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 민간기업 적용되는 ‘적극적 고용개선조치’(AA) 어떻게 시행되나
해마다 노동부에 남녀 근로자 현황과 시행계획서 내야 하지만 벌칙은 없어
‘여성은 기업에 힘이 된다.’ 오는 3월부터 시행되는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Affirmative Action·AA)는 동종 업종의 다른 기업에 비해 여성 고용 총량이나 여성 관리직 비율이 낮은 기업에 대해 ‘간접 차별’이 있다고 보고 개선 방안을 발굴, 수립하도록 요구하는 제도이다. 지난해 12월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은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 조항을 신설해 공기업과 일정 규모(시행령 안은 종업원 500명 이상 민간기업) 이상의 기업은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 시행계획과 이행실적을 노동부 장관한테 제출하도록 했다. 고용개선 조치 우수기업에는 정부가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이행실적이 부진한 기업에는 시행계획 이행을 촉구할 수 있다. 국내 1천 명 이상 기업은 500여 개인데, 500명 이상 기업은 공기업까지 합쳐 1400여 개에 이른다.
‘기회 평등’ 넘어 ‘결과의 평등’을
사실 여성 고용 차별은 사용자의 차별과 편견에 의한 것도 있지만 ‘정부의 장벽’도 존재한다. 1988년 고용평등법을 마련하고 2001년 여성부가 출범했지만, 정부가 여성 고용 평등과 관련해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감독이나 법·제도 시행을 제대로 하지 않고 여성 고용에 대한 자료 조사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노동연구원 황수경 연구위원은 “법·제도적인 노력에 비해 민간기업에서 여성의 진출 성과는 미미한 수준”이라며 “1990년대에 걸쳐 여권 신장 목소리가 높았지만 정책적 효과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고용개선 조치는 기회의 평등을 넘어 ‘결과의 평등’을 실현하려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고용은 원천적으로 기업의 몫이다. 그럼에도 민간기업의 여성 고용에 대해 국가가 개입해 고용개선 조치를 요구하는 논리의 배경에는 이른바 ‘간접 차별’이 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오랜 기간 누적되면서 보이지 않는 제도로 정착되고 성차별적 관행으로 구조화됐다. 간접 차별은 기업이 비록 채용·근로조건을 제도상으로는 동일하게 적용하더라도 통계적으로 특정 성별의 구성원이 상대 집단의 80% 미만일 때는 불리한 대우가 행해졌다고 본다. 이른바 ‘5분의 4’ 룰이다. 예컨대 여성 12명 중에서 3명이 승진한 데 비해 남성은 25명 중 15명이 승진했다면 여성 승진 비율(25%)은 남성 승진 비율(60%)의 5분의 4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차별이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장지연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기업의 여성 고용에서는 구조적인 차별이 존재한다. 따라서 국가 개입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제도는 획일적으로 부과하는 여성 고용 목표 할당제와는 다르고, 기업이 스스로 달성 가능한 목표를 제시하는 방식이다. 생산성에 따라 채용하는 원칙을 침해하지 않고 민간기업 조직 내에서 여성의 대표성을 늘리는 제도”라고 말했다.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는 단계별로 이뤄진다. 먼저 1단계로, 적용대상 기업은 해마다 노동부에 직종별·직급별 남녀 근로자 현황을 제출해야 한다. 정부는 이 자료를 토대로 동종 산업의 유사 규모 기업들을 비교·평가해 여성 고용 비율과 관리직 여성 비율이 평균의 80%에 미달하는 기업을 선정한다. 이렇게 선정된 기업은 2단계로 넘어가 매년 10월까지 ‘고용개선 조치 시행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시행계획서에는 △남녀 인력 활용 불균형 여부를 분석하고 △향후 1년 안에 달성할 전 직종 및 관리직 여성 고용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추진할 제도적·관행적 개선 계획을 작성하고 △여성 고용 비율이 현저하게 낮거나 단기간에 개선하기 어려운 경우 그 사유를 기재해야 한다. 물론 시행계획서는 실현 가능하고 여성 고용 비율을 실질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는 수준으로 작성해야 한다. 마지막 3단계로는 고용개선 조치 이행실적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장지연 연구위원은 “이행계획서는 장기에 걸친 목표가 아니라 당장 1년 뒤에 반드시 지킬 수 있는 목표치를 제시해야 한다”며 “여성이 현재 100명인데 고작 1명 더 늘리는 이행계획서를 제출하는 등 대충 쓸 여지가 있지만, 이럴 경우 노동부가 수정·보완을 요구하는 과정을 여러 차례 거칠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관리직’에서의 여성 비율만 따져
