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고속도로 위에 올라서면 질주본능에 빠지기 쉽다. 마찬가지로 정부가 됐든 기업이 됐든 조직은 끊임없이 커지려는 확장본능을 갖고 있다. 바윗덩어리 같은 근육을 더욱 단단하고 크게 키우려는 보디빌더처럼 말이다.
조직이론에서는 '관료주의 폐해'나 '대기업병'을 조직의 병리현상으로 다룬다. 조직이 거대화하고 전문화하면서 관료화와 분업화, 공식화, 집권화의 늪에 함몰하곤 한다는 것이다. '일중독 벗어나기'의 저자 강수돌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를 '중독 조직' 차원에서 바라본다.
조직이 규모를 무한히 확대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쉬움을 설명할 때 단골로 나오는 것이 '파킨슨의 법칙'이다.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사회생태학자였던 시릴 노스코트 파킨슨(1909-1993)은 2차 대전 때 영국 해군에서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관료제의 본질을 꿰뚫는 이 법칙을 창안했다.
1914년 현재 영국 해군의 병력은 15만 명이었고, 군함 수리창 관리와 사무원이 3천200명이었다. 여기에 근로자가 5만7천 명 가량 딸려 있었다. 그런데 14년 뒤인 1928년에는 해군 병력이 10만 명으로 감축되고 군함 역시 62척에서 20척으로 줄었음에도 수리창 관리와 사무원은 1천200명이 오히려 더 늘었다. 해군본부의 관리자 또한 2천 명에서 3천560여 명으로 증가하는 기현상을 보이더라는 것이다.
파킨슨의 법칙은 '조직이란 주어진 역할이나 업무와는 상관없이 항상 사람을 증가시키려는 속성이 있다'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파킨슨이 이를 관료제에 적용시켜 1955년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공무원의 수는 업무 양에 무관하게 증가하고 출세를 위해서는 부하가 많아야 하므로 숫자를 자꾸 늘린다. 업무가 과중할 때 부하의 수를 늘리긴 원하지만 라이벌은 원하지 않는다거나 공무원은 서로 자기들을 위해 일거리를 만들어낸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조직이 비대해짐에 따라 내부의 경고와 대처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조직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거액의 돈을 들여 혁신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요란을 떨지만 2-3년이 지나면 혁신은 사라지고 별다른 내용의 변화없이 원점으로 돌아가고 만다는 게 강 교수의 지적이다.
파킨슨이 연구했던 영국 정부의 경우, 1935년 현재 영국 식민성의 행정직원은 372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1954년에 무려 1천660여 명으로 늘어났다. 대영 제국이 쇠퇴해 관할 식민지가 급감했음에도 관련공무원은 대폭 증가한 것이다.
이와 유사한 파킨슨의 법칙은 우리 정부에도 적용될 듯하다. 14일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역대 정부별 공무원 수 추이' 자료에 따르면, 참여정부 들어 공무원의 인원이 크게 늘었다. 문민정부 때 91만9천404명이던 공무원은 IMF경제위기를 거치면 국민의정부 때 88만5천164명으로 전례없이 감소했으나 참여정부 4년 만에 93만3천663명으로 반등세를 보였다. 인원수로는 역대 최다이며, 증가율 역시 5.67%로 역대 정부 중 두 번째였다. 철도청이 2년 전에 한국철도공사로 전환하면서 빠져나간 점까지 감안하면 증가폭은 사실상 8만 명에 가깝다고 한다.
이 같은 공무원 수의 증가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각 부처가 행자부에 요청하고 있는 증원 공무원이 2010년까지 12만 명에 이른다고 하고, 장.차관과 청와대 직원들도 외환위기 때에 견주어 크게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검찰 검사장급 자리가 여덟 개나 더 생겼다는 얘기도 들린다.
물론 파킨슨의 법칙을 한국사회에 그대로 적용시키려면 업무관리 대상과 영역의 증감, 조직의 무능력 숨기기 여부 등 관련 데이터가 정확히 제시돼야 하나 큰 틀에서 봤을 때 이를 원용해볼 수 있다는 뜻이다.
파킨슨의 법칙은 기업에도 얼마든지 파고들 수 있다. 효율성추구와 이윤극대화를 최대목표로 삼는 기업일수록 작은 기업에서 큰 기업으로 성장하려는 본능을 갖고 있어 내실을 뒤로 미룬 채 규모 확대의 유혹에 빠져들기 쉽다. 성장지상주의에 몰입하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조직 중독 증세를 보이다가 급기야 '대기업병'에 걸리고 마는 것이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파킨슨의 법칙은 공무원사회뿐 아니라 효율과 생산성을 중시하는 기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경계한다. 한번 비대해진 몸의 살을 빼기란 좀처럼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그동안 성장신화에 사로잡혀 숨가쁘게 달려왔다. 개인에겐 출세와 부가 공통의 지상과제처럼 여겨졌다. 근면 성실 이데올로기로 자신과 타인 그리고 조직을 다그친 결과 이만큼이나마 잘 살게 됐다는 긍정적 평가가 대세이지만 '더 크게, 더 빠르게'에 너무 경도돼왔지 않느냐는 지적에도 성찰의 눈길을 주어볼 시점이다. 공룡이 덩치만 줄기차게 키우다가 멸종하고, 한국경제가 성장지상주의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다가 IMF위기를 맞았듯이 말이다.(끝)
출처 : 연합뉴스 임형두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