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옥 컴퓨팅부장
핀란드는 작은 나라다. 국토는 한반도의 1.5배지만 인구는 서울인구에도 한참 못 미치는 520만명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처럼 강대국에 둘러싸여 제대로 기를 펴지 못했다. 600여년은 스웨덴의 일부로, 100년은 러시아의 식민지로 지냈다.
자연환경도 만만치 않다. 나무 외에는 이렇다 할 천연자원이 없고 한 해의 절반은 혹한에 시달려야 한다. 수도 헬싱키만 해도 아직 가을의 기운이 남아있었지만 북쪽 오울루 지방만 해도 끝없이 펼쳐진 눈 덮인 나무숲만이 볼 수 있는 유일한 풍경이었다. 한겨울에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하지만, 핀란드는 국가경쟁력이 세계 1위이고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가 넘는, 잘 사는 나라다. 유럽에서도 북쪽 끝에 있는 이 작은 나라의 성공담을 듣기 위해 최근 몇 년간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이 찾았다. 핀란드의 대표적인 IT클러스터인 오울루와 오타니에미는 아예 견학코스를 유료로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과감한 기술개발 투자와 산학협력, 우수한 인적자원, 부패 없는 선진적 기업 환경이나 안정적인 정치시스템, 여성 대통령을 배출할 만큼 높은 여성의 사회진출 등이 핀란드 성과의 배경으로 꼽히는 요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성공요인은 밖으로 눈을 돌리지 않고는 살기 힘든 핀란드의 환경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수 시장이 작고 노키아 외에는 이렇다 할 글로벌 기업이 없는 핀란드 사람들은 사업 시작부터 아예 유럽 또는 세계 시장을 겨냥한다고 한다. 인맥을 통해 대기업의 하청을 따내 자본을 쉽게 확보하겠다는 생각은 핀란드에선 별로 현실성이 없는 시나리오다.
사업 초기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해 상품의 경쟁력을 갖추고 구체적으로 사업계획을 짜기 때문에 준비에 남다른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성공 확률이 높다. 핀란드의 IT클러스터 운영기관인 오울루테크노폴리스 창업지원센터의 생존율은 무려 90%다. 물론 창업지원센터가 우수한 아이디어를 선정해 효율적으로 지원한 결과겠지만 무엇보다 핀란드 기업들이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겨냥해 시장성을 평가하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국책연구기관인 VTT는 핀란드 정부나 기업의 과제수행에 만족하지 않고 미국 팔로 알토, 중국 상하이, 일본 동경 세계 각국에 사무실을 설치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 국내 SW 산업을 키우려면 전자정부 등 성공적인 프로젝트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정된 국내 시장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고 기업의 수익성과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도 해외 진출이 꼭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어떻게 해외 시장 개척에 효율적으로 우리의 시스템을 바꿔나가느냐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SW를 비롯한 우리 IT 기업들도 처음부터 세계를 겨냥해 상품을 설계하고 계획을 세우는 마인드가 꼭 필요하다.
관상어 중에 코이라는 물고기가 있다. 이 물고기는 작은 어항에 넣어두면 5~8㎝밖에 자라지 않지만 큰 수족관이나 연못에 넣어주면 15~25㎝까지 자라고, 큰 강이나 호수처럼 넓은 자연 속에서는 1m 크기의 물고기가 된다고 한다.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성장하느냐에 따라 평생 작은 물고기로 삶을 마칠 수도 있고 대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IT 기업들이 지금은 비록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환경을 어항으로만 생각하고 있어서인지 모른다. 어항에 만족하지 않고 꾸준히 큰 강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한다면 머지않아 우리도 핀란드 못지 않은 대어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출처 : 디지털타임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