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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본주의 기업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中 하이얼 회장의 ‘3색 경영’2007-03-30
작성자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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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대 가전회사 하이얼의 장루이민 회장 인터뷰
강철공장 노동자 출신 부실기업 하이얼 맡아
세계 4위 가전회사로 '중국의 잭 웰치' 별명

중국 최대 가전사 하이얼(海爾)그룹. 중국 동부 연안(沿岸) 항구도시 칭다오(靑島)에서 탄생한 이 그룹은 중국의 바다를 넓히고 넓혀 세계로 진출했고, 이제는 전 세계 제패를 꿈꾸고 있다. ‘손자(孫子)병법’이 되살아난 듯 장루이민(張瑞敏·58) 회장의 경영 전략에도 세계 제패 전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兵無常勢, 水無常形’(물이 고정된 형태가 없듯이 병사를 기용함에 있어서도 정해진 방법이 없다). ‘끊임없이 시장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兵形象水’(군대의 형세는 고지대를 피해 아래로 흘러가는 물을 닮아야 한다). ‘자신의 약점과 강점을 잘 파악하고 공략하고자 하는 시장의 상황에 맞게 작전을 세워야 한다’는 글로벌 경영 전략의 기본이다.

‘기절한 물고기를 살려내는 경영자’(미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중국의 잭 웰치’, ‘중국 기업인이 글로벌 경제의 도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

하이얼을 맡은 때가 1984년. 회사는 147만 위안(1억9000만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금세 좌초(坐礁)할 듯한 부실 기업이었다. 22년 후인 2006년. 하이얼은 전 세계에서 1080억 위안(14조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세계 4위의 백색(白色)가전 회사로 자리잡았다. ‘22년 만에 3만 배 이상 성장한 기업’,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가전업체’ 평가를 얻은 것은 장 회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찌감치 베이징(北京)대 중국 브랜드연구소는 그를 ‘최고의 CEO’에, 홍콩 ‘아주주간(亞洲週刊)’은 ‘올해의 경영인’으로 평가한 바 있다. 2004년에는 미 포천(Fortune)이 발표한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인’ 중 중국인으로서는 가장 높은 6위에 올랐고, 2005년에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가 선정한 ‘세계에서 존경받는 경영인 50인’ 중 중국 기업인으로서는 가장 높은 26번째에 올랐다.

중국은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다. 하지만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장루이민식(式) 경영’은 하버드 경영대학원·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연구 대상이 됐다. 장 회장은 ‘경사면 위의 공 이론’(斜坡球體論=시장에서 기업은 경사면에 있는 공처럼 언제든 뒤로 밀릴 수 있다)·‘인단합일(人單合一·직원과 회사가 하나가 되다)’ 등과 같은 다양한 경영 이론을 세웠다.

그는 1949년 중국 산둥(山東)성 라이저우(萊州)에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교 1년생이던 1966년에 문화대혁명(1966~1976년)이 시작됐다. 고교 졸업 후 강철 공장에 견습생으로 취직했다. 이후 공장에서 열심히 일해 모범 근로자·공장 감독관 등을 두루 거쳐 1984년 12월 하이얼의 CEO겸 공장장으로 부임, 회사 재건(再建)의 임무를 맡았고, 성공시켰다.

설날(중국에서는 春節·춘절) 직전 이뤄진 장 회장과의 단독인터뷰는 본사 건물 2층 접견실에서 진행됐다. 약속 시간 5분 전, 인터뷰 장소로 들어온 그는 글로벌 CEO라기보다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이었다. 180㎝의 키에 다소 무뚝뚝해 보였다(이 표정은 나중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한국 언론과 공식 인터뷰한 것이 처음이었기에 스스로도 적지 않게 긴장했다고 측근이 전했다).

그는 “중국은 이미 세계 시장의 일부가 됐기 때문에 중국 내 1위는 별 의미가 없다”며 “우선 가전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더 나아가 GE같은 회사로 키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한국 시장에 대해서는 “공략하기 쉽지 않다”고 하면서도 투자를 늘릴 것임을 내비쳤다. 그의 세계 시장 공략과 시장 제패전략은 무엇일까?


先難後易
<선난후이·선진국을 먼저 공략해 성공하면 나머지 시장은 쉽게 진출할 수 있다>

■ “기업의 중심은 사람”

―도산 직전의 하이얼이 지금 글로벌 기업 위치에 오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하이얼은 중국 시장·소비자를 잘 파악했다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시장 변화에 적응해 소비자 수요를 창출했지요. 하이얼의 성장은 4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가 공장을 맡은 1984년부터 1991년까지는 ‘브랜드 전략’ 단계입니다. 당시 하이얼은 부도 직전이었어요. 제가 오기 전 1년간 공장장이 세 번이나 바뀌었고…. 작업 분위기가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었어요. 공장 곳곳에 직원들이 대소변을 본 흔적까지 있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옛말이 됐습니다. 냉장고 한 품목을 생산하며 품질 경쟁력을 키워 냉장고만큼은 중국 최고의 브랜드로 키웠습니다.”

