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청어람·KTF-싸이더스…막강 제작사 장악
모바일 콘텐츠 판권 확보 겨냥 경쟁투자 불붙어
대기업 자본과 본격 대결…극장영화 위축 우려도
이동통신사 자본이 한국 영화 산업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매니지먼트와 영화 제작 등을 병행하고 있는 종합엔터테인먼트 기업 아이에이치큐(IHQ)는 지난 1일 46억원을 출자해 영화 〈괴물〉의 제작사인 청어람의 지분 30%를 인수했다고 공시했다. 이 아이에이치큐의 최대 주주는 에스케이텔레콤(SKT, 이하 에스케이티)이다. 에스케이티는 지난해 2월과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각각 144억원과 273억5200만원을 지분투자해 아이에이치큐의 최대 주주가 됐다. 이에 앞서 9월 케이티(KT)는 케이티에프(KTF)와 각각 196억원과 84억원을 공동으로 출자해 싸이더스에프앤에이치(F&H, 이하 싸이더스)의 지분 51%를 인수했다.
싸이더스는 제작 물량이 가장 많은 영화사다. 또 이미 아이필름을 가지고 있는 아이에이치큐에 청어람까지 가세할 경우 이 회사는 제작 물량에서 싸이더스와 1, 2위를 다투게 된다. 그러니까 국내 최대 영화제작사 두 곳의 최대 주주로 이동통신사가 들어앉은 것이다. 최근 ‘티브이 포털’을 선보인 하나로텔레콤도 씨제이엔터테인먼트(이하 씨제이), 소니픽쳐스 등 17개 영화 관련 회사와 제휴를 맺었다. 이들 이동통신사는 지분 인수와 별도로, 현재까지 총 900억원 규모의 영상산업 펀드도 조성했다.
1990년대 중반 삼성, 대우가 영화계에 들어왔다가 철수했고, 90년대 후반 극장업을 겸한 씨제이엔터테인먼트와 쇼박스, 롯데시네마(이하 롯데)가 다시 영화계에 들어와 투자배급사의 3대 메이저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대기업 자본의 흐름 속에 이제 이동통신사 자본이 영화계에 진출했다. 당연히 영화계에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이동통신사, 왜 영화계에 진출하는가?
이동통신사의 영화산업 진출은 궁극적으로 영화 콘텐츠 판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디엠비(DMB), 와이브로, 아이피티브이(IP-TV), 티브이 포털 등 나날이 다양해지는 신규 서비스를 위해서는 콘텐츠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판권 구매’라는 손쉬운 방법을 두고 굳이 영화제작사 인수나 영상펀드 투자 등 리스크가 크고 공격적인 길을 택한 건 왜일까?
케이티에프 쪽은 “지분 인수나 펀드 투자의 경우 투자한 만큼 이익을 얻을 거라고 예상하기는 쉽지 않음에도 이런 방식을 택한 건, 에스케이티가 영화사를 인수해 자체 제작 영화의 독점사용권을 갖고, 영상펀드를 통해 판권 우선협상권을 챙기는 상황에서 전략적 대응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쟁 통신사의 판권 독점을 우려하는 건 에스케이티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또 이런 독점 견제는 통신사뿐 아니라, 인터넷 업체, 위성방송 업체에도 존재한다. 스카이라이프를 거느리고 있는 케이티 쪽은 “스카이라이프의 경우, 자체 케이블을 가지고 있는 씨제이나 쇼박스에서 투자·배급하는 영화들은 공급이 안 된다”며 “콘텐츠 판권을 확보하려면 영화사 인수나 영화 투자 방식이 불가피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동통신사들의 1차 목적이 콘텐츠 확보이고, 그 중 상당수는 디엠비폰 등 신규 매체용 콘텐츠이다 보니 영화계에선 이들이 극장용 영화 제작을 소홀히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에스케이티 쪽은 이와 관련해 “(멀티플렉스) 극장은 단순히 ‘영화 보는 공간’이 아니라 영화를 보면서 밥도 먹고 교제도 하는 종합엔터테인먼트 공간”이라며 “극장이 존재하는 한 극장용 영화들도 계속 만들어질 것이며, 신규 매체용 콘텐츠가 현재의 영화를 잠식한다기보다 새 시장을 개척한다고 보는 편이 맞다”고 말했다.
좀더 현실적인 영화계의 우려는 이들 이동통신사가 영화의 2차 판권을 독점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혜준 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장은 “제작사 지분을 넘기거나 통신사 자본 중심 펀드의 투자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면, 제작사나 감독은 통신사 밑의 하청업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2차 판권의 투명한 수익공개와 합리적인 수익배분 구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통신사냐, 극장업 겸한 대기업이냐?
이제 싸움은 ‘이동통신사 자본’ 대 ‘극장업 겸한 대기업 자본’이다. 다시 말해 ‘에스케이티, 케이티, 케이티에프’와 ‘씨제이, 쇼박스, 롯데’의 싸움이다. 지금은 후자가 막강하다. 극장업에 더해 배급망을 이 셋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케이티가 대주주로 있는 싸이더스는 이미 배급업에 뛰어들 계획을 밝힌 상태다. 이동통신사(가 대주주인 영화사)들이 배급에 나설 경우, 이들은 자체 제작 물량이 많기 때문에 자체 제작을 하지 않고 있는 씨제이, 쇼박스, 롯데보다 우월한 지위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씨제이, 쇼박스, 롯데는 극장업을 겸하고 있다. 이건 배급전쟁에서 엄청난 무기가 된다. 반면 같은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이들 회사의 자본력은, 특히 씨제이와 쇼박스는 에스케이티나 케이티, 케이티에프에 훨씬 밀린다.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싸움이 영화계에서 시작되고 있다.
출처 : 한계레 전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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