아트센터, 세종문화회관) ▲ (現)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예술경영과 전문사 과정 재학 중 / 경희대학교 연극영화과 출강
출처 : 세계일보 이향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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