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이 승부수를 던졌다 .”
SK그룹 측이 지주회사 전환을 선언하자 재계에서 나온 평가다.
SK그룹은 최근 이사회를 열어 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을 위해 SK(주)를 지주회사(가칭 SK 홀딩스)와 사업자회사(가칭 SK에너지화학)로 분할키로 했다.
또 최태원 회장은 워커힐호 텔 보유 주식 40.69%를 SK네트웍스에 무상 출연했다.
이로써 SK네트웍스는 조만간 워크 아웃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발표대로라면 SK(주)는 오는 7월 1일자로 SK홀딩스와 SK에너지화학으로 분할된다.
회사 분할은 회사 재산과 주주 보유주식의 분할을 함께 진행하는 인적분할(잠깐용어 참조)로 이뤄진다.
기존 주주들은 주식 1주당 지주회사 주식 0.29주, 사업자회사 주식 0.71주를 받게 된다.
신설되는 SK홀딩스는 SK에너지화학과 SK텔레콤, SKC 등 주요 7개 자회사를 거느리고, 이 들 자회사들은 SK인천정유, 대한송유관공사, SK텔링크, SK가스 등 27개 회사의 주식을 나눠 보유하는 형태(그림 참조)다.
SK그룹의 지주회사체제 전환 문제는 해묵은 과제였다.
하지만 지난 2월까지만 해도 SK그 룹 측은 지주회사 전환과 관련, “구체적으로 검토하거나 확정한 바는 없다”고 얘기해 왔었다.
불과 한두 달 만에 지주회사체제 전환을 선언한 것을 두고, 시장에선 ‘의외’ 또는 ‘예상보다 빠른 결정’이라는 말들이 많다.
■ 지배구조 전환 배경 ■
갑작스럽게 여겨지는 지주회사 전환 발표에 대해 그룹은 주주들의 요구와 경영 효율성 강화를 주요 목적으로 꼽는다.
신헌철 SK(주) 사장은 “투명한 지배구조를 확보하고, 자회사들의 독립경영체제 구축을 통해 주주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SK그룹은 계열사 간 순환출자구조와 지배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회사와 주식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SK네트웍스 사태와 ‘소버린 사태’ 등에서 도 복잡한 지배구조 때문에 최 회장의 경영권까지 위협받았다.
따라서 지주회사체제로의 변신을 선택하면서 SK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적대적 인수· 합병(M&A)의 위협으로부터도 보호막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SK그룹 내부 관계자는 “최 회장의 경영권 안정과 투명경영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주변 여건도 우호적이다.
지주회사법 개정안에 따르면 지주회사가 상장 자회사의 지분 20% 이상을, 비상장사는 4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면 된다.
SK그룹 홍보실 강충식 매니저는 “지난 2월에 실시한 해외 IR에서 주요 주주와 투자사들 이 지주회사 전환 요청을 많이 했다”면서 “이에 따라 지난 3월 이사회가 구성된 이후 본격적인 검토와 협의를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뿐 아니라 최 회장 개인적으로도 좋은 일만 생기는 상황이다.
최근 방한한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많은 기업들 중 SK를 선택해 방문했다.
최 회장이 공을 들여온 중국 시장 공략의 성과가 가시화된 것이다.
3월 말 노무현 대통 령의 중동 순방에는 재계 오너 중 유일하게 참여했다.
SK(주)·SK텔레콤 등이 안정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 가운데, 그룹에 큰 악재는 없다.
주변 여건 호전과 기업 안정, 주요 주주들의 요구가 겹친 상황에서 최 회장이 결단을 내 린 셈이다.
■ 순환출자 정리는 어떻게? ■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당장 시급한 과제는 순환출자 정리와 지분 매입을 통한 요건 갖추 기다.
SK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는 SK(주)가 SK텔레콤 주식을 22% 갖고 있고 SK텔레콤은 SKC&C 지분을 30% 보유 중이다.
SKC&C는 다시 SK(주) 지분을 11% 갖고 있다.
‘SK(주)→SK텔레 콤→SKC&C→SK(주)’로 이어지는 구조다.
최 회장은 이 가운데 SKC&C 지분 44%를 보유하 면서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우선 계열사 간 순환을 해소하기 위해선 2년 안에 SK텔레콤과 SK네트웍스가 보유한 SKC&C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
일각에선 이 같은 계획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SKC&C의 상 장이 추진될 것이란 추측을 내놓는다.
지주회사 설립 이후 자회사 지분 매입도 추가로 이뤄져야 한다.
SK홀딩스 자회사 가운데 지주회사 법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기업은 SK에너지 화학뿐이다 . SK(주)가 보유한 17%의 자사주가 그대로 지주회사로 이전되기 때문에 SK홀딩스는 SK에너 지화학 지분 17%를 갖게 된다.
