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투수에서 성장 견인차로
LG생활건강엔 결재판이 없다. 사장실에 들어갈 때 예상질문을 뽑아 '컨닝페이퍼'를 만들던 관행도 사라졌다. 꼭 필요한 경우 보고서는 단 한 장. 넥타이를 매거나 웃옷을 걸칠 필요도 없다. 사장이 직접 나서 "보고를 위한 보고는 받지 않겠다"고 공언한 때문이다.
차석용 사장(사진)이 취임 2년만에 LG생활건강(113,500원 1,500 +1.3%)을 180도 바꿔놨다. 그는 지난 2005년 매출 마이너스 성장으로 허덕이던 회사에 구원투수로 투입됐다.
차 사장은 먼저 기업체질 개선에 나섰다. 강제퇴직을 통한 군살빼기나 실적을 맞추기 위한 밀어내기는 고려 밖이었다. '일과 삶의 균형' '개인의 성장 기회'를 강조하는 인재양성용 구조조정이었다.
직원들은 부서 특성과 개인 사정에 따라 오전9시~오후6시, 오전8시~오후5시로 근무시간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정기적으로 열던 회의도 없앴다. 필요한 경우 회의는 1시간 이내로 제한했다.
야근문화도 사라졌다. 차 사장은 아침 7시 반쯤 출근해 5시 반이면 어김없이 퇴근한다. 그는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다고 안 풀리던 문제가 풀리는 게 아니다"며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에 힘쓰라"고 말해 왔다.
회사가 변하면서 직원들의 생활도 바뀌기 시작했다. 8시~5시 근무를 선택한 문선화 IR팀 파트장은 "예전엔 퇴근길 교통체증 때문에 분당 집에 8시경 도착했다"며 "이젠 6시 반쯤 도착해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차 사장은 체질 개선을 바탕으로 제품과 유통망에도 손을 댔다. 레뗌 뜨레아 헤르시나 등 부실브랜드를 단종했다. 화장품 직접판매사업도 정리했다. 모두 품만 많이 들고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영업 일선엔 입김이 센 유통업체에 끌려다니지 말 것을 주문했다. 좋은 제품을 만들면 더 많은 소비자들이 찾게 되고, 유통업체들이 결국 받아들이게 될 것이란 논리였다. 지금도 LG생활건강 제품은 대형마트에서 끼워팔기나 할인 이벤트를 열지 않는다.
이 같은 노력은 실적 개선으로 이어졌다. 2005년 매출액은 9679억원, 지난해는 1조원대로 추정된다. 2002년 1조951억원에서 2004년 9526억원 매출을 기록, 마이너스 성장에 시달렸으나 이제 옛 추억이 됐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10%선. 회사 관계자는 "제조업에서 기껏 5% 올리면 선방했다고들 한다"며 "10%는 정말 대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간 동안 LG생건의 주가는 수직 상승했다. 9일 LG생건 주가는 11만3500원. 차석용 사장이 취임했던 지난 2005년 1월말의 2만8000원선에 비해 무려 400% 넘게 올랐다. 2년에 걸쳐 매년 두 배씩 오른 셈이다.
차 사장은 그러나 여전히 또다른 숙제에 매달리고 있다. 멀티브랜드숍 '뷰티플렉스'는 아모레퍼시픽의 '휴플레이스'나 미샤 더페이스샵 등과 함께 힘겨운 시장쟁탈전을 벌이고 있지만 업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치고 나오지 못한 상황이다. 지난 7월 내놓은 녹차 '루'도 시장 반응은 아직 싸늘하다.
이에 대해 회사 관계자는 "길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차 사장은 '경영은 한 방이 아니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2006년이 리노베이션(개선)의 해였다면 2007년은 이노베이션(혁신)의 해로 삼아 꾸준히 경영혁신활동을 펼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출처 : 머니투데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