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상황에 대한 기업들의 자신감이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본지가 지난달 하순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지난해 말이나 올해 초 볼 수 있었던 비교적 낙관적인 자세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내수 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반짝했던 상반기와는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번 조사 결과는 본지가 지난해 11월 역시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조사 결과와도 크게 대비된다. 내수 회복에 대한 기대가 부풀어 올랐던 당시 ´현재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응답이 전체(응답기업 85개)의 53%에 이르렀고, 나빠지고 있다는 응답은 1개 사에 그쳤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는 ´좋아지고 있다´(하반기 경기가 상반기보다 나아질 것)는 답이 17.2%에 그치고, 반대로 ´나빠지고 있다´는 답이 48.3%나 됐다. 설비투자와 신규 채용도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급속하게 줄어드는 등 기업들이 전반적으로 몸을 사리는 추세가 뚜렷했다.
6개월 만에 장밋빛 시각이 먹구름 전망으로 바뀌고 만 것이다. 한국외국어대 임기영(경제학부) 교수는 "수출 위주의 대기업이 느끼는 경기 흐름이 이 정도라면 연초 내수 회복을 기대했던 일반 국민의 체감 경기는 그야말로 ´피지도 못하고 진 꼴´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체감 경기가 이렇게 급속히 나빠진 것은 유가 급등과 환율 급락 등 대외적인 변수에 크게 기인한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던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대기업들은 올해 1, 2분기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여기에 주가가 크게 빠지고, 부동산 경기 급락에 대한 우려 등 내부적인 악재가 작용하면서 내수도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다. 인플레이션 우려에 따라 시중 금리가 상승 기조로 접어든 것도 기업들의 불안감을 더해주고 있다.
경기 비관론이 커지면서 기업들은 하반기 경영 기조를 보수적으로 가져갈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기업들의 79%가 올 하반기 신규 채용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가져가겠다고 응답했으며, 늘리겠다는 응답은 14%에 불과했다. 지난해 극심한 취업난을 겪었던 점을 고려해 본다면 취업 희망자들의 갈증은 올해도 가시기 힘들 전망이다.
이 같은 기업들의 경기 인식은 민간경제연구소의 예측과도 맥이 닿아 있다. 민간경제연구소는 하반기부터 경기 하강세가 뚜렷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심지어 ´더블 딥´(짧은 경기상승 뒤 장기 침체를 겪는 현상) 가능성까지 내다보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정부는 하반기 경기 하강 조짐은 있겠지만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5% 달성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김범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국제유가.환율 등 대외여건과 국내 민간소비.설비투자 등을 해석하는 시각에서 정부와 민간이 차이가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 하강 국면에 대한 대책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엇갈리고 있다.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경기가 아주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며, 나빠져도 특별한 대책을 세우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정부 개입으로 강제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볼륨이나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 하강을 조기에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회복세로 끌어올리려면 투자 활성화를 통한 성장잠재력 확충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출처 : 중앙일보 이현상.권혁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