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제약회사인 한국얀센과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은 1984년 나란히 한국공장을 지었다. 이후 단 한 차례의 노사분규도 겪지 않고 순항해 왔다. 이들은 최근 한국공장을 증축하거나 생산라인을 업그레이드하는 등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낮은 생산성과 노사갈등 탓에 한국에서 철수한 한국바이엘, 한국노바티스, 한국화이자 등 다른 다국적 제약회사와는 사뭇 다른 행보다. 한국얀센과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은 한국에서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 직원 제안 받아들인 한국얀센
2003년 3월 경기 화성시 향남면 한국얀센 공장. 이 회사 생산부 엔지니어인 박정환(31) 씨는 캡슐알약 선별작업을 유심히 관찰했다. 직원들이 일일이 눈으로 확인해 불량품을 가려내고 있었다. 박 씨는 ‘자동으로 불량품을 걸러주는 카메라가 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박 씨는 곧바로 회사 측에 약을 포장하는 기계 위에 카메라를 달자고 제안했다. 3개월 뒤 이 회사에는 ‘불량품 선별 카메라’가 도입됐다.
그는 “일부 국내 제약사도 벤치마킹해 카메라를 설치했다”며 “2000년 1월 이후 생산 효율을 높이는 150개 방안을 제안했고 이 가운데 115건이 채택됐다”고 말했다. 박 씨는 지난해 회사의 ‘제안 최다 채택 사원’이다.
이처럼 한국얀센은 한국 공장을 세운 1984년 이후 개선이 필요하거나 불필요한 생산 공정을 고치기 위해 직원 제안을 받아오고 있다. 공장 직원(현재 65명)이 낸 제안은 모두 2500여 건. 이 가운데 1800여 건이 채택됐다. 회사는 제안을 한 사람에게 상금과 문화상품권 등을 포상한다.
한국얀센 관리공무부 이상구 부장은 “직원들의 각종 제안을 통한 작업 개선으로 2005년 출하·배송 불량률 0%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얀센이 가동하는 세계 20개 공장의 제품 단위당 평균 생산비용(토지 등 고정비 제외)은 한국공장의 5.68배에 이른다. 중국공장의 생산비도 한국보다 많다. 한국공장은 중국보다 인건비 부담은 크지만 생산성이 1위이기 때문이다.
이 회사 홍보팀 김도경 부장은 “2004년과 2006년 두 차례에 걸쳐 공장 규모를 약 22% 증축한 뒤부터는 한국이 아시아의 생산중심지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 신뢰의 노사관계, 한국베링거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은 올해 2월 관절염 치료제 ‘모빅’을 한국공장에서 생산해 호주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독일 본사가 2002년 아시아 생산거점공장으로 육성하기 위해 설립한 중국 상하이(上海) 공장을 대신한 것이란 분석. 한국법인은 현재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호주 등으로 모빅을 수출하는 사실상의 아시아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 본사는 2002년 중국공장을 세울 때 한국공장 폐쇄를 고려했지만 한국법인의 돈독한 노사 신뢰 관계를 믿고 오히려 투자를 늘렸다.
본사의 경영정책에도 영향을 준 한국법인의 노사 신뢰는 1997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한국법인 사장을 지낸 마이클 리히터 전 사장이 만들었다.
리히터 전 사장은 부임 직후 노조에 향후 5년의 예산, 채용 등 경영관련 전략을 공개했다.
이 회사 노동조합 양환용(44) 위원장은 “그때 노조가 처음으로 내부 경영자료를 접했다”고 말했다.
이후 1998년 외환위기의 소용돌이에서 노조는 경영진에 먼저 ‘임금동결’을 제안했다. 회사가 살아야 직원도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 위기를 넘긴 회사는 이듬해 ‘총임금 13.5% 인상’으로 화답했다.
2000년 국내에 도입된 의약분업으로 조직 개편의 필요를 느끼자 경영진은 대상과 기준인원 보상 등에 대해 먼저 노조의 의견을 구했다.
양 위원장은 “회사는 직원을 육성해야 할 ‘자산’이자 ‘비용’으로 보지만 노조는 ‘자산’으로만 여기기 쉽다”며 “회사는 무엇보다 좋은 경영성과를 내야 하는 만큼 직원도 투자 대비 효율을 내는 ‘비용’으로 보는 관점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 동아일보 이나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