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노종 SK경영경제연구소 고문
"나는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뒤로는 가지 않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대통령으로 칭송받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남긴 말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다른 길을 걸어보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가 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삶이 부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 역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30년간 홍보맨의 외길을 걸어온 이노종 SK경영경제연구소 고문(57)의 삶에서는 장인 정신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홍보의 '살아있는 역사'인 그를 만났다.
# 한 길
이노종 고문은 지난해 12월 12일 한국CEO연구포럼과 머니투데이가 공동 주최한 `한국CEO 그랑프리` 시상식에서 '최고 커뮤니케이션 경영자(CCO)'상을 수상했다. 기업 PR의 개념조차 확실치 않았던 1970년대부터 `장학퀴즈'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들의 면학과 인재 양성에 주력했으며 이를 통해 `캠페인성 기업 광고'라는 새로운 전략 분야를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 돌아보면 홍보인의 길을 묵묵히 걸을 수 있었던 데 대해 감사한 마음입니다. 특히 고 최종현 회장을 만난 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고문은 1974년 선경합섬(현 SK케미칼) 홍보실에 입사한 이래 2004년 3월 SK아카데미 원장으로 홍보 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30년 이상 SK그룹 홍보를 이끌었다. 93년 SK(주) 홍보실장을 거쳐 2001년 구조조정본부 홍보실장을 지내며 고 최종현 회장을 비롯해 손길승 회장, 최태원 회장 등 최고경영진을 최고 홍보책임자로서 보좌했다. 경영진의 일원으로서 홍보전략을 수립하는 CCO의 자리에 까지 오른 사람으로서 순수하게 홍보인의 외길을 걸었던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입사 당시 섬유회사로서 중견기업이던 에스케이가 화학과 정유, 정보통신으로 사업구조를 발전시켜 국내 3대 그룹대열에 올라서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습니다. 신입사원 시절 최종현 회장이 오늘날의 SK그룹에 대한 밑그림을 그릴 때부터 그 분의 경영철학을 옆에서 지켜본 것이죠. 최종현 회장님은 그래서 제게는 단순히 회장님이 아니라 인생의 스승과 같은 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고문의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없이 `장학퀴즈`를 꼽았다. "프로그램을 시작할 당시 선경은 10위권에머물던 중견기업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방송제작비 일체를 지원하고 장학금을 30년 이상 지원했다는 것은 최고경영자의 철학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단순히 기업 이미지 제고 차원의 사고방식으로는 꿈도 못꾸는 일입니다."
그는 또한 장학퀴즈 프로그램이 중국에 진출할 때의 일화도 들려줬다.
"중국 북경TV 관계자에게 중국에서 장학퀴즈를 하겠다고 했더니 무슨 의도로 이런 방송을 하려고 하느냐고 의심의 눈길을 보내더군요. 심지어 한국에 있는 중국대사관을 통해 SK가 어떤 기업이고 어떻게 한국에서 방송을 해오고 있는지를 문의했을 정도입니다. 나중에 우리의 진의를 받아들일 때에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더군요. SK라는 이름을 장학퀴즈 이름 앞에 쓰게 한 것이죠."
중국에서는 `SK 장웬방` 공익광고에 모델로 등장하면 최고의 스타로 인정받는 공식이 생겼을 정도다.
#새로운 길
이 고문은 지난 2004년 3월 SK아카데미 원장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준비한 끝에 지난해 `기업 투명성과 평판 간의 관계에 대한 연구`로 성균관대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소유구조·이사회 운영 등 6개 요인으로 기업 투명성을 계량하는 지수를 만들고, 미국에서 통용되는 기업평판 지수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투명한 기업이 평판도 좋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했다.
"총체적으로 기업 평판을 높이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기업 투명성까지 향상시키고, 이를 알리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수립이 필요합니다. 지난 세월 홍보 분야에서 쌓은 전문성을 이제는 후배들에게 전수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현재 성대 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 고문에게 더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물었다. "젊은 시절 해외 근무 경험을 쌓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해외 출장은 많이 다녔지만 한 곳에 머물면서 글로벌 감각을 더 익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1년 정도 미국에서 교환교수로 다녀올 생각입니다. 나이 60이 다 돼서 공부하는 것이 고생이 되지 않겠냐고 주위에서 말리지만, 박사학위 받을 때 공부한 것도 마찬가지로 고생한 만큼 보람은 있지 않겠습니까?"
이 고문은 이어 더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기업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경영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싶습니다. 가칭`기업평판연구소`를 설립하고 싶은 꿈이 그것입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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