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만 있는 규제·역차별 사라져야”
시장 못믿는 정부 ‘경제 조로화’ 불러
우리나라 경제에 온통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유가와 원화값의 상승행진 등 대외 변수들로 인한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주가 급락과 부동산 버블 붕괴 논쟁, 기업의 투자 부진 등 대내 변수들의 불확실성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 경제의 장기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같은 난국을 극복할 방안은 무엇인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본다.
▲이수희 본부장 = 최근 현대차나 삼성 등 대기업들이 검찰의 수사를 받거나 소송을 당하는 등 곤경에 처해 있다. 우리 기업들은 많은 약점을 안고 있다. 이같은 기업의 약점은 과거 산업개발시대로부터 누적된 것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상속제도를 놓고 보면 제도 자체가 일관성 없이 변화해온 측면이 있다.
기업도 그에 맞춰 나름대로 적응해왔다. 기업의 입장에서 과거 10년 전에는 문제가 안 됐던 게 이제 와선 문제가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렇다고 과거를 바꿀 수도 없는 것 아닌가. 현재 일류기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나 과거 없이 이러한 현재의 공적이 있을 수 없다.
▲김효성 고문 = 기업과 과거 법 규정을 넘어서서 정권도 타협한 적이 있지만 당시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참여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이에 대처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현실화할 부분은 현실화하는 노력이 정부와 기업에 있어야 할 것 같다. 상속문제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경영권 프리미엄에 대한 과세까지 덤으로 얹으면 누가 기업을 하겠는가.
▲조동근 교수 =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양극화’ 얘기를 해보자. 우선 양극화 현상을 우리가 왜곡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바꿔 말하면 양극화는 아닌데 양극화로 몰고 간다. 빈곤 문제로 인해 사회적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신빈곤층이 만들어진 건데, 이걸 극과 극이 만들어져서 앞서가는 사람에 의해 뒷사람이 손해를 본다는 식으로 현상을 왜곡하고 있다.
양극화 해소대책에도 허구가 있다. 세금을 올리자는 건데, 세금은 국가의 필요재원을 조달하자는 것이지 소득재분배를 목적으로 강제로 이전시키는 것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서는 재원을 충족한다. 세금의 소득분배 조정기능을 과대 평가하는 측면이 있다. 사회적 일자리 창출도 세금을 올려서 될 것이 아니다. 양극화 문제를 둘러싼 현상과 대책은 허구다.
▲김 고문 = 기본적으로 철학의 차이다. 정부는 시장에 맡겨놓으면 시장 실패의 결과가 크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한다. 그 연장선에서 세금을 통해 없는 사람에게 나눠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시장주의자 입장에서 보면 왕성한 기업 활동을 통해 소득이 생기고 일자리가 생겨 양극화가 해소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의 조로화’ 현상이다. 오랜 산업성장 역사를 지닌 유럽에선 저성장, 고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그런데 우리는 충분히 성장하지 않았는데도 저성장, 고실업 현상이 나타났다.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1위 국가지만 1인당 GDP는 50위다. 2003년과 2004년의 경제성장률은 세계경제 성장률보다 낮았다. 60년대 초 경제개발 5개년계획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실업문제도 심각하다. 실업률은 3.7%지만 청년실업률은 80%대다. 청년실업 문제가 해소 되지 않으면 지속적인 발전이 없다.
▲이 본부장 = 효율과 형평의 문제를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어느 것이 우선적이라고 다투기보다는 둘을 모두 이룰 수는 없다는 입장이 중요하다. 문제는 정치시장은 1인 1표, 자본주의는 1주식 1행사권인데 이걸 어떻게 조화시키느냐는 것이다. 동태적인 분배, 상향 평준화로 목표를 잡고 움직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사회 안전망을 위한 복지의 확충도 중요하다. 그래야 정책방향의 설득력이 높아진다.
그러나 사회안전망 확충이라고 해도 재원은 결국 세수로부터 나온다. 세수는 기업활동으로부터 파생된다. 과중한 세수를 확보하려고 하면 기업이나 개인은 다른 세율을 적용받는 곳에서 경제활동을 하려고 한다. 이 점은 일류기업을 논의할 때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일류기업은 입지를 선택할 자유가 있는 시대다. 지난 30여년간 우리도 많이 발전했다. 발전의 성과는 누적적으로 축적됐고, 모든 측면에서 경제의 폭과 깊이도 다양해졌다. 당연히 격차도 커졌다. 그것을 양극화라고 보기보다는 다양화, 다각화로 표현하는 것이 맞다.
▲김 고문 = 그런 점을 정책 당국자들이 모르는 게 아니라 우리 국민성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 우리 국민은 냉철한 머리보다 뜨거운 가슴을 앞세운다. 외환위기 당시 금을 가지고 줄서서 내는 것은 다른 나라에선 없었던 일이다. 카트리나 재해때 미국에서 모인 돈의 규모보다 우리가 낸 게 더 많다. 외국은 사회 기반, 우리는 가족에 기반을 둔다. 그런 국민성에 호소하면 정치적으로도 활용도가 크다.
