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엘리트 1인당 직장 인맥 70명 → 9명
본지 취재팀이 엘리트 3만1800명의 직장 연줄망을 분석한 결과, 엘리트 한 명이 직장 경력으로 얻는 인맥 수는 세대가 젊어질수록 급속히 줄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번 핵심 엘리트가 되면 정치.행정의 주요 요직을 독차지하며 연줄을 만들던 구세대의 구조가 해체됐음을 의미한다. 세대별 평균 직장 연줄 수는 1950년 이전생(주로 6.3세대)이 평균 70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50년대 출생의 직연은 12명으로 떨어졌고, 386세대는 9명에 불과했다. 서울대 장덕진(사회학) 교수는 "50년 이전생은 20~30대에 엘리트로 올라선 뒤 평생 여러 요직을 독점했지만 뒷세대부터 엘리트가 한정된 자리를 독점하는 구조가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직업별 최고 마당발은 교육계 - 박세일.권영성 교수
대중문화 - 이순재.최불암씨
스포츠계 - 김응룡.김주성씨
정치 - 허경만.박준규 전 의원
◆ "공직 거쳐야 학계 마당발"
교육인 중 직연 1위는 서울대 박세일(국제대학원) 교수. 한국산업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 서울대 법대 교수,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사회복지수석, 17대 국회의원 등 그가 몸담은 직장만 일곱 곳에 이른다. 전공도 경제학과 법학 두 가지. 박 교수는 "다양한 전공 때문에 다양한 일을 했고, 저절로 인맥이 넓어진 것 같다"며 "교수들이 현실에 많이 참여할수록 나라가 발전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교육인 중 직연 2위는 원로 헌법학자인 권영성 한림대 석좌교수. 그는 학계에만 머물렀지만 영남대.괴팅겐대(독일).중앙대.서울대 교수 등을 거쳤다. 직연 3위는 서울대병원장.영등포시립병원장.한림대의료원장 등 다양한 경력을 거친 노관택(75) 전 서울의대 교수였다. 현 정권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내고 복귀한 서울대 윤영관(외교학과) 교수와 18대 과학기술부 장관을 역임한 권숙일(물리학) 전 서울대 교수도 넓은 직장 연줄을 보였다.
◆ 대중문화계'대발이 아버지' 최고
한때 금배지를 달았던 이순재(70).최불암(65).강부자(64)씨 등이 수위에 올랐다. 오랜 연기생활로 쌓인 연예계에서의 인맥에 정치계 인맥이 보태졌기 때문이다. 49년 동안 TV 연기자로 활동해 온 이씨는 연기자협회 초대.2대.12대 회장을 지낸 연예계의 큰형님. 대쪽 같은 이미지를 앞세워 14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방송.연예계와 정계의 차이에 대해 "정치는 처음부터 패를 갈라서 하는 건데, 연기자는 경쟁하다가도 작품을 함께할 때는 협력해야 한다. 공존한다는 의식이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 1000명의 엘리트와 직연을 맺고 있는 이씨는 연기자로 김성옥씨를, 정치인으로는 이상수 전 의원과 김덕규 의원을 가까운 이들로 꼽았다.
방송.연극.영화계에서 발이 넓기로 유명한 강부자씨는 연극 무대와 브라운관, 라디오 등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해 오다 92년 통일국민당에 입당, 14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본격적으로 인맥을 넓혔다.
◆ 선수에서 지도자로, CEO로
스포츠인 중에서는 선수 생활 뒤 지도자가 된 야구인.축구인이 직장 연줄망을 자랑했다. 삼성라이온즈의 김응룡 대표이사가 대표적. 61년 선수 생활을 시작해 77년 국가대표 감독, 82년 해태 타이거즈 감독 등을 지냈다. 최근에는 감독직을 선동열 감독에게 물려주고 프로구단 경영자로 새로운 직장인생을 시작했다.
프로축구 선수 출신의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들이 상위에 올랐다. '그라운드의 야생마' 김주성(39)씨는 축구선수 출신 중 직장 연줄이 가장 많았다. 대우 로얄즈 선수로 뛰며 월드컵에 세 번 출장했던 그는 현재 대한축구협회 이사로, MBC 축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축구협회 이사로 있는 '리베로' 홍명보(36)씨는 오랜 선수생활을 바탕으로 축구선수 직연 상위에 올랐다. 전 월드컵국가대표팀 감독 히딩크도 이 협회 기술고문으로서 20여 명의 국내 인사와 관계를 맺고 있다.
