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인 국민 요구 충족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1990년대 초 우리 기업 현장에 유행처럼 회자된 물음들이 있다.
“월급은 누가 주는가?”
“복지후생비, 해외 출장비는 누가 지급한 돈인가?”
“사장? 사주? 주주? 상사?”
질문이 의도한 정답은 다름 아닌 ‘고객’이다. 일견 유치한 문답을 바탕으로 기업에서는 대대적인 고객만족 운동이 펼쳐졌다. 공급자 중심의 일방적 마케팅이 수요자 위주의 열린 마케팅으로 대전환을 하기 시작했다. 고객들은 품질과 서비스를 따지기 시작했고 갈수록 까다롭게 입맛이 변해갔다. 까다로운 고객들은 기업의 체질을 바꾸고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하는 원천이 됐다. 우리의 일류기업들이 오늘날 세계적 수준의 품질과 서비스를 갖추게 된 배경에 ‘고객’의 공로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2006년 정부 안에서도 비슷한 질문은 유효하다.
“공무원의 월급은 누가 주는가?”
“기획예산처? 중앙인사위원회? 대통령? 장관?”
정답은 역시 ‘고객’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고객은 과연 누구인가? 부처에 따라서는 다른 정부 기관 공무원을 대상으로 정책을 펴는 경우도 있지만, 정책의 최종 수요자인 일반 국민이 결국 정부의 고객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국민은 납세를 통해 공무원들에게 ‘월급’을 주고 서비스를 제공받는 공공서비스의 고객이다.
세계적 수준의 서비스 누릴 권리
국민이 고객이라면 공무원은 서비스 제공자로서 고객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마땅하다. 정부의 고객도 삼성전자나 SK텔레콤의 고객이 누리는 세계적 수준의 서비스를 누릴 권리가 있다. 우리 정부가 남다른 정성과 서비스로 고객을 만족시키고 감동시킬 때 공공 부문의 경쟁력은 자연히 글로벌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우리 정부 내에 ‘고객만족’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다. 정부는 해마다 각 부처를 평가해서 결과에 따라 상여금도 지급하는데 평가기준 가운데 ‘고객만족’은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정부서비스를 공급자 위주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하는 데 큰 방향타 역할을 하고 있다.
소관 정책의 속성상 언뜻 고객만족 경영과는 연관이 없을 듯한 중앙인사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중앙인사위의 경우 2004년 정부평가에서 정책부문에서는 최상위권에 속했으나 고객만족이 최하위여서 최종 평가가 중위권으로 밀리게 되었다. 당연히 연초 전직원 혁신 워크숍의 주제는 ‘고객만족’이 됐다. 그 무렵 민간에서 공직으로 진출한 필자에게는, 위원장 이하 전 직원이 고객만족을 주제로 뜨거운 토의와 격론을 벌이던 장면이 매우 흥미로웠다. 작은 규제를 붙들고 허세를 부리며 위압적으로 고객을 대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자기반성부터 고객한테 인정받지 못하면 끝내 도태한다는 위기의식에 이르기까지 수요자에게 다가서려는 노력은 사뭇 진지해 보였다. 워크숍을 통해 중앙인사위 직원들은 고객만족을 향해 스스로 다짐하고 실천을 약속하면서 커다란 변화의 분기점을 넘어서고 있었다.
현장으로 찾아가는 고객만족 운동
조직 전체의 ‘공개적인 약속’(Commitment)을 바탕으로 2005년에는 강력한 고객만족운동이 추진됐다. 정책분야별로 대상 고객군을 설정한 뒤 새로운 인력충원 없이 기존 조직마다 내부에 고객만족 전담팀을 구성, 정기적으로 고객의 애로를 청취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데 앞장섰다. 고객만족은 어느 특정부서의 일이 아니라 전 직원이 힘을 합쳐 완수해야 할 공개임무가 됐다. 앉아서 기다리는 식의 소위 ‘끗발’ 센 부처의 허세를 벗고 현장으로 찾아가는 체감행정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인사위의 고객만족 성적이 꼴찌 수준에서 지난해 ‘우수’ 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태도의 변화가 큰 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모든 불합리한 규제가 서비스로 바뀔 때까지 고객만족운동은 계속돼야 한다는 게 개인적 소신이다. 고객 위주의 행정이 주는 가장 큰 이점 중 하나는 고객 한명 한명의 역할이 정부의 리더십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고객들의 합리적인 격려와 질책은 행정 서비스에 대한 피드백을 통해 정부의 수준을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 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현명한 고객은 공무원에게 월급을 줄 뿐만 아니라 미래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실천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까지 하는 것이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오늘도 행정현장에선 변화와 혁신의 몸부림이 계속되고 있다.
“내 월급은 누가 주는가?”
우리 공무원들이 국가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할 때마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정책의 최종 수요자인 고객들과 함께 국가발전을 선도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영규 인사위 인사정보관(전 IBM 인사담당 상무)
출처: 국정브리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