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 넓혀 신성장 동력 창출…보험 시장에서도 돌풍 예고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리는 방법은 앞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
1995년 박현주(49) 회장이 나이 38세 때 가슴에 새긴 카네기 어록이다. 미래에셋그룹을 창립하기 딱 2년 전이다. 당시 동원증권 지점장이던 그는 반도체 경기가 호황기에 접어들 것을 예감하고 고객들을 설득, 10만원 수준이던 삼성전자 주식 500억원어치를 샀다.
그러나 95년은 거품 경제가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종합주가지수가 1000을 돌파한 직후 주가 전광판의 삼성전자 주가는 계속 꺾였다.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지만 절망에 오래 머무를 시간이 없었다. 박 회장은 고객들을 다시 설득했다. 반도체에 대한 믿음을 전도하듯 설파했다.
실패하면 시장을 떠난다는 각오로 고객들을 만나고 다녔다. 마침내 주가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결국 고객들은 삼성전자 주식을 15만원에 처분할 수 있었다. 그해 종합주가지수는 10%가 넘게 떨어졌지만 ‘박현주의 고객’ 들은 50%의 수익을 올렸다.
그는 훗날 이날을 이렇게 회고했다. 서른여덟의 위기가 없었다면 미래에셋의 설립은 불가능했거나 최소한 몇 년은 늦어졌을 거라고. 박 회장은 97년 미래에셋캐피탈 설립을 시작으로 금융계에 ‘박현주’라는 명함을 내놓았다. 이후 신화의 연속이었다.
그것이 올해로 꼭 10년이 된다. 98년 12월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 설립, 99년 증권사 설립 후 파격적인 위탁 수수료를 제시하면서 그는 금융업계에 혁신을 일으켰다.
99년 500억원 규모로 출범한 ‘박현주 1호’ 펀드는 발매 2시간30분 만에 마감됐다. 이때 연평균 수익률은 90%를 웃돌았다.
지난해 11월 미래에셋투신과 미래에셋자산이 ‘미래에셋자산운용’이란 사명 아래 합병, 이 통합 운용사의 현재 펀드 수탁액은 20조1120억원에 달한다. 2006년 새로 증가한 20조원의 주식형 펀드 중 40%에 육박하는 9조원이 미래에셋 주식형 펀드 몫이었다.
미래에셋 성공 신화의 바탕엔 박 회장의 소신이 깔려 있다. “금융업은 빛이 있을 때 항상 안 보이는 어둠을 생각해야 한다. 나는 남들이 쇼크에 빠져 있을 때 너머에 있는 본질을 보기 위해 애썼다.”
2007년은 미래에셋 설립 10년이 되는 해다. 박 회장의 올해 꿈은 ‘친디아 공략’이다. 세계 인구의 절반이 있는 인도와 중국 시장 진출로 새로운 성장 모델을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박 회장은 지난해에 1년 중 절반을 해외에서 생활하며 해외 비즈니스를 진두지휘했다.
그는 이미 2001년 “미래에셋의 미래는 세계 시장에 있다”고 선언, 하버드 MBA 유학길에 오르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한 본격적 행보에 들어갔다. 당시 네트워크를 완성하는 데 3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그 약속은 앞당겨 진행됐다.
2003년 홍콩 법인을 설립한 후 2004년 싱가포르, 2006년 베트남 법인을 설립했다. 홍콩과 싱가포르엔 이미 60여 명의 미래에셋맨이 활동 중이다. 미래에셋 홍콩 자산운용의 경우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커버할 글로벌 리서치센터도 설립했다.
싱가포르 자산운용과 홍콩 자산운용은 현재 아시아 12개 나라에 투자하는 아시아·태평양 펀드를 비롯해 인디아펀드·차이나펀드 등 총 20여 개 펀드에 3조1000억원의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올해 인도·중국에 법인을 설립하면 동남아 재편에 이어 친디아 시장까지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된다.
“3년 안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요 국가에 자산 운용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대표하는 투자전문그룹으로 성장해 이를 발판으로 세계시장으로 진출하겠다”는 것이 박 회장의 비전이다.
2008년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미래에셋이 어떤 빅 카드를 내놓을지도 지켜볼 일이다. 박 회장은 “장기적으로 한국 자본 시장은 펀드 중심으로 갈 것”이라며 “자본 시장의 핵심은 증시며, 은행도 간접금융도 시장의 중심이 될 수는 없다”고 전망한 바 있다. 그의 예측대로 2008년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대형 자산운용업계인 미래에셋의 업무 영역은 대폭 확대될 것이다.
2005년 6월 SK생명 인수 후 초고속 확장 경영을 하고 있는 미래에셋생명의 올해 행보도 관심의 대상이다. 미래에셋생명은 설계사 대량 스카우트, 외국계 보험사를 능가한 변액보험 마케팅, 펀드 판매 등 기존 업계 관행을 깼다.
변액보험과 퇴직연금 등 자산관리 능력이 중요한 투자형 보험상품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 지난해 11월 91억원의 초회 보험료(신규 가입자의 첫 보험료)를 기록, ING생명(87억원)을 누르고 업계 4위로 뛰어올랐다. 영업의 세포 조직인 설계사 수는 2005년 5월 4452명에서 지난해 11월 말 6500명으로 늘어났다.
보험 판매 수당이 높은 것도 아닌데 ‘선수’들이 미래에셋으로 자원하는 ‘쏠림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증권시장에서 일으킨 박현주 돌풍을 보험 업계에서도 이어갈지 주목거리다.
국내 최초의 본격 자산운용사 설립에서 시작해 뮤추얼펀드, 적립식펀드, 부동산펀드, 해외펀드, 투자자 교육 등 ‘최초’ 행진을 해 온 박 회장의 올해 ‘최초’의 승부수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출처 :중앙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