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車그룹만 “올해보다 더 투자할 것”
1弗 900~940원 전망… 유가 불안 여전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4% 이하로 낮춰 잡는 전망이 잇달아 나오고 있는 가운데 국내 대표 기업들도 내년 사업 계획을 지극히 보수적으로 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들은 지난 4월 이후 하락하고 있는 경기가 내년에는 더욱 나빠질 것으로 보고 단단히 허리띠를 졸라맬 준비를 하고 있다.
본지 산업부가 2일 삼성·LG·현대차·SK·롯데 등 국내 5대 그룹 전략기획 담당 임원들을 상대로 ‘내년도 사업계획’을 조사한 결과, 기업들은 환율·금리·유가(油價) 등 핵심 요인들에 대해 ‘돌 다리도 두들겨 건너간다’ 식의 신중한 전망을 하고 있다.
◆ 환율과 유가는 여전히 암담=내년 1달러당 원화 환율은 900원에서 940원 선으로 잡고 있었다. 삼성그룹은 925원 선에서 사업계획을 짜고 있지만 “900원 대에서 탄력적으로 경영계획을 적용할 방침”이라고 밝혔고, 현대자동차그룹은 900원에서 920원 사이에서 움직일 것으로 내다봤다. LG그룹은 910원을 기준 환율로 사업 계획을 짜되, LG전자 같은 수출 비중이 높은 계열사는 좀더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유가(油價) 안정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불안심리는 진정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 전문 기업인 SK그룹조차 아직도 내년 기준 유가를 정하지 못했다. SK그룹 관계자는 “불확실성이 너무 많아 고심 중”이라면서 “조만간 구체적으로 확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LG그룹도 OPEC(석유 수출국 기구) 감산(減産), 이란 핵 문제 같은 위험 요인이 많아 유가가 급등할 경우에 대비한 사업계획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리는 5% 내외에 머물 곳으로 보는 기업이 많아, 급격한 금리 상승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 소극적인 투자와 채용 계획=국내 5대 그룹은 신규 투자 및 채용도 최소화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잠시 진정상태를 보이던 원·달러 환율이 이미 930원 대로 내려서지 않았느냐”며 “업종 1등이니 체면이니 하는 데 집착할 여유는 전혀 없고, 생존의 기로에 설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유독 일관제철소를 착공한 현대자동차그룹만 올해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롯데그룹도 잠실 제2롯데월드에 대한 규제 문제가 해결될 경우를 가정해 내년에 1조5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을 뿐이다. 나머지 기업들은 투자는 올해 수준을 유지하거나 아니면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채용 전망도 어둡다. 5대 그룹 모두 올해 수준에서 더 늘릴 계획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 대기업 임원은 “구조조정의 파도가 몰아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채용 계획을 늘려 잡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도 경영 계획에서 공개적으로 ‘긴축 기조’를 밝히는 기업도 있다. LG그룹 관계자는 “기업의 본질적인 역할과 관계없는 낭비적 요소는 모두 제거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했고, 롯데그룹 측은 “내실 위주의 신중한 경영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원화 강세가 심화돼 해외 판매 수익성이 떨어질까 우려하는 기업도 많았고, 세계 경제성장률 동반 하락에 따른 경영환경 악화를 걱정하는 기업도 있었다.
북핵(北核) 문제는 북한이 6자 회담에 복귀하더라도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어 성장 잠재력이 약화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기업이 대부분이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900원대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고(高) 유가 기조도 계속되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우려를 과민반응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출처 : 조선일보 김덕한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