◆ "국회의원은 모든 직종의 용광로"
정치인 한 명이 가진 직장 인맥은 전체 엘리트 평균의 18배. 정치인이 되기 전 이미 많은 분야를 거친 팔방미인이 많은 데다, 이후에도 정부 부처와 기업, 각종 사회단체에 진출해 경력을 추가하기 때문이다. 마당발 정치인 중에서도 상위 정치인은 허경만(67) 전 전남지사, 박준규(80).이만섭(73) 전 국회의장이다. 이들 셋 모두 각계에 1300명 이상의 직장 연줄을 갖고 있다. 각각 검사.서울대 교수.동아일보 기자라는 전직을 거쳤고, 국회에서만 작게는 5선(허경만), 많게는 9선 (박준규)의 관록을 자랑한다. 국회의원 인맥만 따져도 1000명이 쉽게 넘는 것이다.
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국회의원.정무직 장관 등은 소수정예의 집단이라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 탄탄한 네트워크를 구성했던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며 "이들이 다시 서로 연결망을 구성하니 직연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1인당 직장 인맥, 출신 대학별로 살펴보니
고려대 51명 … 서울대 38명
직장 인맥은 고려대 출신이 서울대 출신 엘리트보다 넓은 것으로 나타났다. 취재팀이 엘리트 3만1800명의 출신 대학별 평균 직연(연결된 직장동료의 수)을 분석한 결과 고려대 출신은 평균 51명의 엘리트와 직장동료로 연결돼 서울대(38명).연세대(34명)보다 많았다.
전체 엘리트 중 고려대 출신은 모두 2874명, 서울대 출신(1만 528명)에 비해 3분의 1도 안 되지만 한 명이 직장 경력을 통해 동원할 수 있는 파워가 큰 것이다.
실제로 고려대 출신 엘리트는 이른바 힘있고 발넓은 직장에 많이 진출해 있다. 직종별로 법조인의 13.3%, 정치인의 9.4%, 공무원의 7.0%가 고려대 출신이다. 연세대 출신이 많이 진출한 직종은 의료인(15.4%).교수(8.2%) 등 상대적으로 직장동료 네트워크는 약한 곳이었다.
고려대 출신은 조직생활에 잘 적응한다는 일반적 인식과도 일맥상통하는 결과이다.
고려대 출신 중 가장 직연이 많은 사람은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 신 전 부의장은 부산일보 동남아 특파원을 거쳐 정치에 입문한 뒤 8~11대, 13~15대까지 7선을 하면서 모두 1307명과 직연을 맺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 전 부의장은 "평생의 정치생활에서도 소속 당을 떠나 인간적인 교류를 중시해 왔다"며 "이 때문에 지난 대선 때는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회장을 맡았고, 열린우리당의 386세대 후배들과도 자주 만나고 있다"고 했다.
의사는 연세대, 기업인은 한양대
직업별 두드러진 학교들
본지 분석 대상 엘리트 3만1800명 중 의료인 4명 중 1명은 연세대 출신, 기업인 10명 중 1명은 한양대 출신이었다. 각 대학이 자랑으로 내세우는 단과대학이 실제로 해당 분야에 엘리트를 많이 배출한 것이다.
엘리트들의 직업별 출신대학.고교를 분석한 결과 서울대.경기고 출신이 전 직종에 걸쳐 가장 많지만 2위를 향한 전쟁은 치열했다.
◆ 연세대는 의료인, 한양대는 기업인 강세=전통적으로 공대가 강한 한양대는 기업인(866명, 이하 괄호 안은 사람 수)을 서울대 다음으로 많이 배출했다.
현대건설 이지송 사장, 삼성전자 이상완 사장 등 굵직굵직한 CEO들이 한양대 공대 출신이다.
의료인 중에는 연세대 출신이 464명. 가톨릭대가 272명으로 서울대에 이어 배출 순위 2, 3위를 차지했다. 공무원 중에선 한국방송통신대 출신이 다섯째(51명)로 많아 눈길을 끌었다. 정규대학을 졸업하고도 방통대 과정을 이수한 이들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모든 직종에서 엘리트를 가장 많이 배출한 서울대는 법조인(3396명).교육인(2406명)을 상대적으로 많이 길러냈다. 엘리트 법조인의 55%, 교수의 39%가 서울대 출신이었다.
◆ 금융인 많은 서울고, 법조인 많은 경북고=대학마다 학풍이 다르듯 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법조인.정치인 같은 권력형 엘리트를 많이 배출한 학교와 기업인.의료인 등 실용형 엘리트를 양산한 학교로 갈린다. 전 직종에서 경기고가 1위지만 2, 3위는 다양했다.
서울고는 대표적인 실용형 엘리트의 산실. 의료인(89명)과 기업인(223명)을 둘째로 많이 배출했다. 황영기 우리금융그룹 회장,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 등이 서울고를 나왔다.
경북고는 법조인(223명)과 정치인(27명)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한나라당 강재섭.권오을 의원과 열린우리당 김부겸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경기고 출신 중엔 교수(224명)와 의사(155명)의 비율이 높았다.
◆ 탐사기획팀=이규연(팀장), 정선구.양영유.강민석.김성탁.정효식.민동기.임미진.박수련 기자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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