―2단계는 무엇이었나요?

“2단계(1992~1998년)는 다원화 전략의 기간이었습니다. 냉장고뿐만 아니라 에어컨·세탁기 등으로 제품군(群)을 확대하고, 서비스를 강화했습니다. 중국 제1의 가전 브랜드로 자리잡았죠. 3단계(1999~2005년)는 국제화 전략의 단계였습니다. ‘先難後易’(어려운 곳을 먼저 공략하고 쉬운 곳으로 나간다) 전략을 염두에 뒀습니다. 어렵더라도 선진국 시장을 먼저 공략해 성공을 거두면 나머지 시장은 쉽게 진출할 수 있죠. 지난해 시작한 4단계는 ‘글로벌 브랜드 전략’으로 세계 1위에 올라서는 게 목표입니다.”

―경쟁력을 키운 비결은 무엇입니까?

“바로 고객이지요. 하이얼에는 이런 구호가 있습니다. 소비자는 언제나 옳다’, ‘고객의 불만은 가장 좋은 선물이다’. 예전에는 중국에 서비스에 대한 개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비스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실천했습니다.”

―재미나고 감동적인 사례도 많겠지요?

“10여년 전 일입니다. 우리 서비스센터 직원이 광둥(廣東)성 한 시골에 세탁기를 배달해 주려고 나섰어요. 그런데 도중에 차에 문제가 생겨 움직일 수 없게 되자 90㎏짜리 제품을 등에 지고 2시간 넘게 목적지까지 걸어갔습니다. 이 일이 널리 회자가 됐습니다. 쓰촨(四川)성에서는 농민이 세탁기로 고구마의 진흙을 씻는 바람에 배수관이 막힌 일이 있었습니다. 수확한 고구마의 진흙을 씻기 위해 세탁기를 쓰는 농민이 많다는 것을 알고서는 ‘고구마 세탁기’를 만들었습니다. (실무진은 “연간 10만대 정도 팔린다”고 설명했다.)”

―직원의 서비스 마인드가 대단하군요.

“서비스 직원이 제품을 배달하러 가면 그 집안의 전원(電源)이 혹 이상 없는지도 살펴봅니다. 정보화 시대에서 기업은 반드시 고객을 우선으로 해야 하고 기업은 작아져야 합니다. 소비자와 시장을 중심에 두고 잘 분석한 게 성장의 비결입니다.”

■ 경쟁 통해 인재 가려 뽑아

―평소 경영 철학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은 ‘기업문화’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하고 있어요.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천하만물생어유 유생어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천하 만물은 ‘有’(눈에 보이는 것)에서 생겨나고, ‘有’는 ‘無(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서 생겨난다는 뜻이죠. 이를 경영 측면으로 풀면, 기업 내에서 가장 우선시 해야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장부상 자산이 아니라 기업문화라는 겁니다.”

―새로운 기업문화는 어떻게 만들고 있나요?

“회사를 맡은 초기, 품질에 문제가 있는 냉장고 76대를 골라 전 직원이 보는 앞에서 직접 부숴버렸어요. 불량품이 생길 경우 해당 직원 월급에서 빼겠다 선언을 하니 직원들이 품질 개선을 위해 힘썼습니다. 기업의 중심은 사람입니다. 인사제도는 전통 중국방식인 ‘伯樂相馬(백락상마·백락이 말을 알아본다·윗사람이 재능 있는 사람을 알아보고 기용하는 것)’가 아니라 ‘伯樂賽馬(백락새마·백락이 말을 경주시킨다·경쟁을 통해 누가 좋은 인재인지를 알아보고 뽑는다)’ 방식으로 운영합니다. 성과급도 실적에 따라 다르게 지급하지요.” (하이얼에서는 독특한 인사 시스템이 있다. 누구든 ‘나를 승진시켜 달라’는 신청서를 낼 수 있고, 회사에서는 이를 평가해 점수가 높은 사람을 승진시킨다.)

―장 회장님을 가리켜 ‘중국의 잭 웰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만.

