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일류 기업인 삼성은 지금 모든 구직자의 ‘아이콘’이다.
‘삼성맨’ ‘삼성공화국’에 이어 ‘삼성스럽다’는 형용사까지 등장했다.
명성에 걸맞게 취업 시장에서도 삼성과 관련된 여러 가지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삼성 고유의 적성 시험인 ‘SSAT’만을 준비하는 학원이 생겼다.
직종과 상관없이 삼성그룹 입사를 목표로 하는 대학생들은 인터넷에 모여 정보를 교환한다. 이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삼성은 과연 어떤 사람을 채용하느냐는 것.》
백은경(25·여) 씨. 2005년 7월 삼성그룹 공채에 합격해 현재 삼성전자 생활가전총괄 청소기수출그룹에 근무 중이다.
새내기 삼성맨인 백 씨에게 ‘삼성이 왜 당신을 뽑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무엇보다 솔직함과 자신감이 중요합니다. 인터넷 취업 동호회에는 ‘면접관이 이런 질문할 때는 이렇게 대답해야 된다’,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답해야 유리하다’, 심지어는 별 관심도 없으면서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다 해보고 싶다고 하라’는 말들이 나돌죠. 하지만 ‘비법’이나 ‘족보’는 따로 없습니다. 솔직하지 않은 대답은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아요.”
그는 ‘삼성 재수생’이다. 2004년 가을 삼성그룹에 지원했다가 최종 면접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러고 보면 백 씨는 ‘대기업은 최종 면접에서 탈락한 적이 있는 구직자는 안 뽑는다’는 속설도 낭설임을 입증한 셈이다.
“면접 때 떨어진 경험을 당당히 밝혔습니다. ‘그 경험 이후 내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 주러 왔다. 내가 마음에 든다면 뽑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요.”
그는 한양대 경영학부를 졸업했다. 학점은 3점대 중반, 토익 점수도 900점이 안 되는 평범한 ‘스펙’이다. 백 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영어는 무진장 싫어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자신감 말고도 다른 ‘무기’가 많았다.
“혼자서 거울을 보고 프레젠테이션(PT)하는 연습을 매일같이 했습니다. 한글로 대본을 만들어 놓고 즉석에서 영어로 번역해 설명하는 것이죠.” PT 연습을 많이 한 덕택에 요즘도 해외에 출장 가서 제품 소개를 하는 것이 별로 부담스럽지 않다고 한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배낭여행을 떠나 해외 경험을 쌓았다. 독학으로 배운 일본어도 수준급. 틈틈이 친구들과 팀을 이뤄 광고공모전에 출품한 경험도 10여 차례에 이른다.
백 씨는 “비록 밤을 새우더라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가 맡은 일은 청소기 수출과 해외 영업. 해외 거래처와의 시차 때문에 오후 11시가 넘어 퇴근하는 게 다반사다.
삼성전자 청소기를 수입하는 헝가리에 첫 출장을 갔을 때의 경험담. 삼성 청소기가 그 낯선 나라에 전시돼 있고 고객들이 사가는 것을 목격하면서 그는 느꼈다.
‘내가 몇 달 전에 실어 보낸 물건이 정말 세계 각지에서 팔리고 있구나. 내가 하는 업무가 실제로 아주 중요한 일이구나….’
삼성의 인재들은 모두 이런 깨달음의 과정을 거친다고 그는 말했다.
“얼마 전 회사 선배 한 분이 사내에서 우수 사원상을 받았어요. 그 선배는 항상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고 이 일을 안 하면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에 대해 설명을 해 줬죠. 삼성의 인재는 흐름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흔히 대기업 직원이라면 ‘조직의 톱니바퀴’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삼성은 ‘T’자형 인재를 선호한다고도 했다. 자신의 전문 분야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폭넓게 알아야 한다는 것.
만약 백 씨가 인도에 삼성 청소기를 팔아야 한다면 청소기만 알아서는 안 된다. 카펫보다 대리석 바닥에 익숙한 인도의 문화를 알아야 하고, 청소기를 사는 것보다 청소부를 고용하는 편이 돈이 덜 드는 인도의 경제 현실도 알아야 한다.
그는 지식의 폭을 넓히기 위해 영국의 경제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를 얼마 전부터 자비로 구독하기 시작했다.
“회사 선배들이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기계적인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다. 시장을 넓히고, 없는 오더(주문)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요.” 그 업무를 누구로도 대체할 수 있는(replaceable) 사람은 삼성이 뽑지 않는다는 뜻이다.
삼성 인재경영의 강점은 팀워크에도 있다.
“신입사원 집합교육을 받을 때 ‘롤플레잉’ 게임을 하면서 조직 생활을 익혔습니다. 20여 명이 한 조를 이뤄 회장을 뽑고 각자 직책을 맡으면서 연극이나 기업경영 게임 등을 했죠.”
삼성전자는 일정 경력을 쌓은 사원을 대상으로 미국 경영학석사(MBA) 과정 연수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선발되는 것 또한 백 씨의 꿈이다.
삼성 입사를 희망하는 후배들에게 조언해 달라고 부탁했다.
“말하는 연습을 권하고 싶어요. 영어든, 한국어든 핵심을 짚어 말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수천 장, 수만 장의 이력서를 보는 면접관들에게 자신의 포인트를 간결하게 설명하는 실력이 있어야겠죠.”
출처 : 동아일보 유재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