이 제도가 장애인 고용의무 비율처럼 목표치를 강제하거나 이행실적이 부진할 때 벌칙을 부과하는 건 아니다. 사실 여성 고용 수량 목표제는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나 자격미달 여성을 채용·승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은 여성 고용과 여성 관리자 비율이 너무 낮기 때문에 고용평등을 빨리 높이려면 국가가 민간기업에 일정 비율을 목표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장지연 연구위원은 “이 제도를 운영하면서 기술적으로 하위 10% 기업을 ‘집중 관리’ 대상으로 정할 것”이라며 “명단이 공개되면 기업들이 최소한 여성 고용에서 꼴찌 10%에서는 졸업하려고 들 것이고, 그러면 또 다른 10% 기업이 꼴찌 그룹에 들어올 것이고 이들이 또 여기서 졸업하면서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쪽은 민간기업에서 현재 여성 비율과 여성 관리자 비율을 감안할 때 전체 적용대상 기업(1500여 개) 중 대략 800여 개 기업이 2단계 고용개선 조치 시행계획서 제출 대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800여 개 기업 가운데 업종별로 하위 10% 기업들을 집중 관리하겠다는 얘기다.
기업이 보고하는 여성 비율 현황에는 경영관리직·판매서비스·사무직 등이 각각 분류되지만, 노동부가 평균의 80%에 미달하는 기업을 선정할 때는 ‘경영관리직’에서의 여성 비율만 따진다. 주로 여성이 몰려 있는 특정 여성 전문직까지 포함시키면 남녀 고용이 평등한 것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행 목표치를 제시한 기업이 이를 충족시키더라도 여성 관리자를 핵심 부서가 아니라 장식품에 불과한, 하위 부서원이 거의 없는 자리에 배치할 공산도 있다. 그러나 핵심 부서에서의 극히 낮은 여성 비율 같은 이른바 ‘유리벽’을 고치는 노력은 이 제도에 포함돼 있지 않다.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를 이미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1967년 도입·10인 이상 기업이 적용대상)·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각각 1986년 도입) 등인데,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고용개선 조치를 이행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 정부조달 계약을 파기하거나 향후 몇 년간 조달계약 응찰 자격을 박탈하고 명단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다.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 도입 이후 미국은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이 46.4%(1946)에서 69.2%(2004)로, 오스트레일리아는 56.7%에서 2004년 66.3%로, 캐나다는 63.8%에서 73.5%로 늘었다.
미국에선 3주간 국세청 감사 수준으로
우리나라도 고용평등을 정부조달 계약과 연계하는 방안이 가능할까? 김태홍 전 한국여성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의 조사 결과 우리나라 정부조달 계약(내자구매·시설공사) 사업체는 2002년 7441개 업체에 달했다. 또 조달계약 기업 107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기업의 경우 과장급 이상 여성 관리자 비율은 1%(부장 0.2%, 과장 0.8%) 이하로 관리자급 여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관리자 비율을 조달계약과 연계할 경우 거의 모든 기업이 조달계약 대상에서 제외되는 셈이다. 장지연 연구위원은 “미국에서는 여성 고용평등이 미흡한 기업에는 국세청 감사 수준의 감사가 3주 동안 진행되는데, 감사요원들이 기업에 나가 진을 치고 시시콜콜히 여성 고용 현황을 따지고 들여다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올해가 우리나라 직장 여성들에게 ‘기회 2006’이 될 수 있을까?
출처 : 한겨레신문 조계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