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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삼성 “창조경영은 경영자와 인재의 팀플레이”2006-12-28
작성자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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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영 13년 진화의 산물 … 고객 신뢰 얻는 초일류기업이 종착지

문화대혁명이 중국을 재앙으로 몰아갔다면, 덩샤오핑은 1980년 개혁개방을 선언하며 회생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그에 따라 1984년 남부 해안 도시가 경제특구로 변했고 이후 중국경제는 몰라보게 성장했다.
8년 뒤인 1994년 덩샤오핑은 경제특구를 순방하고 베이징으로 돌아와서 소회를 발표했으니 이것이 유명한 남순강화다. 이 글에서 덩샤오핑은 “중국의 강점은 국가 역량을 집중해 큰 일을 펼칠 수 있는 제도”라는 주목할 만한 명제를 제시했다. 오랜 시간 중국의 앞날을 고민한 끝에, 다른 모든 면에서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없지만 사회주의 제도에 고유한 조직 역량만은 살아 있으니 이것을 활용해 일어서려고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리더십은 비전과 모범에서
이건희 회장은 1988년 그룹의 지휘봉을 잡자마자 제2창업을 선언했지만 몇해를 넘겨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자 초조감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날 이 회장은 경영진을 모아놓고 외국 초일류기업에 맞설 삼성의 강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당시의 삼성으로는 인재, 관리능력, 기술 개발, 무엇 하나 손꼽을 것이 없었다.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 돌아온 이 회장의 답은 “삼성의 강점은 집합하라면 즉시 다 모일 수 있는 조직의 힘”이었다. 그는 이처럼 “한 방향으로 나가는 조직의 힘”에 의지해 그룹을 일으키고자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창조적 인재가 나오도록 시스템을 통째로 바꿔야 미래가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이와 같은 주장을 199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펼쳤다. 신경영 선언을 대표하는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통째로 바꾸자”는 말이 그것이다.
당시 그룹 매출이 지지부진한 것을 고민하는 이 회장에게 비서가 ‘혁명적인 방법`을 조언했다. 이 회장은 벼락같이 화를 내며 “모든 것을 다 부정하는 것은 방법이 아니다”라 답했다. 후일 사장이 된 이 비서에게 이 회장은 숙제를 냈다. 혁신, 개혁, 혁명이 모두 다른데 왜 혁자가 들어가는지 풀어보라고. 훗날 이 사장이 얻은 답은 “revolution(혁명)이란 말에서 ‘r`을 빼면 evolution(진화)”이라며 “신경영으로 삼성은 진화를 시작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혁(革)은 원래 짐승의 가죽이며 사람들은 벗겨 각자의 용도에 맞게 사용한다. 새롭게 할 수도, 기존 방식을 약간 바꿀 수도, 아예 폐기할 수도 있다. 영어에서 revolution은 돌려서 뒤집는다는 revolve에서 나왔지만 evolution은 서서히 발전시킨다는 evolve에서 나왔다. 확 엎어버리기는 쉽지만 다시 시작하기는 어렵다. 서시히 발전시키기는 어렵지만 제대로 간다면 두고두고 발전할 수 있다. 그래서 혁명보다 개혁, 혁신이 어렵지만 취할 길이라고 이 회장은 생각했던 듯하다.

준비한 자만이 도약한다
삼성전자가 매출 8조의 국내 회사에서 올해 매출 60조를 넘는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해 온 과정에서 경영자의 리더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수많은 인재가 움직이고 수만명이 일하는 기업에서 그러한 리더십은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자세가 아니고서는 형성될 수 없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솔선수범한 모범이 삼성 글로벌 리더십의 밑거름이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의 판단 아래, 삼성은 신경영 이전까지 변화를 위한 준비에 몰두했다. 신경영이 시작되면서 급변한 회사는 그 역동적인 에너지를 도약을 위한 준비에 쏟아부었다. 이를 대표하는 것이 90년대 후반 ‘선택과 집중`으로 불렸던 구조조정 과정이다. 당시 이 회장은 도약을 위해서는 오랜 준비가 필요하다며 일본의 히노키 나무로 이를 설명했다.
