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 등 전문직, 대기업사원 대거 몰려 '신이 내린 직장'으로 불리는 국책은행을 비롯해 금융분야 공기업의 취업철을 맞아 일반 구직자뿐 아니라 남부러울 것 없는 직장을 가진 전문직이나 회사원까지 입사 준비에 매달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현직 공인회계사(CPA)나 대기업 사원 중 상당수가 22일 한꺼번에 채용시험을 치르는 국책은행과 금융 공기업에 원서를 내고 막판 시험공부에 막바지 박차를 가하고 있다.
22일 채용시험을 치르는 곳은 한국은행ㆍ금융감독원ㆍ산업은행ㆍ수출입은행ㆍ증권선물거래소ㆍ수출보험공사ㆍ예금보험공사 등 7곳.
50명을 뽑는 금감원에는 3천734명이 몰려 약 75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고 한국은행도 40명 가량을 선발할 예정인데 2천402명이 지원해 60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증권선물거래소도 10여명만 뽑을 예정이지만 1천100여명이 몰려 무려 100대1이 넘는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공인회계사 박모(33)씨는 유명 회계법인에 다니고 있지만 회사 몰래 22일 한국은행 필기시험을 보기로 했다.
정년이 길고 고용이 안정적인 국책은행 직원이 공인회계사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응시 이유다.
박씨는 "회계사가 전문직이라고 하지만 미래가 불안하다. 대부분 직원이 40대 후반에 퇴직을 하는 실정이다. 정년이 너무 짧다"고 말했다.
그는 "임원으로 승진하지 않으면 40대 초반에 퇴사해야 하는데 임원 경쟁률이 8대1이나 된다. 그 나이에 밀려나면 할 일이 별로 없고 한국은행 같은 직장은 구할 수 없다"며 민간기업의 치열한 경쟁에 큰 부담감을 드러냈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주위에 많다고 박씨는 전한다.
역시 공인회계사인 박씨의 학교 후배 김모(28)씨는 올해 여름 군복무를 마친 뒤 이번 수출입은행 채용시험에 응시하기로 했다.
박씨는 "주말에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하다가 아는 회계사와 마주친 적도 있다. 그 사람이 들고 있는 책을 보니 금융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것 같더라"며 "높은 연봉을 받는 대기업 직원이나 CPA 합격자 중에 한국은행이나 산업은행 입사를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대기업 입사가 확정된 대학생 김모(25.여)씨도 22일 산업은행 시험을 치른다.
김씨는 "대기업에서 재무 업무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응시하는 산업은행에 들어가는 게 더 매력적이다. 그런 사람들과 같이 일하면서 배우고 싶은 욕심이 난다"고 말했다.
유명 전자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한 네티즌은 공기업 취업 관련 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적성이나 급여 등에 대한 불만보다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공기업 입사를 준비 중이다. 10~15년 뒤를 생각하면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할지 가슴이 답답하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한국은행 인사관리팀 관계자는 "채용시 나이제한이 없어지면서 전반적으로 신입 사원의 연령이 높아지고 대학 졸업예정자의 입사 비율이 낮아지고 있다"며 "올해 경영학과 부문으로 입행한 사원의 절반이 CPA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