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제조업체인 ‘아버카츠’는 8년여에 걸친 노력 끝에 지난해 초 앵클가드슈즈(발목보호신발)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지난해 7월 ‘북미기술대전’에서 금상을 받고 미국과 유럽 등 31개국에서 특허를 획득할 정도로 혁신성을 인정 받았다. 회사 측은 성공을 자신했다.
정영일(49) 대표 등은 이때부터 수출길을 모색했다. 하지만 구매협상 단계에서 번번이 실패했다. 해외 바이어들이 제품의 기술력에 만족하면서도 구매는 꺼렸던 것. 정 대표는 “국내시장은 브랜드 장벽이 높아 해외시장부터 뚫기로 했고 반응도 좋아 기대가 컸지만 계약까지 가지 못했다”며 “원인은 조악한 신발디자인에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회사 측은 디자인 전문업체와 손잡고 지난 8월 확 달라진 새 디자인 제품을 선보였다. 효과는 바로 나타나 최근 독일과 미국 쪽에 각각 30만유로(약3억6000만원)와 25만달러(약 2억4000만원)어치의 신발 수출계약을 맺었고 지금은 구매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기술력과 품질이 뛰어난데도 디자인이 뒤져 수출 등 판매에 고전해온 중소기업들이 디자인 혁신에 나서고 있다. 소비자 시선을 사로잡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을 만큼 디자인이 상품 경쟁력의 핵심요소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중소벤처 보안기기업체인 ㈜슈프리마 관계자들은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지난달 양산에 들어간 지문인식종합단말기 ‘바이오스테이션’이 빅히트를 치면서 물량이 달릴 정도로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이 기기는 슈프리마 쪽 주력시장인 유럽지역 대리점의 의견을 반영, 기능성과 실용성을 접목한 새 디자인 제품이다.
이 회사 이선영 과장은 “1600만 컬러의 고화질 2.5인치 LCD 창을 세계 최초로 장착해 출입통제는 물론 직원의 근태, 급여, 인사 등 각종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제품의 기능성을 강화한 데다 사용자 환경에 맞춘 심미성을 접목한 디자인 덕이 컸다”고 전했다. 회사 측은 이 제품 출시로 연간 매출규모가 75억원에서 120억원으로 증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세차기를 만드는 동양기전의 양재하 대표는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회사 측은 3년 전 한 디자인업체 문을 두드렸다. 수입품에 견줘 손색없는 성능에도 매출이 신통치 않았던 이유를 ‘촌스런’ 세차기 외양에서 찾았기 때문. 이듬해 한껏 세련된 모습의 세차기가 나온 뒤 판매 대수는 월 15∼17대에서 30대 안팎으로 늘었고, 회사는 지금 중국과 동남아 시장 수출을 추진 중이다.
이처럼 디자인 개발이 매출·수출 증대로 이어지자 정부가 지원하는 ‘디자인혁신기술개발사업’에 참여하는 중소기업도 꾸준히 늘고 있다.
이 사업은 자체 디자인 개발 능력이 없거나 디자이너가 부족한 중소기업에 1억원 한도에서 제품·포장·시각디자인 개발비의 3분의 2 이내를 지원하는 것이다. 한국디자인진흥원에 따르면 지원사업 초창기인 1994년 391개에 그쳤던 참여 기업은 2000년 들어 연평균 816개로 늘었다. 진흥원이 2002∼05년에 지원받은 2006개 중소기업(휴·폐업 제외)을 대상으로 디자인 혁신 성과를 조사한 결과, 2004년 기준으로 전체 투자액(169억5000만원)보다 41.3배(7000억3500만원)나 많은 매출 증대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진흥원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이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디자인 전문회사나 대학 등과 연계해 제품이나 포장, 시각, 캐릭터, 브랜드 등의 디자인 개발에 힘을 쏟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 세계일보 이강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