“잭 웰치 (전) 회장에게서 가장 많이 배운 것이 변혁의 정신이었습니다. 옷을 많이 껴 입으면 바깥의 온도 변화를 느낄 수 없습니다. 기업 내 장벽을 허물어 기업의 모든 구성원이 외부 기후 변화를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정보화 시대에서는 각 개인이 전세계를 무대로 자신만의 시장을 가질 수 있고 하나의 경영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해외 출장 때 1등석에 타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금은 아닌데….(웃음) 2년 전까지는 이코노미석(席)을 타고 다녔습니다. 지금은 비즈니스석을 탑니다. 비행기를 자주 타는데 승무원이 저를 알아보고 좌석을 바꿔주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자꾸 그러니까 미안하기도 해서…. 점심시간에는 직원들과 회사식당에서 식사를 합니다. 출퇴근 시간에는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출퇴근부(簿)에 확인을 남깁니다.”

■ “한국은 진출하기 어려운 시장”

―한국 시장 공략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다른 나라 시장에 비해 한국은 좀 어려운 시장에 속합니다. 진출 이전부터 한국 시장 공략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고…. 한국 시장이 글로벌 마켓으로 보면 그리 크다고 할 수가 없고, 게다가 삼성·LG같은 토종 브랜드 파워가 막강합니다. 외국 브랜드가 설 자리가 넓지 않아요.”

―한국 시장 공략의 주목적은?

“(단기적인)시장 점유율 확대보다는 하이얼의 경쟁력을 키워간다는 데 더 큰 목적이 있습니다. ‘先難後易’ 처럼 보통 회사가 쉽게 진입할 수 없는 한국·미국·일본·유럽 등 선진 시장에 먼저 진입을 해야 나중에 보다 쉬운 시장에도 진출하기 편합니다. 한국 시장 진출 이후 우리는 삼성·LG와 실력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격차를 해소하면 하이얼의 수준도 빠르게 향상시킬 수 있겠죠. 세계에서 일본·한국 제품에 이어 중국 제품이 잘 팔리고 있습니다. 이제 중국은 제품을 제조하는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창조하는 시기로 접어들었습니다.” (하이얼은 한국에 2003년 연락사무소를 세워 진출한 뒤 이듬해 법인으로 전환, 현재 본격적인 영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한국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고 무척 노력하더군요.

“시점을 못박을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삼성·LG를 따라잡을 것입니다. 삼성·LG에 비하면 하이얼은 성장 기간이 짧아요. 매년 250~300%씩 매출이 오르고 있고, 한국 내에서 하이얼 브랜드 인지도가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 “금융업 진출로 사업 다각화”

―하이얼이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는 무엇입니까?

“(토머스 프리드먼이 썼듯이) 정보화는 세계를 평등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현대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두 가지 고르라면, 첫번째는 ‘인재(人材)’입니다. 일류 인재가 세계 일류 기업을 만듭니다. 하이얼은 특히 해외 시장에서 각 방면의 인재가 필요합니다. 미국·유럽 등 외국 시장에서 각국의 최고 인재를 확보해야 하는데, 이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두번째는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일입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세계적인 물류망(網)과 연구개발망·영업망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전세계적인 네트워크가 필수적입니다. 하이얼은 현지 인력으로 제품을 연구·생산·판매하는 네트워크 구축에 힘쓰고 있습니다. 가전업에서 성공한 중국 기업이 많지 않은 이유는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네트워크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짧은 시간 내 인재 확보와 네트워크 문제를 해결하는 게 하이얼의 가장 큰 숙제입니다.”

―금융·서비스 분야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사업 다각화 전략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칭다오 상업은행을 소유하고 있고, 미 뉴욕생명과 합작으로 만든 생명보험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금융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상품시장과 자본시장의 결합이 빨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금융을 소홀히 하면 글로벌 사업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위안화 가치가 상승하고 있는데, 위안화가 1펀(分·100분의 1위안) 오를 경우 산술적으로 하이얼그룹에서 400만위안의 환차손이 발생합니다. 금융 부문을 갖추고 있다면 이같은 손실을 줄이고, 최소화할 수 있겠죠.”

―그래도 제조업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기업 규모가 작을 때에는 품질·기술·혁신, 즉 상품이 중요합니다. 기업이 커지면 영업이 중요해집니다. 글로벌화된 대기업에는 금융이 중요합니다. 세계화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금융 방면에서 충분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하이얼은 가전, 금융뿐 아니라 과학기술·무역 등 사업을 전개해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그룹으로 도약할 것입니다.”

―글로벌 외국 기업이 중국 시장을 주목하고, 중국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이얼은 해외 시장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세계 시장의 일부입니다. 중국 시장과 세계 시장을 나눌 필요가 없어요. 정보화시대의 시장 경쟁 관점에서 볼 때 ‘중국 1위’라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몇년 전만 해도 중국 내 매출 상위 5개 가전회사가 모두 중국 회사였지만, 지금은 외국기업이 상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의 경쟁이 범세계적인 경쟁으로 변하고, 오직 소수의 경쟁자만 살아남게 됩니다. 하이얼은 현재 세계 백색가전시장에서 4위입니다. 1·2위가 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워요. 하이얼이 세계 1·2위가 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이얼의 세계화 전략은 세 가지의 3분의 1 전략으로 운용된다. 세계 시장을 3개 시장으로 구분해 3분의 1은 중국 국내에서 생산해 중국 내에서 팔고, 3분의 1은 중국에서 만들어 세계 시장에 팔고, 나머지 3분의 1은 해외에서 생산해 해외에서 판매한다는 전략이다.)

