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 기술개발 단계부터 시장 고려
삼성전자도 R&D에 기술경영 접목
◆기술경영이 기업을 살린다 (上)◆
일본 도쿄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은 일본 2위 화학기업 아사이카세이화학. 연구개발(R&D) 부서의 나가하라 하지메 총괄부장 말에는 힘이 넘친다.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딛고 부활한 진짜 비결은 바로 기술경영에 있습니다. 기술경영은 엔지니어나 연구원이 경영마인드를 갖고 기술개발을 하는 것입니다. 기술자가 효율과 생산성을 추구하는 경영을 알고 있기 때문에 똑같은 돈을 투자하더라도 훨씬 높은 실적을 올릴 수 있습니다."
나가하라 총괄부장은 "연구원이 연구만 하던 시대는 지났다"며 "경영을 아는 엔지니어가 필요하고 기술을 아는 경영자가 양성되어 조화를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기술경영의 핵심을 짚는 대목이다. 그는 기술이 만능이라며 무작정 투자에 나서는 것은 `고지만 바라보고 뛰어가는 꼴`이라고 말한다. 고지를 점령하려면 먼저 지형과 기후를 살피고 등반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해야 한다는 얘기다.
1980년대 미국에서 기업들이 본격 도입한 기술경영은 이후 `저비용 고효율`로 대표되는 신경제시대를 활짝 여는 기폭제가 됐다.
일본은 미국보다 20년 늦게 기술경영을 도입했지만 최근 일본에서 더 각광받고 있다. 기술경영을 도입한 후지필름 등과 같은 `일본 대표 브랜드`들이 옛 명성을 되찾고 있기 때문이다.
후지필름은 20년 전 독일 코닥, 아그파와 함께 세계 카메라 필름시장을 3등분하고 있었지만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면서 맥을 못 췄다. 경영진은 뒤늦게 디지털시장만 보고 기술개발에 매달렸다. 고지만 보고 내달렸던 것이다.
그러나 실적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기술경영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후지필름은 디지털시장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앞으로 다가올 생명과학과 광통신 등 신규 분야에 중점을 두고 액정재료 개발과 솔루션 사업을 전개해 특허 건수가 크게 늘었다.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10년`과 궤도를 함께했던 후지필름은 최근 수익 호전으로 휘파람을 불고 있다. GE, IBM, 화이자 등 미국 기업들도 기술경영이 체득화되어 기술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혁신이 곧 기술경영인 셈이다.
GE는 `획기적인 혁신(radical innovation)`이라고 부르는 장기 프로젝트를 기술경영으로 접근한다. 기술혁신을 경영 측면에서 분석해 단계별로 선택하고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그레그 체임버스 GE 글로벌기술이사는 "기술개발 단계에서부터 시장을 염두에 둔 계획 수립이 필요해지고 있는 만큼 이를 초기 단계부터 관리할 수 있는 경영기법 도입은 필수적"이라며 "미래 예측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기술이 어떻게 변해 나갈 것인지 남보다 반 발짝만 앞서 본다면 앞질러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도 글로벌화와 함께 해외 경쟁 기업들의 견제가 심해지면서 기술경영이 활발하게 도입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경영 전면에 최고기술책임자(CTO)가 등장하고 기술과 경영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최고경영자(CEO)들이 기업 경영을 총지휘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더욱이 차세대 성장엔진을 찾는 데 목말라하는 기업들은 기술의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을 꿰뚫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경영자를 중용하는 분위기다.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은 "기술이란 현대 기업경영의 요체이기 때문에 이 기술을 어떻게 경영으로 융합해 나갈 것인가를 항상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학계에서는 "기술경영을 시스템화하기 위해서는 R&D 부문뿐만 아니라 마케팅과 사업부 등 전사적인 참여와 함께 CEO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선 현장에서는 삼성전자 포스코 등과 같은 대기업뿐 아니라 한국콜마 등 중견기업들도 기술경영을 R&D에 접목하고 있다.
기술경영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정부는 기술을 아는 경영인을 체계적으로 배출하기 위해 관련 학위 프로그램과 전문대학원 설치를 적극 지원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출처 : 매일경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