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일본 여성이 화장품에 가장 관심 많아
화장품 브랜드마다 전시회 등 다양한 마케팅
▲ 일본 도쿄 긴자거리의 시세이도 빌딩. (photo 시세이도) 일본 도쿄의 트렌드 중심지인 긴자. 이곳엔 일본 1위의 화장품회사인 시세이도가 운영하는 갤러리가 두 곳 있다. 시세이도의 창업지이자 긴자의 명물인 ‘시세이도 빌딩’ 지하에 위치한 ‘시세이도 갤러리’와 시세이도 빌딩에서 3분 거리에 있는 ‘하우스 오브 시세이도’.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대부분 시세이도의 철학을 보여주는 여성과 뷰티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올해 3월 23일부터 6월 10일까지 ‘하우스 오브 시세이도’에서 열리는 ‘Forever Rouge(루주여, 영원하라)’는 ‘립스틱’을 주제로 한 사진·소설 전시회다. 시세이도 기업문화부 이름으로 쓰여진 입구 안내문에는 ‘립스틱은 시세이도에 매우 소중한 아이템’이라는 전시 취지가 나와 있다. 이 소중한 립스틱으로 2층짜리 전시관을 꼼꼼하게 채웠다.
1층엔 시세이도 광고 사진을 주로 찍은 포토그래퍼 우에다 요시히코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엄마의 립스틱을 몰래 발라 보는 소녀에서부터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길거리 쇼윈도를 거울 삼아, 기차를 기다리며 혹은 기차 안에서 립스틱을 바르는 여성까지 립스틱을 바르는 여성들의 다양한 모습을 흑백사진으로 표현했다.
또한 나오키상 수상작가이기도 한 가구타 미츠요는 립스틱에 관한 소설을 써서 전시장에 걸어놓았다. 2층으로 올라가면 1922년부터 2007년까지 시세이도 립스틱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불문학 교수이자 작가인 가시마 시게루가 영국·미국·프랑스 소설과 시에서 찾아낸 립스틱 관련 문구들을 함께 전시했으니 립스틱이 문학의 오브제로 격상된 셈이다.
흔히 화장품회사들은 “우리는 화장품을 파는 게 아니라, 문화를 판다”고 말한다. 화장품회사가 사회의 유행을 만들어내고, 화장품이 여성들의 생활을 바꾼다는 것. 그런데 일본 도쿄에서 바로 이 점이 두드러진다. 일본 여성은 세계에서 화장품에 가장 관심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세계적 패션산업지 WWD의 일본판 뷰티 담당기자인 사토 히데오는 “까다로운 일본 여성들에게 일단 합격점을 받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세계적 화장품회사들이 일본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고 했다. 그는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이세탄백화점은 전 세계에서 화장품 매출이 가장 많은 백화점”이라고 한다.
수입 브랜드가 넘쳐나는 시대에 제품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법. 때문에 최근 일본의 화장품은 ‘문화사업’ 전략을 적극 펴고 있다. 일본 화장품업계의 1위인 시세이도는 물론 폴라·RMK 등이 대표적이다.
긴자 거리의 시세이도 빌딩에서 ‘긴자 1초메’ 쪽으로 30분간 걸어가면 ‘폴라 화장문화 정보센터’가 나온다. 우리나라에선 시세이도만큼 유명하지 않지만 일본에선 ‘국민 브랜드’랄 수 있는 ‘폴라(POLA)’가 운영하는 갤러리 겸 화장문화 도서관이다.
폴라 역시 이곳에서 1년 내내 전시회를 열고 있다. 2월 7일부터 5월 16일까지 열리는 ‘아르누보 시기의 화장과 치장’은 감상하고 즐기기 위한 전시회라기보다 공부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에 가깝다. 현대 화장의 근원이 된 아르누보기의 패션 잡지와 부록, 미용서 등에 나오는 당대의 멋쟁이 정보와 화장 및 치장 도구들을 소개한다.
폴라 화장문화 정보센터는 화장품과 화장 문화의 역사에 대한 다양한 문서를 소장하고 있다. 센터를 운영하는 폴라문화연구소는 30년에 걸쳐 화장과 뷰티에 관한 자료를 수집해 왔다고 한다. 그 동안 열린 전시회도 ‘일본과 서양의 거울과 경대’ ‘20세기의 독특한 향수병’ ‘일본과 서양 머리모양 문화비교전’ 등 상업적이라기보다 학구적이다. 화장문화에 관심이 많은 여성이라면 폴라 화장문화 정보센터에 들러 전시회를 본 후 관련 자료를 찾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듯. 단, 매주 수요일에만 문을 연다.
‘하코네의 자연과 미술의 공생’을 컨셉트로 2002년 개관한 하코네 폴라 미술관도 뛰어난 건축과 전시물로 각광 받고 있다. 올해 개관 5주년을 맞아 9월까지 모네·르누아르 등의 ‘꽃’ 관련 작품을 전시한다.
지난 4월 중순 도쿄에서 막을 내리고 나고야(5월 10일~6월 3일)로 자리를 옮긴 RMK의 전시회는 두 회사의 전시회보다 가볍고 패셔너블하다. 최근 한국에서도 인기가 급상승 중인 메이크업 브랜드 RMK가 세계적 패션 사진작가인 마이클 톰슨의 전시회 ‘마이클 톰슨 50장의 컷(MICHAEL THOMPSON FIFTY CUTS)’을 후원하며, 지난 10년간 마이클 톰슨이 독점적으로 찍은 RMK의 광고 사진을 함께 전시한 것.
할리우드 스타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작가 중 한 명인 마이클 톰슨의 렌즈로 본 기네스 팰트로, 제니퍼 로페즈, 줄리안 무어, 메릴 스트립 등의 독특하고 때론 기괴한 사진을 볼 수 있다. 도쿄 시부야의 파르코 뮤지엄에서 열린 ‘마이클 톰슨 50장의 컷’ 전시회에는 뷰티뿐 아니라 패션에도 관심이 많은 다양한 사람이 찾아 성황을 이뤘다. 더불어 RMK가 전시장에서 함께 판매한 ‘10주년 기념 한정 화장품’도 날개 돋친 듯 팔렸다고 한다.
일본 화장품 기업의 활발한 문화활동에 대해 ‘야후 뷰티’ 칼럼니스트이자 뷰티 전문가인 우노 나미코는 “일본 여성에게는 화장품의 질만큼, 화장품회사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며 “화장품회사의 문화활동은 여성을 팬으로 만들어 궁극적으로 소비자를 많이 확보하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 재팬의 홍보담당 다카기 아유미는 “한국의 신생 브랜드 아모레퍼시픽이 신주쿠 이세탄백화점에 입점한 것도, 모기업의 역사와 신뢰 덕분”이라고 말했다.▒
/ 박 내 선 |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전 조선일보 기자, 아모레퍼시픽 마케팅 커뮤니케이션팀, 현재 도쿄 거주
출처 : 주간조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