■ “중국 기업의 해외 투자 활발해 질 것”

―중국이 아직까지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하고 기술적으로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중국 기업이 앞으로 생각할 게 있어요. 즉 ‘얼마나 많은 제품을 만들어내는가’가 아니라 ‘소비자가 이 브랜드를 얼마나 신뢰할 것인지’ 여부입니다. 중국에서는 우선 중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를 만들어야 합니다. 중국에는 삼성·LG·현대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가 없습니다. 도요타는 일본에서나 미국에서나 동일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요. 한 기업이 업계 내에서 세계적으로 선두의 자리를 차지하면 다른 기업이 나아가야 할 세계적인 표준이 되는 것입니다. 중국 기업은 이러한 표준과 거리가 떨어져 있습니다. 하이얼도 마찬가지고…. 중국이 고속 성장 중인 것은 사실이지만 각 기업이 해당 업계에서 전 세계 최고 회사를 따라잡아야 합니다.”

―중국의 성장은 건실한 것인가요?

“사실 성장의 질(質)문제도 중요합니다. 중국이 몇년 간 얼마나 성장했는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많지만 양(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장의 질이죠. 현재의 성장은 고정자산 투자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대규모 외자 도입에 의존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고정자산의 투자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지만 언젠가는 투자가 감소할 수 있기 때문에 성장의 질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대외 무역은 감소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내수 시장이 투자 증가를 뒷받침할 수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 기업이 나서야 합니다. 외자도 유치해야겠지만 중국 기업이 해외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하이얼그룹은 중국 최대의 가전회사다. 지난해 전 세계 160여개국에서 1080억위안의 매출을 올렸다. TV·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중국 내 가전 시장에서 25.5% 점유율로 1위를 달리고 있다. 베이징 브랜드 가치 평가 기관 조사 결과 작년 브랜드 가치는 749억위안으로 평가돼, 2002년 이후 5년 연속 중국 내 전체 기업 중 1위 자리를 지켰다. 하이얼은 1955년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에서 수공업 생산자들이 모여 세운 집단기업으로 출발했다. 집단기업은 국영기업과 달리 자산·이윤을 기업 구성원이 갖는다. 초기 모터·환풍기 등을 만들다 1970년대에는 세탁기를, 1984년부터는 냉장고를 내놓기 시작했다. 이름도 ‘칭다오 냉장고 공장’이었다. 1992년 회사명을 ‘하이얼그룹’으로 바꿨다.

1984년 파산 위기 당시 장루이민 현 회장이 공장장으로 들어왔고, 이듬 해 독일 리페르사와 제휴, 기술을 받아들여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1984년 장 회장이 회사를 맡을 당시 348만위안이었던 매출은 22년 만에 3만1000배 이상의 성장을 기록했다. 수백 명에 불과했던 직원 수는 현재 5만명이 넘는다.

■ 농민에게 빚 얻어 월급 줄 돈 마련

그가 부임한 직후 가장 먼저 신경써야 했던 것은 직원 월급 문제였다. 은행은 국영기업도 아닌 적자투성이 하이얼에 대출을 해주지 않았고, 장 회장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농민에게 돈을 빌렸다. 그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만 돈을 빌리기 위해 농민과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고 한다. 장 회장은 부임 이후 처음 맞은 설(1985년)에 직원 모두에게 생선 다섯 근씩을 선물로 줬다. 돈을 더 빌려서 공장 직원이 출퇴근용으로 쓰던 트럭을 버스로 바꿨다. 직원에게 “우리 공장도 잘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줬다.

그는 미래를 잘 내다봤고, 때로는 과감했다. 1991년 공장 부지를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돈이 부족했다. 예산은 15억위안인데, 회사는 8000만 위안밖에 없었다. 1993년 회사를 상하이 주식시장에 상장시켜 자금을 조달했다.

■ “후계자는 대단한 사람일 것”

그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와의 인터뷰에서 “리더십의 본질은 카리스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performance)에 있다고 강조한 피터 드러커의 말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후계자 문제와 관련, “하이얼은 한 사람에 의해 좌우되는 기업이 돼서는 안 된다”라며 “내 후임자는 노자가 말한 ‘백성들이 임금의 존재를 모르고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경지에 이를 만큼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조선일보