“히노키 나무는 1년에 겨우 25cm 밖에 자라지 않아 다 자라려면 약 100년이 걸린다다. 그러나 오랜 기다림의 시간은 그만한 값을 한다. 그윽한 향과 목질의 견고성은 고급 가구를 만드는 데 이상적이어서 장인들은 오래 전부터 그 가치를 높게 인정하고 있다.
똑같이 100년을 키워도 다른 정원수는 기껏해야 몇 백만 원을 받는데 히노키는 2~3억 원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나무를 키우겠는가.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때에도 어떤 나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수익 차이가 나듯이, 기업도 저성장·고기술의 시대인 21세기에 살아 남기 위해서는 히노키와 같은 고부가가치형 수종 사업을 보유해야 한다.”
삼성은 먼저 면밀한 검토 끝에 반도체와 휴대폰이라는 ‘히노키 나무’를 선택했고, 적기가 오자 과감한 투자로 경쟁자를 따돌리는 데 성공했다. 1995년 세계 최초로 CDMA를 상용화시키는 등 일단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삼성의 질주는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리던 노키아와 모토롤라도, 인텔과 소니도 꺾을 수 없었다.

위기 없이 성공 없다
올릴라 회장 취임이래 휴대폰으로 급성장하던 노키아가 한 때 좌절을 경험한 적이 있다. 1990년대 초 유럽시장에 최초의 디지털 휴대전화기를 내놓아 대박을 터뜨린 노키아는 여세를 몰아 1995년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양으로 뛰어든 노키아지만 소비자들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미국인들이 아직 디지털 전화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판단을 내린 때는 그해 말, 노키아는 막대한 재고물량은 안고 말았다. 그것이 더 문제였다. 생산량을 늘리면서 반도체 가격이 급등하자 수급에 문제가 생겨 미처 사용되지 못한 부품들이 3~4개월 치나 쌓였다. 노키아가 물류 시스템을 개선하여 회복세를 보인 것은 그로부터 2년이 흐른 1997년이었다.
재고사태가 경영진이 현장을 돌보지 않은 데서 비롯했다고 판단한 올릴라 회장은 다수의 비상조치를 취했다. 그중 하나가 ‘로테이션’이라 불리는 것으로, 경영진이 주기적으로 직책을 바꾸어가며 여러 부서에서 일하도록 의무화시킨 것이다. “지도 인력은 항상 임무를 바꾸어 건전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올릴라 회장의 설명이다.
노키아가 미국에 진출하던 해에 삼성도 이건희 회장의 결단을 앞두고 있었다. 당시 삼성 휴대폰은 노키아나 모토롤라의 틈바구니에 놓인 채 국내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마땅한 기술이 없어 다른 회사 제품을 사다가 뜯었다 붙이기를 반복하면서 기본부터 익혀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마침내 세상에 나온 휴대폰은 조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휴대폰 사업은 역시 무리라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핵심 연구 인력의 75%가 다른 계열사로 방출됐다.” 삼성전자 이기태 사장의 회고다.
그해 3월 이 회장의 지시에 따라 회사가 생산한 15만대의 휴대폰이 모두 경북 구미공장에서 불에 타 잿더미가 됐다. 유명한 애니콜 화형식이다.
지금은 어떤가? 유럽이건 아시아건 기자가 가본 모든 나라에서 애니콜은 ‘명품`으로 통하고 있었다. 식당에 앉은 현지 아가씨가 최신 애니콜을 탁자 중앙에 떡하니 놔두는 광경은 흔하게 접할 수 있다. 그밖에도 자신이 통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애니콜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펼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해외 인터넷 블로그에서는 애니콜의 디자인과 성능에 관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화제로 떠오른다. 선진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애니콜 앞에서는 자존심을 접는다.
