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이학수 전략기획실 부회장과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투톱 체제’를 유지하고 당초 예상보다 소폭의 인사를 단행한 것은 ‘파격’보다는 ‘안정’ 속에서 개혁을 추진하려는 이건희 회장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이 회장은 당초 지난 11일로 예정된 인사를 한주 늦춰가며 심사숙고한 끝에 현 경영진을 ‘수술’하기보다는 ‘신뢰와 안정’ 속에서 기존의 체제유지를 선택했다.
삼성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전략기획실의 경우 이학수 부회장은 물론 김인주 사장 등 수뇌부들이 제자리를 지켰으며 기획홍보 팀장인 이순동 부사장이 전략기획실장 보좌역(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전력기획실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이에 따라 삼성 전략기획실은 물론 삼성전자 등 전 계열사의 조직력이 예전보다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안정’ 속 ‘개혁’ 추진한다
이번 인사에서 ‘이학수윤종용’ 투톱 체제가 유지된 것은 이 회장의 의중을 가장 잘 파악하고 삼성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인물로 다른 카드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 98년부터 삼성구조본과 회장실, 전략기획실을 맡으며 그룹 살림을 챙겨왔다. 이 회장이 공석일 때에도 그룹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왔다는 평을 받고 있다.
윤 부회장은 2000년부터 삼성그룹 핵심계열사인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으며 삼성전자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
이·윤 부회장은 10여년 간 이건희 회장의 수족같은 역할을 하며 오늘의 삼성그룹을 만들었다. 10여년 간 손발을 맞춘 두 부회장에게 삼성의 변화를 이끌어달라는 주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이 ‘안정’을 택한 또다른 이유는 대내외 변수에서 찾을 수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환율, 고유가 등으로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58조9700억원의 매출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주요 사업 부문에서 세계 1위를 지켜냈다. 이런 와중에 체제를 급격히 변화시키는 ‘리스크’를 선택할 필요가 없었다.
또 이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상무가 그룹을 장악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당분간 이 부회장이 그룹 살림을 맡고 이재용 상무가 사장으로 승진할 때까지 이 부회장의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에 체제유지를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외적으론 대선 정국이란 변수도 있다. 올해는 정권 교체기로 외풍을 피하고 싶은 게 삼성의 바람이다. 대선 정국에선 어떤 불똥이 튈지 모른다. 이 때문에도 삼성의 바람막이 역할을 해 왔던 이 부회장의 역할이 필요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의 ‘차세대 리더’로 부상
이번 인사에서 4명의 승진자와 8명의 전보자 등 12명의 최고경영자들이 자리를 바꾸면서 향후 삼성을 이끌 핵심인재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우선 약 7년 동안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을 이끌어 오면서 ‘애니콜 신화’로 휴대폰 사업을 그룹의 대표적인 일등 사업으로 성장시킨 이기태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삼성전자 기술총괄로 자리를 옮긴 것은 ‘새로운 리더’의 부상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앞으로 반도체, 무선통신의 뒤를 이어 삼성전자의 미래성장을 견인하게 될 신 수종사업을 발굴하는 개발 분야를 총괄해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이 ‘제 2의 신화창조’를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 최지성 사장을 정보통신총괄 사장으로 내정, 복합적 창조력을 요구하는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를 맞아 반도체, TV 분야에서의 성공경험을 정보통신 분야에 접목시킴으로써 ‘21세기 디지털 융복합화 시대’를 지속적으로 리드해 나갈 수 있도록 했다.
최 사장은 삼성물산에 입사해 삼성전자 반도체 판매사업부장을 거쳐 2003년부터 디지털미디어총괄을 맡아 ‘디지털 르네상스’를 선포, 삼성전자를 TV사업 진출 34년 만에 전 세계 매출 1위로 성장시킨 주인공이다. 이 때문에 최 사장의 향후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 사장이 맡았던 디지털미디어총괄 후임에는 반도체 메모리 공정개발 분야에서 약 10여년 간을 근무하다 2001년부터 프린트사업부로 자리를 옮겨 정보기술(IT)사업 경쟁력 제고에 기여한 박종우 사장이 자리를 잡았다. 박사장은 앞으로 디지털 개혁 속도를 더욱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실적이 부진했던 삼성전자 생활가전총괄 이현봉 사장은 인도 등 서남아 지역에서 ‘제2의 삼성 실현’을 목표로 사업전략을 보다 내실있게 전개할 서남아총괄 사장으로 이동했다. 또 삼성전자 반도체 제조 분야의 산 증인으로서 ‘반도체제조의 달인’으로 불리며 세계 최고의 제조효율을 이끌어 온 반도체 메모리 제조담당 김재욱 사장은 삼성전자 기술총괄 제조기술담당 사장으로 자리잡았다. 김 사장은 제조 효율성 면에서 세계 정상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 지난 80년 입사 이래 약 26년 간 삼성전자와 그룹에서 홍보업무를 전담해 오면서 삼성의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공헌한 삼성전략기획실 이순동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향후 브랜드 관리뿐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에 중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와 함께 삼성증권, 삼성물산 유통 등을 거쳐 현재 호텔신라 면세유통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성영목 부사장은 호텔신라 사장으로 승진, 향후 호텔신라의 경영혁신과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본격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지난 76년 제일기획에 공채로 입사한 이래 광고기획, 영업, 광고 분야에서 전문성이 뛰어난 김낙회 부사장도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글로벌 경쟁력’ 제고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안정 속 개혁을 화두로 이 회장의 창조경영을 실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인사로 보인다”며 “삼성이 향후 세계 무대에서 정상을 질주할 수 있는 인적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한 인사”라고 평가했다.
/pch7850@fnnews.com 박찬흥기자
출처 : 파이낸셜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