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 역사상 최대 실수 중 하나는 PC 산업의 전망을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80년대 초 PC시장 진입 시 운영시스템과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아웃소싱함으로써 결국 MS 윈도즈와 인텔이 주도하는 윈텔 체제를 가능케 했다. 결과적으로 대형 컴퓨터시장의 위축과 함께 기업 전체가 경영위기에 빠지게 됐다.
“일반 가정에서 컴퓨터를 쓰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란 말을 했던 DEC의 켄 올슨도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벤처캐피털 투자의 최고 성공 사례였던 이 회사도 HP에 합병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잘나가던 리더기업이 갑자기 위기에 빠지는 사례를 보면 전략적 의사결정의 치명적 오류 때문인 경우가 많다. 업계를 이끄는 기업은 우수인력과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대부분 탁월한 경쟁력과 높은 성과의 선순환 사이클을 그린다. 승승장구하기 때문에 절대로 위기에 빠지지 않을 거라고 자타가 믿고 있다가 덜컥 함정에 빠지고 만다.
리더기업이 전략적 의사결정 때 치명적 실수를 저지르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승자의 자만심 때문’이라는 이유가 가장 많이 언급된다. ‘교만이 패망의 근원’이란 성경 구절도 있듯 리더기업의 지나친 자기 확신이 눈을 가려서 현실 판단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리더의 과도한 열정과 열망’이 현실을 무시한 무리한 의사결정을 하는 또 다른 이유다. 대형 사고를 치는 리더 가운데는 남다른 열정으로 평소에 좋은 평가를 받아 왔던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리더한테 자기확신이나 열정을 줄이라고 할 수도 없다. 자기확신이 없는 리더는 매력이 없다. 열망이 부족한 리더가 사람과 자원을 끌어 들이고 추진력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리더는 자기확신과 열정을 가져야 하지만 지나침의 오류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과감한 도전정신을 발휘하면서도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리더, 말은 쉽지만 가장 어려운 요구다.
전략적 의사결정을 할 때 치명적인 잘못을 피하기 위해서는 의사결정의 기반이 되는 핵심 가정(Fundamental Assumptions)에 대한 검토를 철저히 해야 한다. 전략은 비교적 먼 미래를 바라보고 하기 때문에 확고부동한 사실에 근거한 의사결정을 하기보다 주요 변수에 대한 가정에 근거한다.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근본적 가정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지만 리더의 과도한 자기확신과 열정이 이를 가로막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검증하기 위해서는 비판과 반론이 자유로워야 하지만 조직 내 역학관계와 위계질서 때문에 쉽지 않다. 파워를 가진 상사와 근본적인 생각의 차이를 노출시키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땅히 검토돼야 했을 근본 가정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기업의 운명이 좌우될 위기를 초래한다.
90년대 초 맥주시장에서 하이트의 도전에 대응한 오비맥주 경영진이 가진 근본적 가정은 수십년간 유지해 온 시장점유율 70%에 대한 확신이었다.
흔들릴 수 없는 시장지배력에 대한 고정관념이 새로운 도전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게 만들었다. 삼성같이 전략 기획력이 뛰어난 기업이 자동차 산업 진출 때 저지른 의사결정의 오류들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똑똑하고 능력 있다고 평판이 자자한 리더일수록 중요한 의사결정 때 섣불리 속내를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말이 앞서는 리더를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이유가 전략적 의사결정 때 치명적인 오류를 저지를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확고한 신념이 있지만 부드럽게 감쌀 줄 알고, 불굴의 열정이 있지만 과도히 드러내지 않는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