애니콜 소각이 삼성의 위기감을 극대화시켰고, 그로써 변화의 바람이 불었던 탓이다. 그 흔한 ‘네 탓이요` 풍조도 그렇게해서 사라졌다는 것이 임원들의 설명이다. 이에 관해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은 “변화가 실패하는 것은 기득권이 바뀌지 않으려고 하는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이라면서 “기득권을 포기하고 변화해보니 좋았고 그걸 반복하니 개혁이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일류기업 = 인재+리더십+고객
“13억 인도인의 아버지 간디는 아무런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이 시대에 리더십이란 바로 도덕적이고 영감 있는 영향력을 의미한다.” 스티븐 코비 박사의 말이다.
삼성은 ‘도덕적이고 영감 있는 영향력`을 얻기 위해 국내외 곳곳에서 문화 마케팅을 펼쳐 왔다. 해외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례가 볼쇼이발레단과 맺은 인연. 1991년 소련이 해체된 뒤 남은 러시아마저 1998년 국가부도 사태에 빠지자 국고 보조를 잃은 볼쇼이 발레단은 유지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다. 그 때 동방의 이방인인 삼성전자가 후원자를 자처했다. 그뒤 삼성은 매년 볼쇼이 발레단의 재정을 지원했고,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 때 삼성보다 많은 후원금을 내겠다는 한 가전업체의 제안을 볼쇼이극단이 일언지하에 거절한 일은 둘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일화다.
경영자는 기업을 이끌지만 동시에 인재를 이끌어야 한다. 인재에 대한 경영자의 책무를 삼성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 이건희 회장은 특유의 현지 담화를 통해 답한 바 있다. 지난달 30일 이 회장은 런던으로 날아가 삼성이 후원하고 있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소속 첼시FC 구단의 홈구장을 방문해 축구경기를 관람했다. 관람이 끝나고 이 회장은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창조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프리미어리그가 곧 창조적인 경영”이라고 말했다.
그는 “항상 경기장이 만원사례인 첼시의 인기비결은 무엇인가”라고 반문한 뒤 첼시구단이 첫째, 포지션별로 세계 최고의 선수를 확보하고 둘째, 훌륭한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를 영입했으며 셋째, 구단의 아낌없는 지원이 뒷받침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는 경영진을 향해 “기업 경영에도 우수 인력들의 창의력 및 탁월한 선견과 리더십을 갖춘 경영진,고객의 신뢰라는 3박자를 갖춰야 일류기업이 될 수 있다”고 주문했다.
미국의 유명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은 뛰어난 지도자들은 보통의 지능 외에 ‘감성지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혁명이 진전되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인간형이 제값을 받게 되며, 그러한 사람이 조직을 성공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삼성은 지난 27일 정기 사장단 회의인 수요회를 열고, 영상물로 제작된 올해의 10대 뉴스를 관람했다. 삼성 임직원들의 설문조사로 선정된 이 뉴스 가운데 ‘삼성, 세계 톱브랜드로 자리매겼다”는 것이 일등을 차지했다. 임직원들이 삼성의 세계적 지위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만큼 회사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도 높다고 할 것이다.
올해는 해외의 많은 조사기관이 삼성을 세계 톱브랜드로 선정, 발표했다. 인터브랜드 조사는 삼성의 브랜드 가치를 162억 달러, 세계 20위라고 발표했다. 중국 경영월간지인 ‘환구기업가’`는 가장 인지도가 높은 외자 브랜드로 삼성을 선정했다. 포츈지는 글로벌 올스타 기업 중 삼성을 27위에 올렸다. 이러한 위상에 걸맞게 창조경영에 감성지능을 보태 사회와 고객의 더 큰 신뢰를 얻는 것이, 초일류기업 삼성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책무일 것이다.

출처 : 내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