요건만 갖추려면 3% 지분만 추가로 매입하면 된다.
금액 으로 치면 3500억원 안팎이다.
손자회사 가운데는 SK(주)가 가진 대한송유관공사 지분이 32%에 그치고 있어 이를 지주회사체제 요건인 4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SK그룹 측은 “인적분할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추가적인 소요 자금은 제한적이다”면서 “2년 동안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드는 총 경비는 지분 매입 비율이나 방식이 다양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로선 정확한 추산이 어렵다”고 말했다.
■ 남은 과제와 전망은? ■
지주회사 전환에 유일한 문제는 최태원 회장이 어떻게 그룹을 지배할 수 있느냐는 것. 최 회장 개인의 SK(주) 지분은 0.96%에 불과하다.
부인 노소영씨와 사촌형 최신원 SKC회 장 지분을 합해도 1%에 미치지 못한다.
오너 일가의 지주회사 지분이 45%를 넘는 LG나 GS그룹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수치만으로 보면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와는 거리가 멀 다.
따라서 최 회장이 대주주인 SKC&C가 SK홀딩스의 대주주 기업으로 남는 방안이 유력하다.
SK 측이 내놓은 지주회사 지분구조에서도 SKC&C가 빠져 있는 이유다.
SKC&C가 가진 SK( 주) 지분 11%를 SK홀딩스 지분으로 전환하면 큰 문제는 없다는 게 회사 측 주장이다.
SKC&C 지분 11%와 자사주 17.59%를 더하면 30%에 근접하기 때문에 적대적 M&A에 노출되 진 않는다는 것. SK텔레콤의 한 관계자는 “최 회장의 SKC&C 주식과 SK홀딩스를 맞교환 하는 방식보다는 SKC&C가 지주회사의 대주주로 남길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SKC&C를 통해 지주회사를 지배하는 이중적 구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설명이다.
SK그룹 측은 “SKC&C가 비상장사이지만 사외이사가 과반수인 데다, 최 회장이 직접 지주 사 지분을 갖는 것이나 다른 회사를 통하는 것이나 큰 차이는 없다”는 입장이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C&C 지분을 SK홀딩스 지분과 맞바꾸는 방안도 가능하지만 비상장사 가치평가 문제와 맞물려 구설에 오를 수도 있다.
SKC&C 기업가치가 부풀려질 수 있다는 것.
일각에선 SK홀딩스 최대주주인 SKC&C가 지주회사로 지정될 가능성도 제시한다.
이 경우 인천정유와 SK가스 등 손자회사들이 증손자회사가 되기 때문에 사정이 복잡해진다.
손자 회사 지분을 팔거나 100% 지분을 확보하는 방법밖에 없어 그룹의 부담이 커진다.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은 최 회장이 꾸준히 지주회사 지분을 매수해 개인 지분을 늘려나 가는 것이다.
회사 측도 “앞으로 최 회장이 지분을 늘리기 위한 시간은 충분하다”면서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룹의 계열분리 작업은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SK홀딩스 지분구조 안에 사촌형제인 최창원 부회장이 1대 주주였던 SK케미칼은 포함돼 있지 않다.
SK케미칼을 계열분리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SK케미칼이 대주주인 SK건설 또한 수직 출자구조에서 빠지기로 결정됐다.
SK(주) 측은 이에 대해 “지분구조상 두 회사가 자회사로 편입되기 힘들어 내려진 결정 이지 계열분리와 지주회사 전환은 무관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사촌 형제들 간 계열사 주식에 대한 정리 작업이 계속 진행돼 온 점 을 감안하면 최창원 부회장 측의 독립경영체제가 탄력받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주회사에 들어갈 SKC는 최근 SK케미칼 지분 6.2%를 시장에 내다팔았다.
최 회장 이 현재 보유 중인 SK케미칼 지분 5.86%도 처분될 가능성이 높다.
SKC의 경우에도 최신원 회장의 지분율이 낮아 일단 SK홀딩스 체제에 편입됐지만, 장기적 으로 분리될 가능성이 있는 기업으로 꼽힌다.
지주회사와 계열분리 작업이 완료되면 최태원 회장의 글로벌 경영은 더욱 탄력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주요 계열사들은 순환출자구조로 인해 받아왔던 디스카운트 요소를 해소하고 경영 효율 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SK에너지 화학과 SK텔레콤 등이 중국과 베 트남, 중동 지역 등에서 사업 확장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 잠깐용어
·인적분할:존속 회사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신설 법인의 주식을 나눠 갖는 기업 분할 방식. 신설 회사와 존속 회사의 주주가 분할 초기에는 동일하지만 주식거래 등을 통해 지분구조가 달라지므로 경제적으로 독립된 형태가 된다.
인적분할 후 곧바로 주식 상장 이나 등록이 가능하다.
출처 : 매일경제[김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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