그런 유혹을 느끼면서 유럽의 예를 흔히 든다. 하지만 유럽은 수백년 동안 부를 축적해 당장 성장하지 않더라도 부를 통한 여력이 있다.
그러나 우린 그런 부가 없다. 유럽은 독일이나 프랑스, 스페인 등을 빼면 인구가 몇백만명에 불과하다. 당연히 국방비 부담도 적다. 이런 점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 본부장 = 국내 기업이 외국으로 나가는 건 해외시장에서 글로벌기업과의 경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국의 기업이 세계 여러곳에 생산사이트를 두는 게 유리하다. 납품업체나 연구센터 등도 국내에만 있어서는 좋은 결합이 아니다. 최선의 조합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공급(소싱) 자체도 글로벌 네트워크화하는 것이다. 즉, 일류기업의 경쟁력 자체는 공급 체인 전체의 경쟁력인 셈이다.
들어오는 기업을 잘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해외 일류기업을 유치하려면 국내의 입지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그들의 경영 노하우, 파생 기술도 우리가 소재한 다른 기업들에게 파생된다. 국내기업을 잡는 것과 해외기업을 유치하는 것, 둘 다 중요하다. 다만 그런 과정에서 국내기업이 역차별을 당하지 않도록 지자체나 중앙정부가 조심해야 한다.
▲김 고문 = 예를 들어 우리 기업이 해외로 갈 경우 인건비가 이유일 때도 있지만 전부는 아니다. 수도권 기업들이 증설을 못해서 나가는 경우도 있다. 수도권에서 입지 규제를 풀게 되면 안 나간다. 그냥 안된다고 하니까 기업으로선 해외로 나가야 한다. 그런 것들을 정부가 찾아나서서 기업이 해외로 나가지 않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조 교수 = 준조세가 2004년에 10조원이나 된다. 연금, 고용보험, 사회보험료 등을 포함한 광의의 준조세는 27조원이다. 2000년에는 광의의 준조세가 13조5000억원이었다. 4년사이에 2배로 늘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그러면서도 기업이 사회공헌을 하지 않는다고 하니 죽을 맛일 것이다. 이런 것들이 기업들로 하여금 한국을 싫어지게 하는 것이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이면 누가 기업을 하고 싶겠나. 이런 것들도 빨리 털어야 하지 않을까. 투명성도 차별적이다. 준조세를 없애는게 투명한 것이다.
▲이 본부장 = 기업측에 가장 많이 부담되는 것은 연기금이다. 일종의 사회 안전망 차원에서 부담하는데, 기업과 개인이 반반씩을 낸다. 세금외 조세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얻어낼 필요가 있다. 기업이 부담해야 할 것이 굉장히 많은데 사회 기여금을 내기 시작하면 다른 기업들도 무언의 압력을 받는다.
▲조 교수 = 기업을 마르지 않는 샘으로 보고 있다. 조세외 부담은 결과적으로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주주 중심으로 가자고 한다. 앞뒤가 안맞는 말이다. 기업을 보는 시각이 잘못됐다. 다시 말해 기업인과 기업을 분리해서 보고 있다. 삼성이나 현대는 인정하면서도 지배주주는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지배주주를 내쫓고 전문경영인을 앉히면 무조건 잘 굴러갈 것으로 생각한다. 운전사가 바뀌면 차가 다르게 가는 법인데 너무 쉽게 생각한다.
▲김 고문 = 우리 국민들이 기업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기업을 단순히 돈버는 조직으로 봐달라. 야구선수가 홈런만 잘 치면 됐지 너무 여러가지를 요구한다. 시장경제의 작동원리를 통해 인식을 바꿔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업인이 존경받으며, 기업이 국민의 존경의 대상이 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이 본부장 = 일류기업은 국내 일류가 아니라 글로벌 일류기업을 만들자는 것이다. 좋은 기업의 사례가 해외에 많다. 하지만 다 가져올 수는 없다. 국내의 대표선수가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처럼 국내대회의 룰과 해외의 룰이 같아야 한다. 일관성 있는 제도나 규제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불편하게 느끼는 역차별도 없어지게 될 것이다. 또 그래야 우리나라에만 있는 이상한 규제도 없어질 수 있을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10년도 안돼 30대 기업중 절반이 사라졌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규제는 없어져야 한다.
정리=박양수기자 yspark@munhwa.com
좌담 참석자
김효성 고문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겸 서울상공회의소 상근 부회장 ▲대한상공회의소 고문(현) ▲경희대·경기대·서경대 겸임교수(현)
조동근 교수
▲미국 신시내티대 경제학박사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원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현)
이수희 본부장
▲서강대 경제학 박사 ▲미국 메릴랜드대 산업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경실련 갈등해소센터 운영위원(현)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본부장(현)
출처 :문화일보 박양수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