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서적 1000권 출판한 컴북스 박영률 사장
“출판의 기준은 내용의 전문성과 독창성이 있느냐 없느냐, 그리고 학계에 꼭 필요한 책이냐 아니냐입니다. 전문성과 독창성만 있으면 시장성도 있다는 걸 경험을 통해 확신합니다.”
9년 전 문을 열어 신문방송 영화 광고 홍보 등 미디어 관련 서적만 출판해온 커뮤니케이션북스(이하 컴북스)는 최근 그림 커뮤니케이션 역사를 다룬 ‘동굴 벽화에서 만화까지’(랜슬롯 호그벤 지음, 김지운 옮김)를 펴냈다. 컴북스의 1000권째 미디어 전문서적이다. 책의 등판에 ‘1000’이라는 숫자가 선명하다.
10년도 채 안 돼 한 분야의 전문서적 1000권을 출판한 것은 국내외적으로 드문 일. 컴북스가 그동안 펴낸 1000권의 미디어 서적은 한 권씩만 쌓아도 아파트 10층 높이에 이른다. 출판계 일각에선 기네스북감이라며 혀를 내두른다. 미국의 언론학 전문 출판사로 유명한 ‘세이지’도 1년에 30권 내외 출간하는 것이 고작. 국내 출판사로는 5000여종을 출간한 을유문화사를 비롯해 2000권 이상씩을 출간한 민음사, 문학과지성사, 나남, 김영사, 시공사 등이 있지만 모두 20∼50년 된 종합 출판사이고 책의 분야도 다채롭다.
◇9년 만에 동일 분야 1000종 출판이라는 기록을 세운 커뮤니케이션북스의 엄진섭 편집1팀장, 전정욱 2팀장, 박영률 사장, 유은경 3팀장(오른쪽부터). 이제원 기자
박영률(50) 컴북스 사장은 올해가 출판계 입문 18년째. 그간 1500여권의 책을 만들어 냈다. 지난해 출간한 단행본만 해도 265권. 이와 함께 ‘부동산뱅크’(격주간, 1988), ‘부동산 익스프레스’(일간, 89), ‘아파트 정보’(월간, 90) 등 잡지와 신문도 창간했고, 1998년 국내 처음으로 이메일 일간신문인 ‘오딧세이’를 선보여 지금도 천리안과 하이텔에 서비스하고 있다. 박 사장은 컴북스 말고도 출판사 2개를 더 꾸려가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딴 ‘박영률출판사’와 ‘지식공작소’가 그것.
“제 역할요? 제가 한 일이 뭐 있겠습니까. 편집장들을 잘 만났다고나 할까요. 모든 기획과 편집, 제작은 3명의 팀장이 다 알아서 합니다. 사장 잘 만나는 게 편집장의 행운이라면, 편집장 잘 만나는 게 사장의 최고 행운이자 행복이죠.”
◇커뮤니케이션북스의 첫 번째 책 ‘디지털이다’(사진 왼쪽)와 1000권째 책인 ‘동굴 벽화에서 만화까지’.
박 사장은 인터뷰 중간에 불쑥 편집장들을 소개한다. 편집1팀장 엄진섭, 2팀장 전정욱, 3팀장 유은경. 컴북스를 움직이는 출판 마술사들이다. 각 팀은 평균 2주일이면 한 권씩 책을 생산해낸다. 보통 6개월가량 걸리는 출판 공정을 생각하면 신기에 가깝다. 비결을 묻자 “다른 출판사는 보통 원고가 들어오면 편집-제작-마케팅 단계를 차례대로 거치는 데 비해 우리는 44단계로 세분된 공정에 따라 편집자는 물론 마케팅, 제작팀이 동시에 작업을 해나간다”고 귀띔한다. 컴북스의 마케팅 대상은 독자보다는 필자다. 특히 독자에서 필자로 바뀐 언론인·언론학자 등 ‘필자 독자’는 컴북스가 가장 신경 쓰는 제1의 고객.
“대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회사 시스템이라든가, 운영 노하우, 그리고 마케팅을 직접 겪어본 게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출판사엔 주먹구구가 없습니다. 모든 작업 공정은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을 통해 공개되고, 사장은 물론 각 팀·팀원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수시로 이루어집니다.”
회사 내에서 창출되는 지식과 노하우를 28명 전 직원이 공유한다. 지식경영을 실천하는 셈. 컴북스 창업사원인 엄진섭 1팀장은 “능력 발휘에 이처럼 좋은 직장은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큰 출판사처럼 효자종목이 있는지 물었다.
“컴북스는 이렇다할 베스트셀러가 없습니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학의 원조 마셜 맥루한의 국내 출판물은 모두 컴북스에서 나왔고, 남들이 관심을 갖기 훨씬 전인 1994년 ‘디지털이다-정보고속도로에서 행복해지기 위한 안내서’를 번역 출판하고 저자인 니콜라스 네그로폰테를 서울에 초청해 강연회를 갖는 등 디지털시대 개막을 알린 게 우리입니다.”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을 고수하는 컴북스는 올해도 벌써 200권 이상을 기획해 놓았다. 박 사장은 “한국 출판계가 발전하려면 무엇보다 전문성이 중요하다”면서 “컴북스는 미디어 문화 지식생산 기지로서의 기반을 더욱 확고히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출처 :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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