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를 선도적으로 도입해 시행 중인 금융계가 ‘딜레마’에 빠졌다. 임금피크제가 정년 연장과 신규 고용 창출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판단해 제도를 도입해 시행했지만 임금피크제 대상자에게서 적합한 직무를 찾아내지 못하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임금피크제 대상자들의 불만도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후유증도 있어=2004년부터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인 우리은행은 요즘 ‘임금 피크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임금피크 연령에 다다른 우리은행 직원은 “현재 임금피크 대상자들에게 주어지는 업무는 채권 추심, 영업으로 한정돼 있다”면서 “지점장으로 일했던 사람에게 전화만 걸면 되는 단순한 업무를 맡기니 자존심이 상할 때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임금피크제가 경험 많은 고령자들에게서 일을 뺏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든다”고 전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은행측도 난감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은행 HR운영팀 박승재 부부장은 “고령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지점장 수를 무작정 늘릴 수만은 없는 것 아니냐”면서 “임금피크 대상자들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은 1인 마케팅과 영업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기업은행도 임금피크제 도입에 대한 만족도가 낮은 편이다. 인력개발부 신영출 과장은 “임금피크 대상자 입장에서는 고위직에 있다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단순한 사무만을 보는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면서 “임금피크제를 희망퇴직제와 병행해 시행하고 있어 고용연장 효과도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국민은행의 경우 지난 5월 인사제도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임금피크제 도입을 검토했지만 논쟁을 벌인 끝에 결론을 내지 못한 상태다.
◇대안마련에 적극 나서야=금융계에서 가장 먼저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던 신용보증기금은 최근 기존 제도를 손질한 ‘탄력 임금피크제’를 마련해 조만간 시행할 계획이다. 신용보증기금 한동안 실장은 “그동안 임금피크제를 성과에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시행하다 보니 모든 대상자들에게 공평하기는 하지만 근로의욕을 북돋는 데는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신용보증기금은 개인 능력에 따라 임금피크제 적용 연령을 53세에서 57세까지 다양화하고, 임금 감소 비율도 달리하는 방안을 마련해 노조의 최종 동의만을 남겨 둔 상태이다.
우리은행도 기존 임금피크제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연구를 진행 중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현재 직원 평균 연령이 40세로 조만간 고령자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아직 임금피크제는 ‘걸음마’ 단계지만 장기적으로는 확고하게 뿌리내려야 할 제도라는 점에서 지속적으로 보완해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임금피크제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임금피크 대상자에게 적합한 직무개발 ▲임금피크 대상자의 인식 전환 ▲노사간 충분한 토론과 합의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 임금피크제란
근로자가 정년까지 근무하는 것을 보장해주는 대신 일정 연령에서부터 임금을 동결하거나 줄여나가는 제도. 근로자에게는 고용안정을, 기업에는 비용부담을 줄여주면서 사회적으로는 일자리를 늘리자는 취지로 2004년부터 도입되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부터는 정부가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른 임금보전 수당을 지급하면서 관심을 갖는 기업들이 많아졌다.
출처 : 경향신문 이상주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